- 동시대 미술의 파스카: 기후변화, 탈식민화, 반세계화를 위한 스물두 가지 물음들
- 저자: 가비노 김
- 저자 블로그: https://blog.naver.com/lareine4
- 출판사: 미진사
- 출간일: 2021년 11월 30일
- 분류(예스24): 국내도서> 예술 > 미술 > 미술사/미술가론
파스카는 어원적으로는 ‘통과하다, 지나가다’라는 히브리어 동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이 말은 원래 이스라엘 민족들의 축제일을 일컬었다. 이 축제는 탈출기 12장에 나오는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탈출해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축제다. 하느님이 이집트 땅의 모든 맏아들과 짐승의 맏배를 치실 때 문설주에 어린 양의 피를 바른 집은 거르고 지나가셨다. 그래서 파스카 축제를 ‘지나간다’는 의미로 한자로는 과월(過越)절이나 유월(踰越)절로, 영어로는 Passover라고 번역한다.
재용의 노트
먼저, 많은 사람에겐 낯선 개념일 ‘파스카’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하겠습니다. 다행히 ㅅ님께서 독서노트에 위 링크의 기사를 공유해주셨습니다. 신실한 기독교나 천주교 신자가 아닌 저에게는 조금 낯선 개념이라, 책의 제목 [동시대 미술의 파스카]가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는 지금도 조금은 아리송하다는 걸 고백합니다. 그렇다면 저자는 어떤 사람일까. 책의 저자 약력은 흔한 동시대 미술 서적에서 보기 어려운 종류인 듯 합니다.
부산 가톨릭대 신학대학과 홍익대 미술대학원을 졸업했다. 20세기 신학계의 최고 지성 중 하나인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살(Hans Urs von Balthasar, 1905-1988)의 신학적 미학 방법론에 따라 사도신경 구절 ‘descensus ad inferos(저승에 가시어)’에 대한 연구(2008), 20세기 모더니즘 미술의 선구자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의 조형원리인 아라베스크(arabesque) 연구와 이브알랭 부아(Yve-Alain Bois)의 원형적 드로잉 분석 연구(2018)로 각각 학위를 받았다. 라이문트 슈바거(Raymund Schwager)의 「오늘날 문화적 모체로서의 원죄」(2008)를 공역했다.
미술을 둘러싼 정치·사회·생태·교육·종교 분야에 관한 연구들을 중심으로, 미래 세대를 위한 학제적인 대화와 만남, 평화의 문화를 일구는 과업을 이어가고 있다. 유럽 동시대 미술가들에 관한 몇몇 평론을 집필했으며, 신유물론에 기반한 작가론 『DAVID ALTMEJD: 자라나는 오브제』(좋은땅, 2019), 종교와 미술의 만남을 다룬 『앙리 마티스, 신의 집을 짓다: 방스 로사리오 경당의 탄생과 한 예술가의 삶』(미진사, 2019)을 출간했다. 교황청 공식매체 『바티칸 뉴스 VATICAN NEWS』 한국지부에서 편집을 맡고 있다. 정신장애인 대안언론 『마인드포스트 MINDPOST』 창간위원 겸 편집인이며,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에서 정신장애인 사건사고 보도에 대한 편견·혐오 동향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호기심과 아리송함을 안고, 책의 가장 뒤에 있는 “후기”를 먼저 읽어 봅니다.
이 책은 ‘아들에게 들려주는 아버지의 이야기’ 콘셉트로 출발했다. … 아버지의 이야기 콘셉트는 미술평론의 암호 같은 문장을 해독하느라 갖은 개념어를 무조건적으로 흡수하지 않아도 될 만큼 쉬운 우리말로 동시대 미술을 나름대로 아들 세대에게 알려주자는 기획이었다.
[동시대 미술의 파스카]라는 제목은 동시대의 미술이 당대의 세계를 가로질러 간다, 방관하지 않는다, 문제를 직시한다, 그리고 다른 시선을 제시한다는 뜻을 전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비노 김이 소개하는 작가, 작품들은 대개 ‘현상유지’와는 조금 거리가 먼 모습을 보여줍니다. 저자가 [마인드포스트]에서 활동했다는 점 또한 이런 선택에 영향을 주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여러분에게, ‘동시대 미술’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여러분은 ‘동시대’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나요. 이 두 질문에 어떤 답을 생각하는지에 따라, [동시대 미술의 파스카]라는 이 두터운 책을 받아들이는 태도와 생각은 달라질 겁니다.
- 한 번 쯤 보셨으면 하는 영상
고은의 노트
어떤 관점으로 우리 시대를 바라봐야하는 하는 것인가?라는 질문과 동시대 미술(Comtemporary Art)을 어떻게 봐야하는가는 어쩌면 같은 질문일 수 있습니다. 모든 역사가들에게 그들이 취하는 역사관이 있듯이, 이 저자 역시 자신의 프리즘을 통해 동시대 미술을 파악하려 합니다. 저자의 성향을 조심스레 예측하자면, 그는 최근 트럼프의 파리 기후변화협정 탈퇴로 대변되는 이 노골적인 변화가 지구의 위기를 한층 빠르게 한다고 여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책의 많은 예술가들 역시 우려스러워 하지 않을까요? 타바레스 스트라챈, 세브랑 갤파+오토 후데츠가 특히 극심하게 느끼지 않을까요? 여기에 올라퍼 엘리아슨은 ‘난 예술가일 뿐’ 이라며 고상하게 뒤에 앉아 판단을 유보하고 있을까요? 오톨리스는 이에 대한 몰입감있는 48시간짜리 긴 새 영상을 우리에게 제시해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이 책에 모든 예술가들을 알고 있진 않습니다. 다만 요제프 보이스 등 수많은 예술가들이 그동안 사회와 함께 호흡하며 ‘사변적 공간’ 에서의 혁신과 함께 잠식되어가는 개인의 역사를 발굴해 내왔다는 분명한 사실은 압니다. 누군가 이게 다 무어냐?라고 묻는다면, 이것이 바로 동시대 예술, 그리고 동시대의 정신성 그 자체라고 답할 수 있을 겁니다. 저자가 제시한 구분에 따라 1945년, 1989년 그리고 2000년을 지나오며 우리는 세계화/탈식민주의를 벗어나 인류세라 명명한 또 다른 시기를 맞이했습니다.
왕정을 부순 프랑스 혁명과 기술의 산업혁명 그리고 이후 무시무시한 이데올로기를 지나오며 앞 세대는 우리 에게 더 이상 “ ‘계몽’을 위한 하나의 답은 없다! ”라는 커다란 교훈을 남겨주었습니다.
다만 예술은 현실세계를 틈입하며 상상의 공간에서 여전히 각성Awakening을 일으킵니다. 어떤 것은 실제적인 사회 이슈를 건드리며 또 어떤 것은 매우 추상적인 이미지로 우리의 내면을 깨웁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 책에서 ‘예술’이라 주장하는 작품 중 우리를 설득하지 못한 작업이 있을까요?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지, 또 저자의 논리 중에 혹시 오히려 지극히 모더니즘적인( ‘계몽적’이거나 도덕적 우위에 선 확신) 태도의 해석은 없었는지 아니면! 정말 오래된 매체(그림, 조각 등)은 결국 도래하는 미래에 ‘꽃놀음’으로 전락하고 있진 않은지 오늘 시간에 함께 살펴보며 이 CRAZY WORLD에 또 어떤 새로운 미술이 나타날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생각할 거리 / 질문
- 책에서 본 작품 중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은 무엇인가요? 혹은 인상 깊었던 발언은?
- 예술/미술은 당신에게 어떤 작용/일을 합니까? 예술/미술에게 품는 기대나 바람이 있나요?
- 예술/미술의 이름 아래 이뤄지는 많은 활동을 구분하는 ‘심미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독서 노트
동시대 미술의 3대 전환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탈식민화, 기후변화, 세계화를 살펴볼수록 냉소를 짓게 되는데 이것 또한 나만 그런건지 모르겠다. 서구 열강들의 입장에서 그들을 중심으로 기록되고 연구되어진 세계사를 기준으로 삼고 있는 미술사와 그 시혜적인 태도로 가득한 미학적 논의들, 담론들은 ‘그 외’ 소속의 내가 보기엔 알맹이 없는 그저 그들만의 재수없는 꽃놀음으로만 느껴진다.
– ㅈOO
사실 작가가 언급한 3대 전환의 주제(기후변화, 세계화, 탈식민화)는 주요 미술관, 갤러리, 비엔날레, 아트 페어 등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주제이긴 하다.
(참고로 2024년 베니스 비엔날레 주제는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였다.)
그러나 이러한 곳에서도 자주 접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 위의 말한 주요 미술 산업은 자본주의와 결탁하여 동시대 미술의 사회적 역할을 하는 척하며, 오히려 기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착각 속에서 깨어나 계속 지켜봐야한다. 이 삶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 ㅇOO
격동의 시기이다. 오랜 시간동안 한 방향으로 움직여왔던 세계가 이제 산발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심지어 이전 시각에서 보면 역행하는 양상도 보이고 있다. 극적인 시기에는 항상 작고 소중한 것들이 잊혀진다. 이런 시대일수록 모호하고 희미한 것들을 발굴하는 예술 작업들이 더더욱 의미가 깊어지는 것 같다.
– OㅈO
그러므로 광고인들은 흑주술사에 가깝다. 그렇다면 예술가는 백주술사인가? 인류종말의 위기로 부터 인류를 구원할 메시지를 외치는 주술사. 하지만 나의 시비거리는 그 계시의 원천이 동시대를 읽은 예술가에게서 나온 것이냐는 것이다. 사회운동가 혹은 혁명가의 주장을 신의 위엄을 담아 되뇌이는 것일 뿐이지 않냐는 것이다.
…나의 독후감이 비틀린 이유는 62페이지 둘 째 문단 두번째 세번째 문장때문이다.
“동시대 미술가들’은’ 순진하게 환경보호를 부르짖지 않는다. 오히려 환경재앙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구체적으로 지목한다. “
동시대 미술가들이 누구와 달리 순진하지 않다는 건가? 책임을 묻는 용기를 지닌 적어도 ‘최초’의 사람이 예술가였다는 건가? 정말?
내 눈에 작가는 구약성경속 선지자의 이미지를 동시대 미술가에게 덧씌우고 싶으신 것은 아닐까 했다. 권위를 인정받지 못한 교사가 학생들에게 떼쓰는 투가 느껴져서 투덜거려 봤다.
– ㅇOO
다만, 한 개인은 미시적 존재이기에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적화된 선택을 행할 뿐이므로, 모든 이들이 그럴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 그렇기에 나는 그리도 ‘Contemporary art’가 불편했나 보다. 지나치게 거시적인 사회적 담론들에 대해 격렬히 저항하는 메시지를 담은 많은 작품들을 보며,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않으면서 불편한 감정만을 야기하는 것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우리의 일상과 밀접하면서도 먼 주제인 기후변화, 세계화, 탈식민화를 다루는 이 책 또한 여전히 내가 왜 읽어야 하나 하는 의구심을 가졌다. 특히나 기후변화에 대응한 기업 등의 ‘ESG 경영’은 허울 좋지만 실체는 말장난에 불과한 것들을 매 순간 목도하고 있기에 더 그렇게 다가왔던 것 같다. 결국 매 회차마다 던지는 질문이지만, 이 책 또한 미술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으로 돌아가게 했던 책이다.
– OㅈO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작가는 질문을 던진다. “세상은 종말로 치닫고 있는데, 미술은 도대체 뭐하고 있는가?”
그에 대한 대답으로 작가는 우선 ‘동시대 미술’에 대한 정의를 ‘하나의 시대구분이라기보다, 동시대성의 3대 전환인 세계화, 탈식민화, 기후변화로 수렴하는 독특한 미술 현상’이라고 정의하고, 여러 동시대 미술 작가들을 소개한다. 변화의 행위자로서의 작가들은 그들의 예술작품을 통해 범지구적인 차원의 문제들로 사람들의 오감을 자극하여 시선을 집중시킨다.
– Oㄷ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