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아냥, [현대미술이란 무엇인가] (두 번째)

  • 모임 날짜: 2023년 4월 2일(일)
  • 모임 장소: 트레바리 안국 아지트

“우리시대의 미술을 사람들이 즐기고, 이해하고, 사용하는 일을 도와주는 것”(156)이 MoMA의 초대 관장 알프레드 바가 말한 현대미술관의 목적이다. 한가로운 미술관을 찾아 전시를 보고, 1층 까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아트숍을 둘러보는 것 처럼 ‘문명인’으로 주말을 즐길기기에 더 적당한 일도 없을 것이다. 높은 층고와 건습이 조절된 공기, 적당한 웅성거림은 미술관이 세상에 그 어떤 곳 보다도 평화로운 곳이라 느끼게 한다. 하지만 저자는 실제 미술관의 더 깊숙한 곳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고 말한다. 그 내막을 들춰내며 인사이더로서의 허탈함, 고뇌를 언급하지만 솔직히, 주말에 미술관을 찾은 사람들에게는 그게 무슨 문제일까? 모두 각자의 문제가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미술에 대한 일반적인 기사보다  저자의 언급이 조금 더 흥미로울 수 있는 것은 미술 세계를 하나의 사건으로 축약하고 그 이면에 대해 거침없이 보여주려고 하기 때문일 것이다. 예술가, 큐레이터, 비평가, 컬렉터, 미술관의 board members, 미술관의 설립, 미술계의 파워, 미술품의 가격과 가치 그리고 이것이 총체적으로 만들어내는 현대미술의 모든 것이 우리가 미술관에서 바라보는 작품과 그 뒤 흰 벽 너머에 있는 것이다. 그것은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감동과는 또 다른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어떠한 것도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순수하게’ 존재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것을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진정한 아름다움과 가치를 쫒으려는 것이 현대미술의 아이러니이자, 우리가 미술관을 찾는 또 다른 이유가 아닐까? (여기까지 고은의 노트)

Olafur Eliasson – The Weather Project, 2003, monofrequency lights, projection foil, haze machines, mirror foil, aluminium, and scaffolding, 26.7 x 22.3 x 155.4m, Turbine Hall, Tate Modern, London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 개관을 맞아 잡지 “컨템포러리아트저널” 여러 사람의 기대와 우려, 바람을 모은 특집을 기획했고, 거기에 참여한 적이 있다. 당시 나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 직후 인산인해를 이룬 전시장에서 사람들이 작품을 감상하기보다 그저 거대한 대열을 이뤄 공간 속을 걸어가며 ‘경치를 보듯’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해 글을 썼다. 10년 전의 내가 쓴 글이고 교정 교열을 거쳐 개제된 최종본이 아니지만, 공유해 본다. (잡지는 2014년 1월에 발간되었다.)

풍경화하는 동시대미술

박재용(큐레이터)

서울관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등산로처럼 기능하고 있다는 생각을 굳히게 된 것은 어느 주말 오후 미술관을 방문하면서부터였다. 오프닝이 열리던 날부터 시작해 개관 후 약 한 달 동안 거의 매주 한 번씩 요일을 바꿔가며 전시장을 찾았는데, 주말의 전시장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룬 관람객들이 각 전시관마다 줄을 이뤘고, 짧지 않은 시간을 기다려서야 전시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관람객들은 전시된 작품 하나하나 무척 꼼꼼하게 감상했고, 전시장 내에서도 벽을 따라 질서정연하게 이동했다.
일견 무척 고무적인 관람 모습을 바라보며, 혼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제대로 된 설명도, 전시의 맥락에 관한 정보도, 심지어 어느 작품의 경우는 한글로 된 자막도 찾아보기 힘든 탓에 그 어떤 전시보다 어렵게 느껴지는 개관 특별전을 어떻게 그렇게나 집중하며 관람할 수 있을까? 내 집중력이 미술관 공간을 가득 메운 많은 사람들의 것에 비해 특별히 더 떨어지는 것일까? 혹은, 내가 개관 특별전에서 찾고자 했던 어떤 것이 결국 대부분의 관람객이 바라본 어떤 것, 새로운 전시공간에서 발견한 것과는 달랐기 때문일까? 요컨대, 개관 이후 하루 평균 4,000명에 달하는 수를 기록한 많은 사람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방문하고, 소비한 방식은 무엇인가?
여기서 잠시 도심 등산의 매력에 관해 잠시 이야기해보려 한다. 인왕산, 남산, 도봉산, 청계산 등 유달리 산이 많은 도시 서울에서는 도심 등산을 즐길 수 있다. 때로는 좀 가벼운 옷차림으로 산에 오르며 멋진 경치도 감상하고, 또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식사를 하거나 반주를 곁들일 수도 있는 것이다. 잠시 마음을 비우고 경치를 감상할뿐 아니라 때로 식사로까지 이어지는 도심에서의 등산은 짧게는 반나절, 길게는 온종일을 보내며 몸과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그렇다면, 전시가 이루어진 맥락을 살펴보고, 작품의 배치와 내용, 상징성과 의미 따위를 고민하며 결정적 부분들이 텅 비어있음에 난감해하기보다 전시장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풍경 혹은 병풍이라고, 그 안을 배회하는 관람객은 각각 얕은 산등성이에 오른 도심 등산객이라 생각해보자. 개념의 유희, 틀에 박힌 사고의 전복, 동시대성에 관한 성찰과 같은 골치 아픈 수식어는 사라지고, 눈앞에 놓인 기념비적 공간과 거기에 걸맞는 큰 작업들은 어느 순간 인왕산에서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는 것에 버금가는 멋진 풍경이 된다. ‘군도형 미술관’을 표방하며 퍼져 있는 공간을 돌아다니는 시간은 경치를 유람하는 순례이며, 순례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는 도심의 등산로 초입에 있는 식당과는 비교할 수 없는 현대적 먹거리와 마실거리가 기다린다. 자가용을 가지고 온 사람이라면 넉넉한 주차 공간을 만끽할 수 있으며, 장년의 운동이 되어버린 등산과는 달리 가족과 아이들을 데려오기도 안성맞춤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서울관을 ‘대중과 소통하는 열린 미술관’으로 운영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각기 다른 개념과 미학을 담은 동시대미술 작품들이 거대한 공간에 포섭되어 맥락을 잃고 표류하며 다만 아름답거나 눈길을 사로잡는 풍경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미술관 관계자와 미술인 누구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미술관의 전시가 하나의 풍경이 되어버리고 말 때, 작품과 전시는 감상과 고민, 대화의 대상이 아닌 시각적 소비의 대상이 되어버리고 만다. 작품에 노력을 쏟은 작가로서는 안타까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작가와 작품을 섭외하고 개념적 구성과 실제 공간에서의 구성을 고민했을 큐레이터라면 답답함을 감출 수 없는 일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동시대미술을 보다 넓은 관객에게 소개하고, 더 많은 이가 미술을 접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는데 필요한 것은 눈길을 사로잡는 작업과 전시가 아닐 것이다. 서울관에 정말 필요한 것은 팔아도 손해 볼 것 같은 책이 가득한 서점, 인력과 예산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지만 당장 눈에띄는 성과가 나지 않는 전시와 미술 관련 교육, 시간과 돈에 비해 결과는 쉽게 눈에 띄지 않는 도록, 누가 다 읽을지 모르지만 할 수만 있다면 좋을 것 같은 섬세한 월텍스트 쓰기, 배치와 같은 것들이다. 이 모두가 더 많은 시간, 더 많은 인력, 더 많은 고민을 요청하는 일이다.

2015년 2월, MoMA “Post at MoMA” 세미나
https://post.moma.org/

얼마 전, 2022년 전 세계 뮤지엄 관람객 순위가 발표되었다.

영국에 본사를 둔 The Art Newspaper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국립박물관이 연간 방문객 약 340만 명으로 세계 5위에, 국립현대미술관은 180만 명으로 세계 21위에 올랐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경우 분관 방문객을 모두 더하면 200만명을 훌쩍 뛰어 넘는 방문객 수로 세계 10위 권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놀라운 점은,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에 비해 관람객이 늘어난 뮤지엄은 전 세계에서 한국의 뮤지엄이 거의 유일하다는 사실. 한국을 찾은 국제적인 미술계 방문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모두 이구동성이다. 한국만큼 이렇게 뮤지엄이 붐비는 나라가 없고, 이렇게 젊은 사람으로 북적이는 곳이 없다고.

그런가 하면, 우리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영방송 KBS에서는 “예술이 돈이 되는 걸 보여주겠다”며 “노머니 노아트”라는 프로그램의 방영을 시작했다.

우리의 (현대) 미술은 무엇인가.

(위: 90년대 말 혹은 2000년대 초 홍대 인근으로 추정 / 아래: 2000년대 초반 석관동 한예종 앞으로 추정)
생각할 거리
  • 당신이 미술관에 가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당신이 미술관에서 보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 당신이 최근 미술관/전시에 가서 한 일은 무엇인가요? – 당신이 최근 미술관/전시에 대해 한 일은 무엇인가요?
  • 당신이 보는 미술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요? – 그것이 무엇이고, 어떤 방향으로 있다고 생각하는 바가 있나요?
독서노트
  • 독서노트를 올려주신 순서대로

화법이나 스킬로 미술을 가늠할 수 있는 시기는 지났고, 아티스트의 작품에서 무엇을 담아내려 하는가?의 답을 찾아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친절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것이 불쾌하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찾아가는 재미가 있기 때문 이고 ‘아, 그렇게 볼 수도 있구나.’라는 다양한 의견, 견해를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품에서의 ‘의미’가 있다면, 모든 것이 미술이 될 수 있는 세상이 된 것 이 아닐까?

– ㅂOO

가장 기억에 남는 저자의 말이 예술 표현의 절대적인 평가는 원리적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현대미술 작품엔 ‘오독의 자유’가 있다 라는 말인데 현대미술은 메세지를 전달하지만 감상자로 하여금 여러 해석이 가능하게 한 경우가 많이 때문에 그것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 아닐까?

– ㄱOO

저번에는 그래 이거야~ 하면서 자상한 예시에 눈물이 흘렀다고 한다면, 지금 읽은 소감은 그 눈물 취소해야겠다! 뮤지엄을 다룬 2장과 미술 작 품의 창작동기를 다룬 7장 말고는 다소 산만한 느낌이 들어 이전보다는 감동이 덜했다. 특히 큐레이터를 다룬 4장은 최악이다!

– ㅇOO

질문. 소위 걸작이라고 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작품을 발견하는 좋은 눈은 어떤 걸까? 개인적 취향일까 아니면 보편적으로 인기가 있는 작품을 발 견하는 센스일까. 아니면 아트월드의 VIP만 결정할 수 있는 구조일까.

– ㅇOO

현대미술의 일곱가지 창작 동기에서는 개인사를 담은 부분이 가장 인상 깊었다. 야요이 쿠사마, 루이스 브루주아, 그리고 책의 예시에는 없었지만 프리다 칼로, 키키스미스등 자신의 상처들을 미술로 승화시킨 점이 순수예술이지만 또한 행위예술 같다고 느껴졌다. 샤머니즘적인 이야기지만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한, 영적인 부분을 예술을 함으로써 의식을 치룬다고 한다. 이렇게 맘속 깊은 곳의 한, 의식들이 예술로 표현된다는 것이 “순수” 미술이지 않을까 싶다.

– ㅈOO

04화 묘하군요, 데시마 미술관

데시마 미술관은 납작한 비행접시 같은 하얀 구조물로 천장이 뚫려있고 그 구조물 안에 들어가면 날씨에 따라 하늘과 햇살과 비를 마주할 수 있다. 더 특이한 것은 구조물의 바닥이다. 하얀 시멘트 바닥같은데 바닥의 미세한 구멍에서 물이 올라와 맺히는데 마치 이슬처럼 영롱하다. 물방울이 맺히기도 하고 그것들이 흘러 한데 뭉치기도 하고 마치 김창열 화백의 물방울의 실사판이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연과 어우러지는 이 미술관에 올 때마다 운다고 했다. ‘세상은 자연과 같고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걸 담고 있다. 태어났다가 사라지고 또 태어난다.’ 라고 표현한 저자의 감상을 보면서 데시마 미술관을 좋아했지만 더 좋아하게 됐다.

– ㅂOO

그동안 미술에대해서 공부한다고 해도 스스로 요즘(2000-2020)전체적인 미술흐름이 도대체 어떤건지 전체적으로 엮이지 않았었다. 그동안 전시를 다니며 많은 작가들의 작업을 보았지만, 미술가들만으론 미술계가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그 흐름이 이해되었는데, 미술가, 이론가,비평가, 컬렉터, 큐레이터 간의 관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중략) 이 책을 읽으며 상상한 미술계는 미술(예술과 미술 두 개를 어떻게 구분해서 써야할지 모르겠지만)의 본질과 가치를 더 탐구하고 발견해 드러내기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미술계가 있다는 점과 아쉽게도 베니스에서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고 전쟁은 다른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가치가 현실에 반영되기까지는 거리가 멀어 보이긴한다. 저자도 말했듯 그건 좀 더 확산될 수 없고 미술 안에서만 이야기가 머무는 문제이며이는 곳 미술계밖 관객들에게 전해지는 현대미술교육의 문제인가 싶다.

– ㅊ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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