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아냥, [스스로 조직하기]

저자: 찰스 에셔, 줄리 아울트, 셀린 콘도렐리 등
편집: 스티네 헤베르트, 안느 제페르 칼센
번역: 조은비, 박가희, 전효경
출판사: 미디어버스
발행일: 2016년 1월 28일


송고은의 노트

이번 책은 지난 시간 앤디 워홀의 성공스토리와 대척점에 있을 수 있는 함께 나눠볼 수 있을 것 같아 지난 시간의 책과 함께 나란히 선정되었다. 물론 워홀의 ‘팩토리’는 경제적인 관점에서 봤을때 지극히 18세기 가내수공업적인 면모가 없지 않아있지만, 흔히 예술(가 혹은 그룹)의 성공과 그 혁신적인 변화를 조명할때 접근할 수 있는 서로 다른 논점을 끌어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자기조직화’라는 다소 철지난 화두를 2010년대 한국 미술계에 다시 새롭게 불러일으켰다. 첫 출간 이후 10여 년 후에야 한국어로 번역되었지만, 미술계에 많은 번역서 프로젝트가 중도에 사라지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 당시 한국 미술계에 분명히 이 ‘스스로 조직하기’라는 아젠다는 꽤 큰 동력을 가졌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예술가들은 언제나 스스로 조직해왔고 그것을 꽤 잘 수행해 왔다. 우리가 미술 시간에 배운 수많은 사조들은 모두 그런 활동을 가리키고 있다. 물론, 어떤 조직화도 영원히 지속되진 못했지만, 그 운동성만큼은 언제나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2010년대 다시 ‘스스로 조직하기’가 불러일으켜졌을까? 이 책에 실린 사례들은 유럽, 러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아메리카 등 전지구적으로 일어난 예술적 자기조직화와 이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들이 담겨있다. 이 사례의 서술이 흥미로운 지점은 각각의 시도가 순진한 희망과 긍정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의혹과 비관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흐가 고갱에 보낸 편지 속 아를의 예술가 공동체에 대한 계획과 흥분, 요셉 보이스와 친구들이 예술가 노동조합의 조직과 파업을 주장했던 혁명의 시간은 이미 지났고 이제 우리는 더 이상 행복하고 순진하게 ‘스스로 조직하기’의 아름다운 비전을 곧이 받아들일 수 없다. 이건 비단 예술계 뿐만 아닐 것이다. 지나온 시대의 거대한 시류가 예술계에 그대로 반영된 것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저자는 이런 실패 속에서야말로 예술의 사회적 목적과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기꺼이 그 실패를 지속해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쯤에서 책의 목차에 「자유보다 무엇을 더 원하는가?」 / 「조직을 벗어나는 것에 관하여」라는 제목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책에는 꽤 의미 심장한 주장이 담겨 있음이 느껴진다.

책에 나열된 먼 나라의 미술계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애쓰기보다는 예술이 태생적으로 품고 있는 의의 물음들을 우리의 시간과 생활 속에서 한번쯤 다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물론, 나는 ‘팩토리’의 일원으로 작은 톱니바퀴가 되는 삶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생각한다.ㅎㅎㅎ)


박재용의 노트

2012년 광주비엔날레는 “라운드테이블”을 주제로 여섯 명의 예술감독이 ‘함께’ 기획을 맡았다. 전시와 함께 치러진 주요 프로그램 가운데, “워크스테이션”은 세계 다양한 지역에서 일어났던 스스로 조직하기 사례들과 성과, 통찰을 공유하는 자리로 만들어졌다.

  • 2012 광주 비엔날레 워크스테이션: 자기조직화에 대한 검증 (링크)

책의 서문에서 언급되듯, 자기조직화 혹은 스스로 조직하기는 딱 잘라 정의내리기 어려운 무엇이다. 바꿔 말하면, 어느 정도의 합의 하에 각자 편한대로 해석해도 무방하리라는 이야기다. 2013년에 영문판이 발간되고 2016년에 한국어판이 발간된 이 책을 읽으며 나의 뇌리를 스치는 건 2010년대 중반 서울/한국의 미술계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른바 ‘신생공간’이라는 현상이다. (좀 더 해상도 높은 설명 대신 매우 거칠게 설명하면) ‘폐허’에서 일어난 이 ‘운동’은 놀랍게도 ‘예술경영센터’가 적극 추진하는 ‘미술품 장터’ 사업와 동기화된 ‘장터’ 행사들과 함께 클라이막스에 이르렀고, 운동이 무르익기도 전인 2016년 초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이들을 집대성하려는 전시가 열리며 김이 새더니, 같은 해 말에는 신생공간의 기수처럼 여겨지던 남성 큐레이터가 미술관의 선임 큐레이터로 임명된 직후 #미술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의 첫 번째 주인공이 되어 황급히 잠적하면서 흐지부지 사라졌다. (문장들 사이의 디테일은 오프라인 모임에서 설명 예정.)

  • “폐허에서 다시, 큐레이터의 도전: ‘묻지마 투자’ 뒤 세계 금융위기와 함께 사라진 미술계의 황금기, 스스로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겠노라 작심한 함영준·현시원·안인용” 2013년 말 한겨레 기사 (링크)
  • “갤러리 아니면 어때 장터서 미술의 ‘난장’: 화랑·미술관 문턱 넘기 힘든 젊은 작가들의 실험…관객과 적극 소통하며 기존 미술판에 신선한 충격” (링크)
  • “신생공간: 문제될 것이 없는 미술” (링크)
  • ‘신생(미술)공간’이라는 신기루, 서울시립미술관 <서울바벨> 展 (링크)

나는 한국/서울의 미술계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스스로 조직하기와 거리가 먼 문화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대체로 스스로 무언가를 꾸리는 경험을 쌓기보다 이미 만들어진 체제나 제도 안에서 높은 점수를 획득하거나 제도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무언가를 획득하는데 열을 올리는 삶을 살고 있다. 스스로 무엇을 조직할 것인가?

아마도 송고은이 만든 WESS나 박재용이 꾸리고 있는 NHRB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는 게 이번 모임을 더 풍성하게 만드는 한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생각할 거리
  • 스스로 조직하기의 경험이 있나요?
  • 혹시… 개인의 무한 경쟁, 책임, 자기계발을 요하는 신자유주의 체제가 ‘스스로 조직하기’라는 멋진 이름으로 제도가 할 일을 슬쩍 개인에게 떠넘기는 건 아닐까요? (미술 포함 사회 전반에 대한 질문)
  • (미술의 맥락에선) 누가 스스로 조직하는 걸까요?

모든 것이 작용과 반작용의 힘으로 균형을 찾게되는 과정 안에 놓여 있다. 오랜 기간 동안 점유되어왔던 권력을 개개인의 몫으로 가지고 오고자 하는 노력을 응원하게 된다.

– 김OO

미술관, 신자유주의, 기업, 럭셔리 마케팅은 스스로 조직하기의 대척점에 있는 단어들로 해석되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대척점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기업이 많은 걸 해결할 수 있다고도 믿는다.
다만 뭐든 하거나 볼 때 ‘이게 돈이 되나’ 위주로 먼저 생각하는 입장에서, 자본을 벗어나 전달하고자 하는 아젠다가 있다는 건 참 존경스럽게느껴졌다. 표현의 자유가 자본과 성공욕을 넘어서는 걸까.

– O지O

번역가 조은비가 말했듯이 자기조직화란 자기스스로가 무언가를 결정할 수 있다는 의지적 행위면서 사실 결코 혼자서 만은 할 수 행위라는 역설이 있다. 이에 동시대 미술에서도 독립적인 활동을 하면서 동시에 상호 협력적 구조를 만들어가는 새로운 스스로 조직’하기(doing)’가 요구되는 시점이지 않을까. 대안공간의 운영 경험, 대기업이 지원하는 예술기관의 문제, 각자도생하는 예술가들의 불안한 삶 등등에 대응하여 한국 미술계에서의 자기조직화의 의미를 돌아보는 것을 통해 현재 마주해야 하는 환경과 예술 활동을 이어가는 데 필요한 태도가 무엇인가를 생각함으로써 예술가로서 앞으로의 방향성을 모색 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 이OO

원본은 아니고 서문에 나온 책을 찾아봤어요. 자기조직화가 뭘까하고. 앞에 보가 중간보다 뒤에보다 왔다갔다. 고은님이 하신다는 wess 나 재용님이 진행중인 베니스 카셀이 이런건가 싶기도. 아티스트런이 뭔가 했는데 서문을 다시 보다보니 달리기 말고 운영인가보다.

– OㅅO

“스스로 조직하기는 왜 필요한 걸까”

…근본적으로 여러 사례를 보면서 생각했던 점은 ‘도대체 왜 이 사람들은 스스로 조직하기에 열심일까’라는 것이다. …왜 자기 조직화 외에는 ‘대안이 없는’지 크게 공감가지 않았다.

– 이OO

(재용: 참고자료 https://www.contemporaryartstavanger.no/notes-self-organization/)

“책 내용을 다시 조직하고 싶다…”

…정작 동시대의 예술가들이 어떤 형태로 활동을 조직화하여 운영하는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 OOㅇ

“초개인와의 사회에서 자신을 외치다”

[스스로 조직하기]는 미술의 탈중앙화에 대해 말한다. 스스로 자기만의 길을 걷는 게 대세인 세상. 미술에서도 이 흐름이 통하고 있는 것 같다.

– OOㄱ

그렇다면 조직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뭘까? 책에서는 창발성도 언급하는데, 조직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조직에 있을 때보다 더 적게 말하고, 행동하고, 만들고, 생각하지만 중심 권력의 영향 없이(조직이 있다면 중심 권력은 조직과 유사하지 않을까)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더 복잡한 형태를 취하면서 발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 같다.

– ㅂ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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