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망계급론], 궁극의 취향!

  • 제목: [야망계급론(The Sum of Small Things: A Theory of the Aspirational Class)]
  • 저자: 엘리자베스 커리드핼킷(Elizabeth Currid-Halkett), 번역: 유강은
  • 출판사: 오월의 봄
  • 출간일: 2024년 3월 2일 (초판)
  • 분량, 무게, 크기: 400쪽 | 510g | 140*210*24mm
  • 도서 분류 (예스24 기준)
    • 국내도서 > 사회 정치 > 사회학 > 사회학일반

계급에 대한 몇 가지 용어

보보스라는 용어는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데이비드 브룩스(David Brooks)가 자신의 저서인 ‘BOBOS in Paradise’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이다.[1]이 용어는 미국의 새로운 상류 계급을 나타내는 용어로 부르주아(bourgeois)와 보헤미안(bohemian)의 합성어이다.

https://ko.wikipedia.org/wiki/보보스

유한계급은 부·화폐의 축적을 비생산적인 생활의 쾌락에 쏟고, 예술이나 경기의 감상이라든가 동물애완 등, 물질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 활동에 시간을 소비하는 생활양식에 가치를 두고, 또한 이것에 의하여 명성이나 위세를 높이고 고정시켜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기 내지 자기들을 구별하는 계층을 말한다. 이와 같은 계층은 사유재산제가 성립하여 계급사회가 형성되었을 때 개인이 가진 재력 때문에 전적으로 피지배계급의 노동 성과에 의해서 생활하며, 자기자신은 생활을 위하여 일하지 않으면서도 오히려 생산적 노동을 멸시하고 비생산적인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자들로부터 생겨났다. 그 모체는 노예소유자·지주·귀족·자본가 및 그들에 기생하는 일부 계층이다.

https://ko.wikipedia.org/wiki/상류층

그렇다면… ‘야망계급(aspirational class)’은? (저는 이 단어를 ‘열망계급’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이 글에선 ‘열망계급’이라고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야망계급론(The Sum of Small Things: A Theory of the Aspirational Class)]의 저자 엘리자베스 커리드핼킷(Elizabeth Currid-Halkett)은 이에 대해 간단하고 명확하게 정의를 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하는 건 불가능할지도요.) 대신, 갖가지 통계나 경험에 기반한 내용으로 야망계급을 이리저리 그려보려 합니다.

모임 참가자인 ㄷㅈ님이 “대한민국에도 야망계급은 존재하는가?”라는 독서노트에서 지적해주신 것처럼, 저자의 이야기를 이곳의 맥락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애초에 오늘날 계급과 지위에 대한 논의는 그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어떤 면에서 경제/사회/문화적 자본은 이제 정신 없이 쪼개어져 있으니까요. 누군가는 셋을 다 가진 반면, 누군가는 그 중 하나만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게다가 문제는, 여유 있는 사람들에겐 불평등의 문제가 눈에 보이지 않지요. 책의 논의를 따른다면, 이런 ‘비가시성’은 장기적으로 불평등을 심화시키는데 일조합니다.

그래서… 어쩌란 것인가?

그런데…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 라는 질문에 대해서 답을 주지는 않습니다. 선의를 가지고 하는 행동 혹은 자기가 처한 위치에서 스스로의 ‘아비투스(habitus)’에 따르며 스스로의 편익을 위해서 한 행동(말하자면 책의 원제인 “the sum of small things”에 부합하는)들이 계급 장벽을 공고히 하고, 불평등을 확대한다. 그러면, 이걸 뒤집을 수는 없더라도 그 격차를 줄이거나 개인적/사회적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건 뭐냐는 질문에 대해서 말입니다. (물론, 이 역시도 시원하게 답을 하기는 애초에 무척 어려운 질문이긴 합니다.) 다만, 이 시점에서 [야망계급론]이 촉발한 몇 가지 추가적 독서 대상을 소개할 수는 있을 것 같네요.


  •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 빈곤과 청소년, 10년의 기록](강지나)(서울: 돌베게, 2023) > 링크 <
  • [계급천장: 커리어와 인생에 드리운 긴 그림자](샘 프리드먼, 대니얼 로리슨 저, 홍지영 역)(서울: 사계절, 2024) > 링크 <
  • [계급 횡단자들 혹은 비-재생산](샹탈 자케 저, 류희철 역)(서울: 그린비, 2024) > 링크 <
  • [자살하는 대한민국: 우리가 선택한 파국과 소멸의 사회경제학](김현성)(사이드웨이, 2024) > 링크 <

이곳에서, 우리가 생각해 볼만한 것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으면서 ‘열망계급’에 대한 문화인류학적 설명이 저에 대한 설명과 어디까지 맞아떨어지는지 마치 체크박스를 점검하듯 보게 되어 참 재미있는 경험을 했습니다. 어쩜 이렇게 소름돋게 내 모습을 그린 걸까? 싶을 정도로요. 제가 문화예술계(혹은 ‘창조산업’)에 종사하고 있어서 더 그랬던 것 같기도 합니다. 최근 베니스 비엔날레 프리뷰와 오프닝에 맞춰 3주간 출장과 휴가를 겸해 온 가족이 이탈리아에 다녀왔던 일을 많이 돌아보게 되기도 하였고요. 모임에서 이 부분에 대해서 – 소위 ‘열망계급’이라는 상(image)과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부합하는지 이야기를 나누어보아도 흥미로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편, 이 책이 미국 사람이 쓴 미국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은 책을 읽으면서 잊지 말아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량적 데이터에서만 아니라 정성적인 참여관찰의 측면에서도 말입니다. 책이 나온 시기가 2017년이고, 2007~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자장 아래에서 쓰여졌지만 코로나19와 그로 인한 엄청난 유동성 공급이라는 상황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 또한 마찬가지고요.

어쩌면 책에서 조금만 논의되었지만 우리가 더 확장해서 생각해 볼 부분은 ‘능력주의’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트레바리라는 책읽기 모임에 등록한 많은 사람들도 여기에 해당되리라 생각하지만) 마치 ‘순풍을 탄 돛단배처럼’ 삶에서의 성취를 이뤄온 (물론, 개인의 차원에서는 엄청난 노력, 고난과 역경을 뚫고 이룬 것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여기는 이른바 능력주의나 공정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말입니다.

(이 뒤로 한참 글을 썼지만 웹브라우저가 오류로 꺼지는 바람에 유실되었다는 슬픈 소식과 함께… 기억을 더듬어 함께 살펴 볼 질문 정도만 다시 되살려보면)

여기서 잠깐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빼먹지 않았는지 살펴봅시다.

  1. 지난 한 달에 대한 각자의 간략 업데이트. 이 책을 읽으며 생활 속에서 했던 생각 등.
  2. 책에 대한 총평. 공감 가는 부분 혹은 비판의 지점 등.
  3. 이 책에서 확장해서 더 보고 싶은 건 없는지?

그런 뒤에…

질문들

  1. 한국의 ‘열망계급’을 하나의 전형(stereotype)이나 상(image)으로 그려본다면? (혹시 그 모습이 이 자리에 모인 우리는 아닐지…?)
  2. 내가 ‘의식적으로’ 내리고 있는 소비상의 결정이나 행동 양식이 있다면? (“나는 OO에는 돈을 쓰기로/쓰지 않기로 했어요.” “나는 OO에 대해서는 OO하고 있어요.” 등…)
  3. 책의 영문 제목 “The Sum of Small Things”에서도 드러나는 바, 우리가 내리는 작고 사소한 결정들이 모여 계급과 계층의 격차를 확대하고 공고히 합니다. 그럼 우리는 – 개인적 차원에서 혹은 집단적 차원에서 – 대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세요?
    • 이에 덧붙여, 혹시나 이 자리에 함께 있는 서로를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차이’라는 관점에서 평가해 볼 수 있을까요? 구체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고, 인상 비평을 해도 좋겠습니다. (“OO님은 OO할 것 같아요.” 랄지, “OO를 입고 계신 걸 보니 OO하신 건가요?” 와 같은…?)

독서 노트(들)로부터의 인용

7장을 읽다 예전에 보았던 영화 <빅쇼트>의 피해자 대부분은 중간계급이었고 이들이 현재까지도 그 여파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이유는 중간계급 일자리 감소와 비과시적 소비의 높은 비용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리처드 이스털린이라는 유명한 경제학자가 행복을 위한 우리의 노력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경제성장의 힘을 지식의 진보로써 통제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고 한다. 과연 이를 지식의 진보로 극복해내는 이타적인 야망계급이 등장하는 날이 올 수 있을까?

– ㄱOO

(ㄱOO님은 [야망계급론]을 너무 훌륭하게 정리해주셨습니다. 꼭 읽어보세요들!)

다른 분들은 과시적 생산과 비과시적 소비 운동이 정말로 ‘안일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이 운동이 공정무역과 로컬주의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을 고려할 때, 이러한 비판이 적절한가요?

– ㅂOO

과시적 생산 상품의 소비가 구별짓기를 위한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참신하게 다가왔다. 그럼에도 개인의 사회경제적 상황에 따라 어떤 부분에서는 이러한 소비를 선택할 수 없는 케이스에 대한 구체적인 예들을 보며 다양한 사람들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고아제품’이라는 개념이 흥미로웠다. 현대인들의 번아웃 증상은 이런 고아제품을 만드는데서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하는 일에 의미를 찾기 힘든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 ㅇOO

(더불어, oOO님이 관련 서적으로 추천해주신 책들)

  • 카타오카 에미 지음, 이은주 옮김, <취미와 사회 권력>, 소명출판, 2024
    • 피에르 부르디외의 문화자본과 아비투스 개념을 통해 문화적 재생산과 계층, 젠더의 관계를 분석한다. 
  • 문경연 지음, <취미가 무엇입니까? (취미의 일상 개념사와 한국의 근대)>, 돌베개, 2019
    • 취미라는 일상 개념이 한국 근현대사에서 형성되고 변천하는 양상을 담은 책.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세계가 이렇게 빠르게 흘러갈 때 내가 정체성을 가지고 서있는다면, 내가 다르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깨어있다고 생각하는 내가 행동하는 모습이 비과시적 소비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닐까? 어떻게 사는 삶이 즐거운 삶일까? 글을 쓰면서 고민해보지만 명확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 OㅅO

사람들이 좀 더 문화에 오픈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다양한 문화속에서 자기 취향의 화가나 작곡가를 찾고, 스스로 좋아하는 악기를 찾아 연주를 해보는 경험들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사실 아주 큰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시발점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차렸으면 한다.

– ㄱOO

“상징적 기표의 세습 – 교육과 문화자본 “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의문은 타고날 때부터 각자 다른 물질적 조건과 환경 속에서 자란 사람들이 타고난 차이를 완전히 없애는 것이 가능할까? 삶의 질을 향상시키려는 개인적 동기에서 비롯된 행위가 타자를 배제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나? … 교육으로부터의 소외, 정보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단순히 현상을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개인적, 사회적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 상세하게 논의하는 대목이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 OㄱO

그렇지만 ‘계급’이라고 말할 정도가 될까? … 즉, 새로운 계급이 출현했다기 보다는 소비형태가 변한 것이라 보는게 맞다고 생각한다. 책에서 계속 언급하듯 야망계급의 이면에는 그런 소비를 할 수 있는 돈과 시간이 있으므로 애초에 그럴만한 여유가 있는 계층에 해당하는 분석이다. 

– ㅂOO

그런 행동은 세련되지 못했어.

어느 순간부터 나는 각종 내 마음에 안드는 것들에 세련되지 못했다는 말을 붙이고는 했다. 그냥 습관성으로 하는 말이었기에 크게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잘 생각해보면 세련되지 못한 것들과 나를 구분짓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 OㅅO

탄소 발자국이 큰 음식 대신 소비 지역에서 가까운 거리에서 생산된 로컬 푸드를 먹자, 대량 생산한 인스턴트 대신에 직접 요리를 해서 먹자, 등등 다 좋은데 껄끄럽게 느껴지는 이야기들에 답답했던 속을 긁어 줘서 조금 시원했다. 

– ㄱOO

“대한민국에도 야망계급은 존재하는가?”

미국 엘리트 사회와 엘리트가 활동하는 도시를 조망할 수 있다는 흥미진진함 뒤에 야망계급론을 한국 사회에 대한 어떻게 적용시켜야 할지 고민이 생겼다. ‘한국적 적용’을 중심으로 질문이 떠오른 이유라면 이유겠다.

→ Q1. 단핵사회-낮은 이질성-높은 인구밀도로 인한 소비문화의 차이는 없을까. 

→ Q2. 본서의 주장 가운데 적용할 수 없는 부분, 혹은 본서의 주장 가운데 강화시킬 수 있는 내용이 있을까.

*개인적으론 한국과 미국 사이에 도심지 내 편의 시설 접근성 측면에서 결정적 차이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권역을 넘나들기 어렵다면 한국은 그렇지 않다.

→ Q4. 한국 내 부촌 거주 고소득 서비스업 종사자(예컨대 성형외과 의사)가 그 외 서민층과 다른 소비 행태를 보인다고 할 수 있을까. 

*겉보기엔 두 집단 모두 무차별하게 과시소비를 지향하는 것처럼 보인다.

→ Q5. 서울 평창동, 부산 남천동 등 소위 ‘전통 부촌’과 서울 강남3구·마용성, 부산 마린시티 등 ‘신흥(?) 부촌’ 거주자 사이에 소비 행태 차이가 있을까.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일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전통 부촌’ 거주자가 유의미한 코호트가 될 수 있는지 불분명하다고 생각한다.

→ Q6. 거주지 자체가 지위 지표로 작용한다면, 사회문화적 기표를 통한 구별짓기가 필요한가.

– ㄱ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