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아냥, [현대 미술의 이단자들]

현대 미술의 이단자들 (아트 부산 현장으로부터의 노트)
Timothy Behrens, Lucian Freud, Francis Bacon, Frank Auerbach and Michael Andrews in 1963 © The John Deakin Archive/Getty Images

“내가 존경할 수 있는 예술가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라고 저의 모더니스트(a.k.a. 꼰대) 친구가 말했습니다. 호크니를 제외하고 이 책에 언급된 많은 예술가들은 이미 이 세상에 없습니다. 루시안 프로이트, 프란시스 베이컨 그리고 데이비드 호크니 모두 이 시대를 대표하는 페인터들이라고 단언하기에는 여전히 현대를 살아온, 또 살아가고 있는 여성, 유색인종의 뛰어난 예술가들 너무 많습니다. (특히나 여기 아트페어의 한 복판에서 보면 더욱 그렇게 느껴지네요.)

Francis Bacon’s 1969 “Three Studies of Lucian Freud”
: 2013년 Christie’s에서 베이컨의 1969년작 “Three Studies of Lucian Freud”가 1억 4200만 달러에 판매되었다.

그럼에도 게이퍼드가 이들을 오늘날의 ‘대표적인’ 화가로 지칭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책의 도입부에 언급한 것 처럼 모두들 높은 옥션가를 기록한 작가들이라서 그럴까요?

저자는 책에서 일명 “London School”로 지칭하는 화가들이 인간적이고, 지저분하며, 예측할 수 없고 다분히 주관적인 문제로 ‘현대 미술’의 방향을 회귀시켰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 점이 바로 이들을 ‘이단자’라고 명명할 수 있게하는 주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들의 활동은 한동안 미술계에 불어닥친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의 건조하고 이성적인 성향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이들의 작품에 영감을 받은 수 많은 동시대 페인터들과 비평가들의 찬양, 컬렉터들의 갈채, 연이어 갱신되는 최고의 옥션가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합니다.

하지만 이 책이 이들을 어떤 위인으로 박제하고 있진 않습니다. 캔버스의 표면이나 그 주변부의 높은 명성에 대한 이야기 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소소한 삶이 어떻게 작품에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다루어 낸다는 점이 흥미롭게 읽혔습니다. 여기서 저자는 마치 소설가이자 가장 생생한 목격자로 출현해 작가들의 인생과 작업의 뒷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있습니다.

더불어 인상파에서 세잔, 마티스, 피카소에 이르기까지 미술세계를 이끌어 오던 파리의 몰락, 이후 새로운 물결로서의 1940년대 후반과 1950년대의 미국, 뉴욕 추상화에 대한 어떤 반격으로서의 “London School”을 미술사적으로 조명하려는 시도가 엿보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UH0L0KUGFo
:루시안 프로이트의 딸 벨라 프로이트가 보그 유투브에서 자신의 집을 소개하는 영상. 사진 속 어린 벨라 프로이트는 이제 유명 패션 디자이너가 됐다. 그녀가 추억하는 아버지와의 한 장면.

게이퍼드는 새롭게 출현할 그 어떤 천재적 미술가들을 못 본척하고서라도 자신의 시대와 그의 예술가 친구들을 우리 시대의 대표하는 예술가들로 주장할 것 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시대, 당신에서 가장 흥미로운 예술가는 누구인가요?

안산으로부터 서울로 향하며 써보는 노트

최근 약 1주일 사이 전주국제영화제, 안산 거리극 축제를 참관하고 (직업적으로) 통역도 하면서 통역 대상자들의 빌언을 통해 습득하고 스스로도 정리하게 된 생각이 있습니다.

무엇인고 하니, ‘이게 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겁니다. ‘하늘은 푸르다’같은 발언처럼 들릴 수 있지만, 창조적 활동에 있어 사람간의 교류가 (모든 게 원격 디지털 접속으로 보여질 수 있는 것만 같은 세상이 될 수록, 고로 유통되는 정보량이 많아질 수록)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게이퍼드의 책을 보면서, 책이 다루고 있는 시절 작가, 비평가들의 관계를 넘어 당시 사회문화적 현상과 창작자들이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더 유심히 살펴 보았습니다. 작가들 뿐 아니라 당시 사회의 여러 사건까지도 일종의 네트워크-행위자로 간주한 셈입니다.

더불어, 1950년대 말 (우리 머릿속 21세기 버전의 그것이 아닌) 테이트 미술관에서 열린 미국 미술 전시들의 영향에 대한 대목들에선 전시의 역사exhibition history라는 미술사의 한 분과적 관점에서 한국의 지금을 반추해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지금은 어떤 시선으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요.

책의 203페이지에 언급된 브리티시 파테British Pathe의 영상 “액션 페인팅” 영상을 잠시 보도록 하죠. 2분 길이의 짧은 영상입니다.

결국, 책이 말하는 ‘이단자들’은 자신이 가야할 길을 명확히 설정하거나 의식/무의식적으로 감지하고 결단과 꾸준한 실행에 이른 예술가들을 지칭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에게는 뒤늦은 것이었을지언정 인정과 영광이 찾아오기도 했고요. (이처럼 ‘재발견’되는 것에 대해서 좋다 나쁘다 판단을 내리지는 않는 게 좋겠습니다.)

질문 혹은 생각할 거리
  • 당신이 존경하는 예술가 중 살아 있는 사람이 많이 있나요?
  • ‘컨템포러리 미술’에 대한 모더니스트적 반감이 생긴다면, 왜 / 무엇때문일까요? (다시: ‘그림’이나 ‘조각’이 아닌 것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으로서의 미술”(책 335페이지) 혹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으로서의 예술이라는 관점 혹은 개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독서 노트 발췌

“그들은 현대 미술의 이단자들이 맞는가?”

입체주의는 2차원에 3차원화시키기 위해 폴리곤 느낌에 가깝고, 그 때문에 때때로 이 그림의 대상이 무엇이었는지 파악이 어려울 떄가 있습니다. 반면에 책에 나온 화가들은 정통 미술사 틀에 박히지 않은 본인만의 화풍을 추구했을 뿐 무엇을 보고 그렸는지, 그 대상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화가는 무슨 생각을 하며 이 그림을 그렸는지 상대적으로 쉽게 유추할 수도 있었습니다. 과연 시대별 다양한 미술계보에서도 이 시대의 런던의 미술계가 과연 이단자들이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현재 자신의 세계와 자신의 개성을 바탕으로 활동하는 수많은 화가들의 시발점이었다고 생각한다면 이 또한 하나의 미술사로 봐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ㅂOO

“인물중심적으로 써도 미술사의 한 단면이 보였던 흥미로운 책”

요즘 전시를 가면 도슨트를 듣기도 해봤고 그냥 혼자 보기도 해봤는데, 이 책에서 의도를 확실히 하고 그리는 작가와 의도 자체가 불분명한 무의식의 경계와도 가까운 지점에서 그리는 작가가 각각 있다는 점이 재밌었다. “꼭 알고 봐야할까?”라는 질문에 대해 “꼭 알고 그린건 아냐”라는 명백한 답변을 하나 들은 느낌이라 재밌었다. (중략) 금도 그렇긴 하겠다만 영국과 미국, 그리고 남성 및 백인이 주로 시장에서 활동했던 그 시기는 엄청나게 좁았구나 라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그러한 부분에서 인물 중심적인 서술은 매우 좋은 선택이었다고 보인다.

– ㅇOO

책을 다 읽고 나서 책 제목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현대 미술의 이단자들(Modernists & Mavericks). Maverick은 개성이 강한 사람이란 뜻인데 모더니즘, 추상 등 그 시대의 사조를 거스르는 자들이라는 의미일까 궁금했다. (사실 Maverick이란 단어를 보고 처음에 탑건에서 톰크루즈의 이름이 떠오르긴 했다.) 물감을 사용하며 자신의 생각, 신조를 드러낸 그 시대의 런던의 화가들의 위대함을 다시 생각하며 제일 인상 깊은 구절로 독후감을 마무리해 본다.

p. 419 “데니는 계속해서 ‘우리의 시대가 올 거야, 친구. 우리의 시대가 올거야.’ 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여러 해 동안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해를 넘기고 해를 넘겨도 계속해서 말이죠.” 그들 생애에 그런 시대가 다시 오지는 않았지만 이것이 그런 시대가 결코 다시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 시대는 여전히 가까이에 있다. 미술에서 평가와 명성은 언제나 잠정적이다. 프로이트가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사라졌다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처럼.

– ㅇOO

그럼 호크니나 베이컨, 프로이트가 한결같이 그려낸 회화작품들은 현대미술이 아닌가? 물론 회화도 현대미술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그림만큼 모든 사람에게 쉽고 직관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유서깊은 매체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요즘 나오는 기상천외한 작품들의 뽕에 취해서인지 회화라는 작품유형을 상대적으로 올드한 것으로 (내가) 느끼는 것 같다. 가장 기본적인 것을 가장 쉽게 지나치는 아이러니.

그렇다면 현 시대의 미술에서 회화는 대체 어떤 지위를 지니는걸까. 회화는 다른 설치미술과 다른 어떠한 강점이 있고 어떤 한계를 마주해야 하는걸까. 지금도 작품을 꾸준히 내고 있는 호크니 뿐만 아니라 회화로 지속적인 작품활동을 하는 현시대 작가들은 어떤 시각으로 작품을 그리는가. 책에서 다룬 시대의 작가들처럼 현시대의 회화 작가들도 유사한 방식으로 작품을 탐구하는가

– OOㅇ

이 책을 다 읽고나니 타임머신을 타고 1945년에서 1970년경의 런던과 뉴욕을 다녀온 기분이었다. (중략) 특히 “팝” 작가로 분류되는 것을 거부하는 작가들이 있었다는 것이 나에게 꽤나 신선했다.

그리고 영국이, 런던이 현대 미술의 중심지였다는 것도 그들에게 뉴욕이 또다른 파라다이스였다는 것도 나에겐 새로웠다. (중략) 나는 작품엔 의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의도가 있어도 보는 사람마다 해석이 달라지고 때로는 해석이 불가한 경우들이 있는데 도대체 작가 본인조차도 의도를 모르는 작품이 과연 어떠한 기준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것일까?

– ㄱOO

프랜시스 베이컨의 “루시안 프로이트에 관한 세 개의 습작”이라는 작품이 크리스티 경매에서 1700억 정도에 낙찰되었다는 이야기로 책은 시작한다. 저렇게 비싸게 팔린 그림을 나는 왜 한 번도 보지 못했고, 작가의 이름도 몰랐을까. (중략) 애초에 영국 예술에 대해서 잘 몰라서 그럴 수도 있고, 내 그림 취향과 맞지 않아서 일수도 있다. 도대체 어떤 지점에서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계속 들었다. 

– ㅇOO

이단자들, 정반합에서 반에 해당하는사람들. 걷다보니 자기도 모르게 범주에서 벗어나거나 범주를 만드는 사람들. 범주가 따라잡는 사람들, 혹은 세상에서 범주를 찾는 사람들. 양떼속의 염소 양보다 나은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양이 아니라는것을 알게된 사람들. 모든 사람이 양이 아니라는것. 다만 털들이 쌓여 모두 자신이 양이라고 생각하는 일. 사실 모두가 다른 이름을 가진 동물들. 이단자들은 털을 벗겨낸 사람들. 털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답답함을 느끼든 느끼지않든 그것은 0아니면 1의 문제 0인것과 1인것의 차이, 그것은 구심점을 파악하는가의 차이다.

– OㅈO

그동안 회화는 관심 밖의 영역이었다. 아무래도 1940년대 이후의 미술에서는 60년대의 포스트 식민주의나 장소특정적인 미술작업애 관심이 갔지 회화는 딱히 흥미가 없었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이시기의 회화의 이미지가 다소 단조롭다고 느꼈던 것도 있고 너무도 “옛스러운” 느낌이 강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중략) 책에서 등장한 작가들과 태도가 완전 유사 하다곤 할 순 없지만, 오히려 요즘의 회화가 얼마나 이와 다르고 독특한지 느낄 수있었다. 확실히 인터넷의 시대여서 그런지 다들 어떤 인터넷 속 이미지들을 공유하고 그곳에 떠도는 이미지들을 접해 그림으로 그린 느낌이랄까. 본래 그림 그리는 걸 정말 싫어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책을 계기로 언젠가 회화에 빠져 회화 작업만 하는 날도 오지 않을까 싶었다. 무튼 이 책을 읽게 되어 너무 좋다.

– OOㅇ

예전에 마틴 게이퍼드의 <예술과 풍경>, 그리고 데이비드 호크니와 함께 집필한 <봄은 언제나 찾아온다>를 재미있게 읽었기에 이번 책도 두께에서 오는 심리적 압박이 있긴 했지만 기대하며 읽기 시작했다. (중략)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작품 설명 위주로만 전개되는 것보다는 다른 곳에서 알기 어려운 흥미로운 뒷이야기들을 알 수 있어서 신선했지만 느껴졌지만, 솔직히 배경 지식이 부족한 탓인지 잘 모르는 화가들을 다루는 파트에서는 흥미가 조금 떨어지기도 했다.

– ㄴOO (놀러가기)

흥미롭게도, 연기를 보여주고 사람들에게 어떠냐고 물어보면 사람들은 전부 다른 아무런 이유를 붙여서 자신의 평가를 합리화하려 합니다.

더욱 흥미롭게도, 이유가 전부 다른데 좋았다는 부분과 나빴다는 부분이 거의 일치합니다.

(중략) 호사가들은 이런 현상을 보면서 예술은 완벽히 개인적인 것인가? 또는 모든 의미가 있어서 의미가 없는 존재인가? 하고 침소봉대하는 것을 좋아하겠지만. 좋았다는 부분과 나빴다는 부분이 대체로 일치하는 순간..그건 좋은 예술과 나쁜 예술이, 그러니까 예술이 존재하는 것을 드러내버리고 맙니다.

– OㅇO


Posted

in

,

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