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과 달리기, 숫자로 세지 않기

오전 6시 30분에 눈을 뜨자마자 업무를 위해 집 아래-아래-아래층 사무실에 내려갔다가, 다시 집으로 올라가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달리기에 나섰다. 자전거와 버스로 15분 가량 이동하여 15년 넘게 살던 옛 동네로 돌아가 달렸다. 돌아오는 길엔 버스에서 앉아 숨을 고르며 명상 비슷한 걸 해보기도 했다. 이것을 명절(추석)을 기념하는 나만의 작은 세리머니라고 해두자.

아침 달리기를 할 계획이 없었던 탓에 휴대 전화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은 상태로 뛰었지만, 1/3 지점까지는 사진도 열심히 찍고 심지어 팟캐스트까지 들으며 달려보았다.

사진: ‘무궁화 동산’

팟캐스트는 언제나처럼 즐겨 듣는 “Hidden Brain”. 최근 책 [Hope for Cynics: The Surprising Science of Human Goodness](2024)을 낸 Jamil Jaki와의 인터뷰다. “You 2.0: Fighting Despair“.

냉소(cynicism)는 과연 도움이 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내가 생각해왔던 것과 비슷한 이야기가 펼쳐진 인터뷰. 예를 들어, 냉소적인 사람은 과연 거짓말을 더 잘 포착하는가? 인터뷰에 따르면 사람을 더 신뢰하는 사람이 거짓을 알아차릴 확률이 높다고 한다. 냉소의 함정은 도무지 믿을 것이라곤 하나도 없기에, 그 어떤 판단도 믿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실망에 빠진 이상주의자로 냉소에 빠지는 대신, 회의적인 낙관주의자가 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한다.

사진: 좋아하는 나무들도 찍어보았다.

달리던 중 휴대전화가 꺼지기 직전 메모를 해둔 것은 이런 내용이었다. “숫자로 세지 않기”. 말하자면 모든 것을 교환 가치로 여기지 않기. 굳이 수치화 할 필요 없는 것을 숫자로 만들어 정량화하지 않기.

달리다 멈추거나 걷기라도 하면 가차 없이 ‘숫자로 세기’를 멈춘 기록 앱에 따르면, 한 시간 가량 이동하고 걷고 뛰는 동안 ‘진짜 달리기’를 한 건 절반 가량이었다고. 계획에 없던 아침 달리기 탓인지, 오전엔 아기 이서Ether를 보다가 깜빡 잠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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