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을 건너온 그림들
- 저자: 김예진
- 출판사: 엘리
- 출간일: 2023년 12월 18일
시즌을 마무리하며
고은의 노트
“예술이 지니는 생명력은 생활에 있다는 말이 되는가 보다”
-한묵-
“그린다”가 아니다 “짓다”란 동사가 어울리는 그들의 그림과 여정이었다. 2010년대에 이르러서야 한국미술계는 이렇게 지어진 그들의 작품을 다시 조명할 수 있는 여력을 가질 수 있었다. 덕분에 저자 김예진은 일련의 작가들을 다시 들여다보고 오늘의 시간에 그 일부를 잠시 돌려놓을 수 있었다. 따뜻하지만 넘치지 않고 결의가 있지만 의연하게 느껴지는 문체가 좋았다. 작가만큼, 전시를 만드는 사람의 생활과 태도도 그 예술에 생명력을 더하게 하는 것 같다. 박래현과 이성자의 작품을 보며, 그 화폭에 담긴 아름다움에 막연한 존경이 아닌 한 여성, 인간으로서 깊은 공감을 갖게 되는 것은 나도 얼만큼의 나이를 먹게되었다는 의미인 것 같다.
자기만의 화폭을 갖는 다는 것은 일상의 사사로움을 태산 만큼이나 옮겨야 겨우 획득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의 아쉬움, 사무침은 그 시절 누구도에게도 이해를 구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모든 창작자들이 갖는 필연적인 외로움이자 자기 연민의 출발점 인듯 하다. 너무 다행인 것은 우리는 그 시간을 건너온 예술가들 오늘 여기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런 예술가들과 함께하는 일이 마치 불꽃이 사그라지는 것을 막기위해 보초를 서는 일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들과 결국 ‘운명공동체’가 되곤 한다고 했다. 아마도 더 나아가고 싶지만 어디까지나 외부자로서의 시선을 지키려는 모순되는 두 마음을 표현한 것 같다. 아름답고 숭고한 가치를 찾는 것, 지킬만한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 만으로도 얼마나 큰 행운인가! 그럴만한 것을 찾기 힘들어진 오늘에 오히려 그 가치가 더 간절해 진다.
재용의 노트
아래 사진들은 지난 해(2024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만난 이쾌대, 장우성, Marina Núñez del Prado의 작품을 찍은 것입니다.
역사는 어떻게 쓰여지는 걸까요? 몇 달 전 어느 ‘뮤지엄’ 관장님과 나눴던 대화가 떠오릅니다.
“우리 뮤지엄 큐레이터들이 참 일을 잘 하는데, 그들은 ‘죽어있는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에 익숙하지 ‘살아있는 사람’과 함께 일하는 법은 잘 모르더군요. 하하.”
베니스에서 만났던 두 한국 작가의 전시도 떠오릅니다.
- 《이성자: 지구 저편으로》
- 2024.4.20 – 11.24
- 아르테노바(ArteNova, Castello 5063, 베니스)
- https://www.galleryhyundai.com/story/view/20000000359
- A Journey to the Infinite: YOO YOUNGUK
- Palazzao Quierini Stampalia
- http://www.yooyoungkuk.org/exhibition/view.php?id=96&limit=9
지난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서 이쾌대와 장우성은 ‘History’ 섹션, 그러니까 유럽 중심이 아닌 ‘지구 남반구(Global South)’에 집중한 부분에서 소개되었습니다.
이성자 작가의 전시는 (갤러리 현대 대표 박명자 회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한국근현대미술연구재단과 갤러리 현대가 꾸렸고, 유영국 작가의 전시는 작가의 가족들이 운영하는 유영국재단이 주최하여 열렸습니다.
모임에서 좀 더 자세히 공유하겠지만, 두 전시는 뜻깊은 점도,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뜻깊은 것만 공유하자면, 몇 년 전 베니스 비엔날레 역사 아카이브에 들러 본 1970년에 발송된 편지를 한 통 본 적이 있습니다. 발신인은 이승자로, 파리의 “10, rue du Ranelagh”에 사는 “M.me Seund Ja Rhee”가 보낸 것이었습니다. 수신자는 “Monsieur Le Professeur APOLONIO, BIENNALE DE VENISE Palais Justinien”였습니다.
기계 번역으로 편지의 내용을 옮겨보면 이렇습니다.
친애하는 교수님
한국의 국제 조형예술위원회에서,
에서 저를 유럽 조형예술의 창작을 책임지도록 임명했습니다.
이 위원회의 요청에 따라 베니스 비엔날레에 한국이 참가하는 것을 친절하게 검토해 주실 것을 부탁드리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귀하가 제안한 장소와 날짜에 귀하를 만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귀하가 제안하신 날짜에 만나서 필요한 모든 세부 사항과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동봉된 문서 사본을 통해 저의 접근을 정당화하는
제 접근을 정당화하는 문서 사본을 동봉해 주세요.
귀하의 회신을 기다리겠으며 미리 감사드립니다,
진심으로
편지와 함께, 프랑스주재 한국대사관에서 발부한 확인 공문도 함께 발송되었습니다. 이렇게 편지를 보내고서 50년이 지나서 베니스에서 이승자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전시는 무척 뜻깊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저는 주로 ‘살아 있는 작가들’과 함께 무언가를 꾸리는 입장에서 우리의 ‘지금’이 어떤 역사로 쓰여질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질문 혹은 생각할 거리
- 미술에서 발견하고 싶은 가치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아름다움, 고독, 희생, 용기 ….) 그리고 그것을 발견한 경험이 있다면 공유해주세요.
- 새해 꼭 보고 싶거나 기대하고 있는 미술 전시가 있다면?
- 이 책에서 가장 눈에 밟히는 작품, 작가는?
독서 노트 모음 (업로드 순서대로)
이 책에서 가장 좋다고 생각한 그림은 박래현의 달밤이었다. 피카소의 입체파 그림의 문법을 활용한거라 생각한다. 1 2 3 세개 눈은 두 상태를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달도 만월일수도 혹은 만월의 일부가 잘려 밑에 처져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만월이 되기 전의 달과 그믐달은 시간차를 나타낸 것이라면 1 2의 눈을 가진 부엉이와 2 3의 눈을 가진 부엉이로 보였다. 2번이 공유하는 눈. 시간이 바뀌어 다른 쪽을 바라보는 것이라면 우리의 사랑은 점점 사그러져요. 라고 말하고 있는 듯. 12번의 나와 23번의 나를 연결해 주는 것은 2번이다. 아직은 이어져 있지만 분리 가능하다. 비록 한 자리에 있는 동일한 나이지만 마음이 뜬 자아를 표현한 그림으로 보이기에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익숙함과 낯섬과 조화가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서 좋았다.
– Oㅇㅇ (놀러가기)
막 귀국한지 얼마 안 됐을 때, 장욱진 회고전에서 받은 충격을 계기로 한국 근현대 작가들을 잘 모르는 것이 상당히 부끄러운 일이라고 한동안 생각했던 적이 있다. 지금은 딱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애써서 그 공백을 더 메꾸려고 하는 것도 그만뒀다. 내가 모르는 한국 근현대 작가의 작품을 마주하면 그냥 새롭게 알게 된 또 하나의 작가로 받아들이고 언제나처럼 감상하려고 한다. 그런 나에게 반가운 책이었다. 저자가 이 미술가들에게 품고 있는 애정의 크기를 엿볼 수 있는 것도 좋았고, 작품이미지들과 함께 작가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 ㅈOO
이성자의 작품을 보면, 물론 그림의 실력이 뛰어난 것도 있지만 그녀만의 철학과 개념을 가지고 있는 엄연하고 공고한 대가의 느낌이다. 제목도 어찌나 시적인지. 그녀의 작업실 은하수만 보아도, 그녀의 삶이 예술에 얼마나 헌신적이었을지 상상이 된다. 물론 대부분의 작가는 본인만의 철학과 고유한 표현방법이 있지만, 평생에 걸쳐 비교적 완성된 개념과 철학을 갖는 작가는 우리가 아는 유명한 사람들일 것이다.
그녀도 그 수준에 도달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나 뿐인걸까?
국내에서는 아직 낯설게 느껴지는 현실이 그녀의 가치가 평가절하된 것 같아서 의아함과 아쉬움이 몰려온다.
– ㅇOO
김예진의 ‘시간을 건너온 그림들’을 읽으며, 마치 오랫동안 잊혀졌던 보물을 발굴한 듯한 희열을 느꼈다. 이 책은 역사의 그늘에 가려져있던 예술가들의 작품과 삶을 빛으로 끌어내어 새로운 시각을 선사한다.
여성, 북한, 그리고 누군가의 그림자. 이 세 가지 주제로 구성된 책은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서 소외되었던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한다. 마치 오래된 흑백 사진에 생생한 색채를 입히듯, 저자는 잊혀졌던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다.
– ㅈOO
이번 책을 읽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미술가 6인의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읽으며 그들의 작품이 단순히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한 것이 아닌 스스로를 찾아가는 과정이란 것을 보고 살아가면서 나답게 나 다운게 무엇인지 알아가는 과정을 몇 명이나 경험할까? 란 생각을 해보았다.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어머니 각 자의 역할을 해내며 그들만의 여정을 지나온 그녀들의 열정에 나는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단순한 시각적 즐거움을 떠나 한 사람의 발자취를 알게되면서 작품에 온전히 더 집중을 할 수 있었다.
– OㅂO
저자는 “좋은 큐레이터의 역할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작가라는 한 사람을 다방면으로, 그리고 깊이 이해하기 위해 여러 자료를 통해 다양한 해석에 부단한 고민을 하고 신화 속 영웅적인 모습을 경계하며, 우리처럼 시대 속을 살아간 ‘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기 위해 렌즈를 확대하며 실마리를 풀어나가고 있다. 우리의 관심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품고 있는 저마다의 소우주의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고 입체적으로 만들어낸다. 여기저기 그 관심의 조명을 비추면서 우리 자신도 함께 풍성해지는 것이 이 우주 속 우리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싶다.
– ㅂOO
문득 지난 여름 오죽헌에서 본 신사임당의 초충도가 떠오른다. 어린 시절 신사임당의 그림은 교과서에 실린 역사적 인물의 작품정도로 생각했다. 신사임당 생애에 대한 글을 읽어서일까, 일상의 피로를 잊게 해주는 오죽헌의 정취 덕분일까. 이번에 본 초충도에는 눈앞의 작은 생명을 살피는 신사임당의 따뜻하고 섬세한 시각이 느껴져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 열린 마음으로 작품과 관련된 다양한 맥락을 알아가는 것은 예술을 즐기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ㅇOO
이성자 작가님의 삶과 1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변해 온 관심사와 작품의 주제를 알게 되면서, 그의 작품에도 조금씩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한 사람의 화가로서의 이야기를 통해 작품을 이해하는 것은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 ㅇOO (놀러가기)
책은 얇았지만 잘 모르는 작가들이다 보니 책의 한 챕터를 읽고 유튜브나 작품을 찾아보게 되면서 천천히 읽게 되었다. 근대에는 시대적으로 굴곡있는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다. 이런 시대상황에서 여섯 명의 작가들은 각자의 한계를 뛰어넘는 작품 활동을 펼쳤다.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친구 혹은 조카, 그리고 월북작가로 불리웠던 이들의 삶의 궤적은 감동적이었다.
– ㅅOO
투쟁과 격동의 시기에는 개인이 존재하기 어려운 것 같다. 모두들 아와 타만 중요할 뿐, 개인적 사연이나 고민들에 관심 가질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 시기에 잊혀져 간 것들을 발굴하고 되새기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 ㅇOO
특히 박래현과 이성자와 같은 여성 화가들이 ‘여류 화가’라는 이름 아래 겪어야 했던 차별과 고난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이를 통해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진 흐름 속에서 미술가들이 어떻게 자신의 예술 세계를 구축해 나갔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 미술에 대해 얼마나 얕게 알고 있었는지 깨닫게 됐다. 동시에 예술이 가지고 있는,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볼 기회가 되었다.
– ㅈOO
박래현과 이성자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아무리 가부장제가 완고한 시대라고 해도 예술가는 무언가 다른 태도, 조금 더 열린 생각이 있을거라 막연히 기대했는데, 별 다를 것 없이 똑같았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결국 사람은 그 시대에 갖힌 존재일 수 밖에 없는 것일까? 그 사람이 맞다고 주장하는 것과 그 사람이 일치하지 않듯이 말이다.
어떤 작품이 그 당시에든 그 이후에든 기억되고 선택되는 것일까? 다른 예술 분야랑 다르게 미술은 물리적 성격이 짙으니 공간에 제약을 많이 받는다. (음악과 비교하면 인터넷 이전 시대 보다도 더 제약이 큰것 같다.) 그래서 시간에 흘러가 버려 화석이 되어버리면 나중에 누군가 발굴해 주지 않으면 영원히 뭍히게 된다.
– ㅂOO
세상 만물과 어떠한 진리는 하나로 수렴한다고 믿는 나에게 확신을 주었던 책이랄까. 또한, 어떠한 것이 지닌 일부의 속성으로 전체를 판단하기 보다, 본질을 꿰뚫는 힘이 필요하다는 생각에도 힘을 주었던 책이다.
…다양한 이유들로 그들의 작품 세계의 본질보다는 자극적이고 화제성이 될 만한 수식어들로 기억됐던 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결국 인간을 누구를 위해 희생하거나 안온한 일상에서 존재의 이유를 실감하기 보다, 오롯하게 저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에서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 ㄱ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