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년 4월 23일 나는 이광표 장관과 함께 청와대로 올라가 전두환 대통령에게 ‘80년대 새 문화정책’을 보고했다. 이 계획(안)에는 국립현대미술관 건립계획이 포함돼 있었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은 ‘미술관 위치는 중앙청이나 덕수궁이 아닌 강남으로 정하되, 졸속을 피하고 50~100년을 내다보면서 조성할 것’을 지시했다.
– 김동호, “[김동호 남기고 싶은 이야기] 타이거 사람들 <20>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건립” (링크)
박재용의 노트
미술관은… 뭘 하는 곳일까요? 아니 이 질문을 하기 전에, 다른 질문부터 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미술관은… 어떻게 해서 생기게 된 곳일까요? 그곳의 탄생과 구성, 공간, 운영은 분명 그곳에서 보여지는 미술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에 영향을 미칠 겁니다. 그렇다면, 그런 공간이 대체 어떻게 해서 생기게 된 건지를 한 번 쯤은 살펴보는 것도 미술을 바라보는 시각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데 분명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의 책, [미술관이라는 환상]은 꽤나 유용합니다. 책의 발간 시기와 원제를 짚는 것도 유용한데, 이 책은 1995년에 발간되었고 원제는 [Civilizing Rituals]입니다. 이 둘은 책의 내용을 파악하는데 큰 단서가 되고요.
이번 책에선 프랑스, 영국, 미국을 중심으로 대체 공공을 위한 미술관(이 표현 역시 논란의 소지가 있는 표현이라는 점을 살짝 귀띰해야만 하겠습니다)이 어떤 과정으로 설립되었는지를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아주 거칠게 요약하자면, 미술관이라는 제도의 발생은 거대한 정치사회적 변화의 일부라는 것. 적어도 유럽에서는 그러하며, 유럽에 비해 ‘근본이 없는’ 미국은 조금 경우가 다르다는 것. 미술관은 (모든 제도가 그러하듯) 특정한 관객의 상(image)을 그리는 공간이라는 점 등을 알 수 있는 책이죠.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고민하게 되는 건 이런 부분들입니다. 그럼 우리가 사는 여기 이곳에서 미술관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나? 라는 질문이죠.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책을 참고할 만 하고요.
이 책의 한 챕터가 이런 내용이거든요.
Ⅲ. 박물관의 탄생과 전통 계승
1. 박물관의 탄생:帝室博物館과 御苑
2. 조선총독부박물관 서화컬렉션과 전통의 보존
3. 조선민족미술관과 민예론의 탄생
‘아아 나는 그저 미술을 즐기고 싶을 뿐이라구 내게 복잡한 제도 구축의 역사를 들이밀지마…!’라는 생각을 누군가는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만,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는 걸 기준으로 삼으신다면, 그건 미술을 제대로 즐기는 게 아닙니다’라는 이야기를 외려 드리고 싶습니다. 기원과 전개를 따져보는 건 미술/예술을 즐기는 일이라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어쨌든, 앞서 이야기한 내용으로 다시 돌아가보자면, 책을 읽고서 생각해보아야 할 건 바로 지금 이곳에 존재하는 미술관들이 대체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한 번 쯤 생각해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통은 미술관 웹사이트의 ‘소개’란에 대략적으로 써 있을 법한 내용들 말이죠.
고은의 노트
세계의 질서, 과거와 현재, 그 내부에서의 개인의 위치에 관한 믿음을 공개적으로 재현하는 장소
– [미술관이라는 환상], 31.
“시간이 중지 된 듯한 사원”
– Ibid., 38-41.
“ 자신의 본질과 힘을 직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환상을 품게해주는 문화적 현현”
“ 명상적 상태를 추구하는 무대 “
“시간 밖으로 나가 새롭고 더 거대한 시간을 획득할 수 있는 장소.”
미술관은 당신에게 무엇인가요? 우리가 지난 시간 만났던 사토리씨에게는 적어도 “시간이 중지 된 듯한 사원”이나, “명상적 상태를 추구하는” 곳 보다는 “좋은 사람들과 지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작은 사교의 장” 같은 것 아니었을까요? 오늘의 책을 같이 읽어봤으면 했던 건, 이 공간의 사적이고 감상적인 기능도 외에 역사.사회.경제적 측면을 바라보며 더 복합적인 예술의 면모도 이야기 나눌 수 있지 않을까 했습니다.
“모든 것은 정치적일 수 밖에 없다.”라는 명제를 벗이나 조금의 쉼을 얻기 위해서 들리던 미술관이 너무 피곤한 곳으로 비춰지길 원치는 않지만, 자칫 너무 사변적으로 흐를 수 있는 미술 감상이 사실은 온전히 현실에 기반하고 있으며, 또한 지리멸렬한 욕망과 크고 작은 인류의 서사들 사이에 지켜낸, 소중하게 남겨진 장소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저자의 논문을 바탕으로 쓰여진 책 답게 글들은 꽤 학문적인 연결고리들을 이어가며 진행됩니다. 아래 간단한 책의 갈무리를 통해 캐롤 던컨이 짚어낸 미술관의 다양한 얼굴들을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계몽의 드라마: 새로운 시민, 공중을 위한 의례.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최초의 미술관 역사는 프랑스 혁명기에 국민의회가 루브르 궁을 접수한 후 이를 개조하여 중앙미술관(Musee Central des Art)으로 개관, 과거 왕족이나 귀족이 독점하다시피 한 문화재나 보물, 미술품들을 일반시민들에게 공개 하면서 시작되었다. 문화적 가치가 있는 물건들을 일반시민들의 교육을 위해 공 개한다는 것은 물론 계몽주의자들의 발상에 근거한 것이었다.
#정치적 대립을 위한 의례
“미술관은 예술을 관람할 뿐만 아니라 즐거운 점심식사와 세련된 상품들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를 향유하기 위해 미술관을 찾는 부유한 소비자들을 점차 인정하고자한다.”
– Ibid., 151.
*이 논의는 1980년대 후반 최초의 미술관의 공중적 의의가 점차 자본주의 상황의 ‘기업체’로 변모되자 로잘린드 크라우스(「포스트모더니즘의 벽 없는 미술관」, 구겐하임 미술관 비판), 할 포스터(콤플렉스(2011)_ 디아예술재단 비판) 등을 통해 더 대두 되었다.
#기증을 통한 영원한 귀족지위 획득으로서의 의례
뮤지엄의 원형은 개인 수집품에서 시작됐다. 유력 제왕과 귀족들은 진기한 물건을 구해 진열해 놓고 이를 주변 사람에게 공개해 자신의 위세와 재력을 과시했다. 너도나도 세계 각국의 화려하고 이국적인 물건들을 구해 궁궐 안에 전시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막시밀리안 2세(재위 1564~1576)는 그 대표적 인물이었다. 그는 첨단 과학기구를 비롯해 희귀한 동식물의 표본 등 전 세계의 진기한 물건을 수집해 궁궐 안에 보관했다. 신성로마제국이 전 세계를 아우르는 막강한 제국임을 뽐내기 위한 의도였다.
https://www.hankyung.com/article/2014022823801
#남성의 세계로서의 성 정체성적 의례
“현대미술이 구상을 과감하게 포기하는데 왜 누드화와 매춘부를 그린 그림들이 필요한가? 왜 이 그림들에 그러한 특권과 권위가가 주어지게 되었는가? 어떻게 이 그림들이 현대미술의 고상한 도덕적 의미와 관련된 것인가?”
– Ibid., 229.
생각할 거리 / 질문
- 유명 미술 비평가 제리살츠는 젊은 미술가에게 “가난을 받아들여라” 그리고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에 가보라고 조언한다. 당신에게 가장 좋았던 미술관, 미술관의 경험은?
- 프랑스의 미술관은 왕정의 해체를, 영국의 미술관은 그와 달리 왕정의 복고를, 미국의 미술관은 엄청난 부자들의 명예를 채워주며 발생했다고, 이 책의 저자는 분석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에 있는 미술관들은… 어떤 것 같아요?
- 미술관은 어떤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독서노트 발췌
이 책을 읽으면서 주목했던 점은 ‘미술관’의 유형적, 무형적 의미가 계층에 상관없이 잘 일치화됐는가 였습니다. 유형적 / 무형적이란 표현을 썼지만 ‘유형적’은 미술관 자체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의 계급별 확산, ‘무형적’은 미술의 가치를 이해하거나 의미를 이 해하는 정도가 계층에 확산되는 정도라 표현하겠습니다.
– ㅂOO
“5장. 현대 미술관: 남성의 세계” 파트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또 그런가? 하는 호기심을 유발했다. 피카소의 <아비뇽의 여인들>은 아는 작품이라 더 관심있게 해석과정에 동참할 수 있었다. 여성학도들이 매우 좋아할만한 내용이다. 그런데 나는 잘 모르겠다. 의례와 권력의 공간이며 이제는 여성의 성적 대상화에서 벗어나야한다는 일침이 솔깃하면서도 살짝 저항감을 준다.
– ㄱOO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공공미술관들은 어떤 의례적 역할을 수행 하도록 디자인되었는가 궁금했다. 건축구조부터 시작해서 운영방식, 전 시내용, 예술품 수집 과정 등을 통해 드러나는 의례적 목적, 기능은 무엇 일까? 함께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 KOO
이 책에서는 주로 유럽과 미국을 주축으로 서구권의 미술관 권력과 의례화 과정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 한국은 국가의 정책과 법제에 의해 박물관·미술관의 지원제도가 만들어지고, 공공미술관이 건립되었으며, 정부 차원에서 기구와 기관을 설치, 운영하고 지원하는 형태로 발전해 왔다.
– OㅈO
나의 종교는 ‘미술’이었을까?
누군가 일요일마다 교회를 가듯이, 나는 휴일이면 미술관에 간다.
미술관에서 감상을 하다보면, 현실의 시공간의 감각이 사라지는 경험을 종종한다. 그 순간에는 자유와 해방감을 느끼고, 나아가 무아(無我)의 경지에 이르기도 한다.
그런 순간들이 모여, 미술관은 점차 나에게 신성하면서도 애정어린 공간이 되었다.
어쩌면 미술은 오래전부터 나의 종교의 대안물이었을지 모른다.
– OOO
책의 저자의 말처럼 공공의장이 되어야 하는데 너무나 심각할 정도로 공공의장이 되어버려 가는 곳 마다 이제는 포기를 하는게 많아지는 게 개인적인 현실이다. 늘 생각한다. 전시를 어떻게 나만의 기준을 두고 방문을 하고 봐야할지 순수하게 내가 무언가를 볼 마음의 여유는 있는지.. 책의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는 다르지만 다른 한편으로 나에게 미술관이란 어떤 의미일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 OㅂO
미술관은 아니지만, 시스티나 성당의 천지창조에서 사진 촬영이 금지되는 것이 일본 공영방송사 NHK가 독점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듣고 실소를 터뜨렸던 기억이 난다. 복원 작업을 지원하며 요구한 조건이라고 한다. 먼 나라 일본의 방송사가 그러한 조건을 내걸기 전까지 그 아무도 복원 작업에 도움을 주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 OㅇO
최근 어딘가에서 “미술관은 약자를 위해 싸우는 곳이다” 라는 글귀를 본 적이 있다. 그 의미는 너무 진보적이진 않은가 아주 작은 거부감이 들었지만 그래도 꼭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다. 더욱 더 현재의 미술관의 역할은 어떤 것이며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야 할지에 대해 논의해 보아야 한다.
– OㄷO
미술관과 베니스 비엔날레를 연결시키자면 네덜란드관에 미술관에 관한 영상이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모임에서 재용님과 함께 이야기하고 다음은 더치 파빌리온에 관힌 기사다.
신성모독과 성스러운 것에 대한 국제적인 축하 행사 , CATPC, Renzo Martens 및 Hicham Khalidi. 이 세상의 불의를 조명하기 위해 많은 예술 작품이 만들어지지만 실제로 변화를 가져오는 예술 작품은 얼마나 됩니까? (중략) 콩고에 기반을 둔 이 단체는 비엔날레의 힘을 빌려 예술가 렌조 마르텐스(Renzo Martens)와 큐레이터 히샴 칼리디(Hicham Khalidi)와 협력하여 버지니아 미술관을 설득하여 1930년대 벨기에 식민 장교의 목조 조각상을 보내도록 했습니다. (후략) https://www.theartnewspaper.com/2024/04/16/venice-biennale-2024-the-must-see-pavilions-in-the-giardini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미술의 진보나 발전은 끝났나? (미술을 아직 업으로 하지 않는 초보라) 추상으로 그리고 아이디어에 중심을 두면서 미술 자체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갈 무엇이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제작방식이나 기술발전에 따른 재료 따위의 활용을 지금보다 더 한다면 다를까?
– ㅈOO
이미 만들어진 미술관이 아닌 역사로 돌아가서 미술관을 만드는 시점으로 돌아간다면 과연 누가 무엇을 전시할 것인가는 결국 권력으로 밖에는 귀결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관심있는 심리학으로 접근해보았을 때, 결국 역사와 정치 속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욕망으로 결정된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OㅅO
루브르에 처음 들어간 날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전시장으로 향하는 입구 계단 위에 니케가 있고, 그 앞에 도열한 그리스 풍의 조각들. 멋진가? 전시해설사가 이 조각상의 멋짐에 대해 말하고, 나는 이미 대리석 귀족의 휘황찬란함에 굽신거리는 중세 농노가 된 기분으로 계단을 오른다. 난생 처음 유럽 궁전에 들어간 나는 그 화려함에 압도되었다 (물론 이후에는 끊임없이 계속되는 그림에 질려버렸지만.)
– ㄱOO
30년이 가까이 된 책이지만, 꽤 동시대성이 느껴질 정도라면 아직 한 세대가 흘렀으나 미진한 점이 많다는 것이 아닐까. … 비록 미술관이 환상을 품고, 권력의 침탈과 합리화 등으로 세워졌다고 하더라도, 단순히 패스트 패션처럼 ‘앞서 나가고 발전함(진보)’를 다루고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공공 미술관은 공적인 ‘관’의 성격을 띄지만, 더디게 세상을 담는 그릇으로 그 역할을 시민에게 부여 받고 있고, 기대한다.
– OO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