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아냥, [모노하와 태도들]

  • 제목: [모노하와 태도들]
  • 저자: 미셸 누리드자니, 박순홍, 가기타니 레이, 오사와 요시히사, 손지민, 박창서
  • 출판사: 갤러리 신라 https://www.instagram.com/galleryshilla/
  • 출간일: 2023년 7월 1일
  • 분량, 무게, 크기: 288쪽 | 487g | 149*210*16mm
  • 도서 분류 (교보문고 기준)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예술일반 > 예술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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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용의 발제 노트

꽤나 구하기 어려운 책입니다. [모노하와 태도들]은. 주요 인터넷 서점 중에는 아마도 교보문고에서만 유통되고 있습니다.

책을 만든 갤러리 신라에서는, 아마도, 최선을 다 한 결과일 것입니다. 이 책의 서지정보colophon에서 확인할 수 있는 건 ‘좋은땅 출판사’가 편집을 도왔다는 것인데, 이 출판사는 자비 출판을 지원하는 출판사입니다. (https://www.g-world.co.kr)

그러니, 갤러리 측에서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책 유통을 시도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 결과, 대형 서점 가운데 그나마 교보문고에서 공식적으로 판매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갤러리가 책을 내는 건 딱히 새로운 일은 아닙니다. 가장 흔하게는 전시를 열 때 도록을 만드는 일이 그리 드문 건 아니니까요. 심지어 (한국이 아니라 글로벌 규모로 운영되는) 갤러리에서 출판팀을 따로 운영하거나 출판사를 따로 세우는 경우도 많습니다. 때로는 몇 만 권이 넘는 책을 보유한 자체 아카이브를 운영하기도 하죠.

2023년 11월 방문한 뉴욕의 페이스 갤러리 (내부용) 라이브러리 & 아카이브. 10만여 점의 자료를 관리, 수집하기 위해 전문 사서를 비롯해 여러 사람이 풀타임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사진: 박재용

예를 들어 하우저앤워스Hauser & Wirth 갤러리는 하우저앤워스 퍼블리셔스Hauser & Wirth Publishers를 운영하고, 물리적으로 서점을 운영하기도 합니다. https://www.hauserwirth.com/publishers/

심지어는 [Ursula]라는 미술 잡지를 발간하기도 하죠.

잠깐 이야기가 딴 길로 샌 것 같지만, 1992년에 대구에서 설립되어 막 30주년을 지나고 경영진의 세대교체가 이뤄지는 것으로 보이는 갤러리 신라가 이렇게 책을 발간했다는 게 그만큼 대단 혹은 대견 혹은 고무적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접속해 “모노하”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이 무엇이 있나 검색해보면, 지금으로선 [모노하와 태도들]이 사실상 유일한 책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더 그렇습니다.

갤러리 신라에서는 이 책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을까요? 교보문고 웹사이트의 책 소개 란을 한 번 보겠습니다.

◆ 연구진 – 
본 신간은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이우환이 주도하였고 오늘날까지 세계 각지에서 활발히 소개, 연구되고 있는 일본의 예술 운동 모노하(もの派)에 대한 다자연구서이다. 연구진은 한국, 일본, 프랑스 등 3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술사학자, 미술비평가, 미학자, 현직 작가 6명으로 구성되었다. 연구기간은 총 4년이다.

◆ 기획 의도와 발간 동기 – 
모노하는 지금은 세계적인 작가가 된 이우환의 주도하에 1960-1970년대 무렵 일본의 젊은 작가들에 의해 개진되었으며, 예술학과 미학에서 쉽사리 해결되지 않는 가장 핵심적인 쟁점들을 다루었다. 이들의 작업은 동양 전통 철학부터 현대 서양 철학까지 불러들이는 매우 방대한 스코프를 지니고, 또한 그래서 많은 오독과 오역을 겪어야 했다. 이에 이들의 족적과 유산을 각기 다른 세부 분야들의 관점에서, 그리고 다국적 관점에서 연구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어 왔다.

◆ 모노하란? – 
모노하란 모노(もの)를 다루는 작가들을 가리킨다. 모노는 개인들과 세상 모든 사물들 간에 맺어지는 관계를 가리킨다. 이들은 기존 예술과 미학이 관객과의 소통을 도모하지 못했다는 비판적 시각을 공유했다. 이에 현대시각예술이 관객과 일상적 사물들을 통해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였다. 이들이 제시하는 방법은 나름의 모노를 경험하게 한 촉매로서의 사물들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관객들에게 제시하는 매우 이례적인 방법이다. 쉽게 말해 이 방법이란 자신들이 지극히 일상적이고 단순해 보이는 사물들(돌 한 개, 숯덩어리, 흙더미 등)과 맺은 관계를 관객의 경험까지 이어지게 하는 것이다. 이들이 모노에 집중하려는 까닭은 어떠한 주관적 관념(언어화/개념화된 의도, 이미지, 메시지 등)을 작품이라는 불투명한 매개로서 제시하고 그것을 독해하게 하려는 전통적 관행에서 벗어나, 사물세계 내에서 작가와 관객의 관계들을 자각하고 드러낼 수 있게 하는 방법을 강구하기 위해서이다. 이들의 이러한 고민은 동서양 예술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쟁점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며, 예술과 미학을 모두 극단까지 끌고 가는 예술의 역사에서 매우 보기 드문 시도이다.

꽤나 명확하죠? 책은 기획 의도를 나름 충실하게 반영하는 듯 합니다. ‘모노하’라는, 어디서 한 번 쯤은 들어봤지만 깊이 들여다 볼 기회는 잘 없는 미술의 유파에 관해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니까요. 개인적으로는 책의 몇 부분에서 생각이 트이는 경험을 했습니다.

Hirata Minoru 平田實
Hi Red Center’s ‘Cleaning Event’ (officially known as ‘Be Clean! Campaign to Promote Cleanliness and Order in the Metropolitan Area’) (LINK)

한국의 미술 감상자들에게는 ‘이우환’이라는 작가와 관련된 단어로 종종 떠오르곤 하는 ‘모노하’를 다면적으로 다룬 이 책에서, 여러분은 과연 무엇을 얻었을지 궁금합니다. 결국 작품이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처럼 ‘무에서 유로’ 창조되는 것이 아니며, 작가 또한 그 누구와도 관련을 맺지 않는 ‘유일무이한’ 창조자가 아니며, 예술 안에서의 어떤 흐름이나 사조 또한 마찬가지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었을지도요. 심지어 이러한 연결망에서 과연 어떤 요소, 어떤 사건, 어떤 인물들이 영향을 발휘했는지 또한 때로는 ‘팩트체크’만으로 확인할 수 없는 연구와 논쟁의 영역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오늘 함께 이야기나눌 책에 대한 개인적 감상과 의견을 떠나, 여러분은 ‘역사를 만드는 순간’을 목격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짜릿하지 않나요?

고은의 노트

케이옥션 2023년 6월 경매에 나온 이우환, Dialogue. pigment suspended in glue on canvas 290.9×218.2cm (300), 2007 추정가 13억5000만~ 20억 원

이우환의 해외 경매 최고가는 2014년 소더비 뉴욕경매에서 한화 23억7000만원에 낙찰된 ‘선으로부터’다. 국내 생존작가 중 최고 비싼 작가 1위다. 국내 경매시장에서 3년째 낙찰총액(2022년 255억)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다.

– “이우환 경매최고가” google 검색 

오늘의 책은 지극히 ‘모노하’ 라는 하나의 미술적 양식에 대한 비평적 성과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모노하, 단색화란 단어가 갖게 되는 현재 시장 내의 위상과 ‘옥션 최고가’ 같은 배경들에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의 ‘감상’은 또 ‘예술성’에 대한 평가는 이런 작품을 둘러싼  이야기들에 어떻게 반응할 수 있을까? 그나저나 이 작품은 정말 그 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 

사실 이우환 자신도 처음 그가 ‘모노하’개념에 대한 작업을 시작했을때, 지금으로 부터 약 50여년 전에는 오늘과 같은 자신과 그의 작품적 위치를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래 글은 다음의 참고문헌에서 발췌했습니다.

  • 박주선, 작가 브랜딩(Artist Branding)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2019-02
  • 김미경, 『(모노하의 길에서 만난) 이우환』, 공간사, 2006.심상용, 『한국 미술의 빅뱅: 단색화 열풍에서 이우환 위작까지』, Yellow Hunting Dog, 2016.

“대지의 흙은 원기둥의 공(空)으로 해체되었고, 그 해체된 흙은 원기둥으로 구축되었다. <장자>에서 읽을 수 있듯이 ‘분리되는 것이 곧 이루어지는 것이요, 이루어지는 것이 곧 허물어지는 것이다. 무릇 만물은 이루어짐도 허물어짐도 없는 하나인 것이다.”

세키네 노부오, <위상-대지 Phase-Mother Earth, 1968>

이우환이 일본미술계에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평론 활동에서였다. 1969년에 『산사이(1969. 6)』에 「존재와 무를 넘어서- 세키에 노부오론」이라는 글을 발표했고, 같은해에 「사물에서 존재로」라는 글로 미술출판사의 예술평론상에 입상한다. 그리고 곧 이어 1971년에는 『만남을 찾아서』를 출판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의 이론에 기댄 일련의 작가들이 작품 활동을 전개함으로 소위 ‘모노하(物派)’가 탄생하기에 이른다. 

모노하가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1960년대의세계적으로 전후 유토피아에 대한 상실과  새로운 세대교체의 불안함이 있다. 테크놀로지에 대한 반성, 서양 중심의 이분법 극복, 다양성을 인정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부상하기 시작한 시대였다. 이런 현상은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경제적인 대국으로 부상한 일본에서도 나타났다.

이러한 맥락에서 모노하와 그에 대한 이우환의 이론은 일본의 현대미술을 서양미술의 한 유파로 보지 않고, 거기에 독자적이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준다는 측면에서 일본 미술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또한 이우환의 미술론은 이론에 목말라 있던 한국화단의 호응을 얻게 되었다. 일본식 교육을 받은 그의 이론은 형식적 모더니티를 한국적 모더니즘으로 이해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며, 박서보와의 교류를 통하여 한국 미술계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1970년대 중반 이후 단색화는 ‘단색파’, ‘모노크롬’, ‘한국적 미니멀리즘’등으로 지칭되었으며, 이후 한국 현대미술의 대명사로 평가되어 왔다. 한국 미술계에서 ‘단색화(Dansaekhwa)’란 용어는 윤진섭이 기획한 2000년 광주비엔날레 특별전과, 《한국의 단색화-Dansaekhwa: Korean Monochrome Painting》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 전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는데, 이를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적 양식으로 명명하면서부터 고유명사화 했다.

미술가가 미술작품을 창조한다 하더라도 그 자체로서는 아무런 소용이나 가치가 없다. 그러나 이 미술작품들은 미술의 여러 제도들(화랑이나 미술사, 미술출판, 박물관 등) 내로 순환하면서 비로소 현대세계의 다른 어느 것보다도 상대적으로 깊은 의미와 중요성을 획득하고 그 가치가 증폭된다.

– Mary Anne Staniszwski,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Beliving is Seeing: Creating the Culture of an Art』 (1995), 박이소 옮김(현실문화, 2011), p. 28

2011년 6월 24일부터 9월 28일 구겐하임 미술관(Guggenheim New York)에서 있었던 《이우환: 무한의 제시 Lee Ufan: Making Infinity》은 그의 국제적인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전시로, 이 전시를 통해 이우환은 명실상부한 ‘세계적’ 작가로 자리매김 되었다. 그리고 이후 2014년 그의 작품의 최고 경매가가 경신되었다.

2011년 6월 24일부터 9월 28일 구겐하임 미술관(Guggenheim New York)에서 있었던 《이우환: 무한의 제시 Lee Ufan: Making Infinity》은 그의 국제적인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전시로, 이 전시를 통해 이우환은 명실상부한 ‘세계적’ 작가로 자리매김 되었다. 그리고 이후 2014년 그의 작품의 최고 경매가가 경신되었다.

작품은, 작품가는 단순히 한 순간의 투기 구조나 일부 게이트 키퍼들의 일정한 작용으로만 규정되지 않는다. 여기에는 시대적 특성과 그것을 드러낸 작가의 작품, 미술계의 인정 그리고 이후의 브랜딩이 더해진 모든 과정의 결과물인 것이다. 

여기서 다시 눈 앞의 ‘점’과 ‘선’을, 그 ‘만남’을 오롯이 감각할 수 있는가를 질문해 본다면,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 너무나 복잡한 사회.정치와 문화적 배경이 우리의 감각을 조종하고 있는 것을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작가 자신들에 대한 흉흉한 가쉽을 넘어) 예술 작품이 우리에게 주는 감동을 부인할 수는 없다. 작품 외에는 모든 것을 가리우는 전시장의 흰 벽과 화이트 노이즈의 웅웅거림이 오늘 더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함께 생각해 볼 것들

  1. 당신은 ‘이우환’을 좋아하나요? 마치 프루스트를, 쇼팽을 또 위스키를 좋아하나요? 라는 질문과 앞선 질문에는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그리고 당신은 정말 ‘이우환’을 좋아하나요? 
    • (추가 질문) 어떤 작가를, 어떤 작품을 ‘좋아한다’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당신에게 그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2. 이번 책은 작품 판매를 사업으로 삼는 갤러리에서 만든 책입니다. 이 책은 어떻게, 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세요?
  3. 이 책은 ‘모노하’라는 하나의 사조에 대해 다양한 관점을 제공합니다. 각각의 논의를 다 읽어보는 경험은 미술을 바라보는 당신의 생각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깨달음이 있었나요?

독서 노트 인용

돌덩이를 예술이라고 부르는 그들만의 예술 세계에 공감하기 어려워 일본 나오시마에 갔을 때 다른 미술관은 갔어도 바로 옆에 있는 이우환 미술관은 안 갔었고,부산시립미술관 별관의 이우환 공간에서도 심드렁하게 관람했었던 나다. 

그랬던 내가 대구미술관 《모던 라이프》 전의 마지막 섹션이었던 ‘기원’에 작게 놓여있었던 <관계항> 작품을 보고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한 그 울컥함은 무엇이었을까. 반대로, 같은 소재인 돌이지만 리차드 롱의 돌무더기 작품에서는 어떤 감흥을 느낄 수 없었다.

– ㅂOO

캔버스가 채색의 도구가 아닌 사물로서 등장한 <물과 언어>라는 작품 이후로 등장하는 이우환의 캔버스 속 단색화들은 다른 작가의 단색화와 다른 존재감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책 속 「이우환의 더블 이미지: 한국에서의 모노하와 모노하 이론의 수용」이라는 챕터에서 한국의 단색화 운동에 대한 이우환의 영향 등에 대한 분석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이우환은 모노하의 ‘관계성’을 유지한 단색화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 OㅅO

대단하다. 갤러리에서 전시도 하고 책, 그것도 학술서를 내다니. 나도 이번에 전시를 하고 책을 내긴 했지만. 언젠가 지속하다 보면(지속가능성이 현재는 없다) 학술서도 낼까?
– OㅅO

단색화라 불려오는 작가들의 그림들은 알수없게 호감이 갔다. 어째서일까. 여러가지 추측을 해본다.

1. 어린시절 교과서에서부터 시작된 여러 매체를 통한 가스라이팅

2. 건축공부를 하며받은 미니멀리즘 가스라이팅.

3. 꼬리달린 가격표를 보며 느껴지는 호감도

4. 난해하고 전위적인 작품사이에 있는 단순함

…본질에 대한 의문. 본질에 가까이 가기 위해선 어떻게 형식?개입?개인?편견?확증?을 지워낼수 있을까? 그리고 그렇게 해서 생겨난 형식에 대해서는? 이런 글을 쓰는 비평가의 글조차도 사실 모욕아닐까? 

흠. 아름답다는것이다. 이에대해 한번 이야기해보는건 어떨까. 각자가 목도해본것들이 궁금하다.

– OㅈO

“다소 힘들게 읽은 독후감”

솔직히 현대미술에 대해 공부하면 할수록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문외한 눈으로 보면 사실 미니멀리즘/모노하/단색화는 다 유사해 보이는데, 세 가지 개념은 분명히 어떤 이론적 차이가 있다고들 한다.

…모노하와 관련된 이론은 이해하기 어렵긴 하지만 실제로 이우환의 글을 읽고, 이우환의 작품을 감상할 때에는 간신히 이우환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알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이우환의 위작 논란 관련하여, 작가가 자신의 위작으로 밝혀진 작품을 보고 “호흡, 리듬, 채색 쓰는 방법이 모두 내 것이었다”라고 주장한 것을 생각하면, 또 모노하와 관련된 그의 이론이 정말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번 책은 좀 힘들게 읽었는데, 책을 시작하기 전에 이우환의 위작 논란 때문에 모노하의 이론적 배경을 괜히 의심한 상태에서 읽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 OOㅇ

현대에 와서 예술은 미와 결별했다곤 하지만, 인간이라면 ‘미’라는 순수한 쾌를 보편적으로 추구한다고 믿는다. 그 보편성이 곧 작가와의 연결고리이자 모노노아하레로 작용하는 것이 아닐까. 취향을 포함해 모든 것이 점점 더 파편화되어가는 시대에 모두가 가진 능력에 호소하는 모노하 작가들의 예술 실천은 조금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모노하라는 이름 아래로 작가들의 활동이 묶인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것조차 하나의 이념이 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마치 돈을 주고 무소유 체험을 하는 템플스테이처럼)

모노하라는 단어가 ‘아는 것’이 되어버린 이상 과연 앞으로 이우환의 작품을 보면서 ’보는 것’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을까? 

‘어디서 모노를 느껴야하는 것인지’ 고민하고 있지는 않을지, 무아의 순간은 아무것도 모르는 때만이 가능한 것이 아닌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궁금하다.

그럼에도 복잡한 현대 미술의 안티테제(반)가 있었다는 사실은 언제나 더 나은 합이 존재할 것이라는 두근거림으로 다가온다. 

– OO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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