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아냥, [앤디 워홀 이야기]

“청소년 롤모델 시리즈”로 ‘편집’ 출간되었지만, 사실은 아서 단토가 쓰고 예일 대학교 출판부에서 나온 꽤나 심각한 책이라는 사실.
  1. 본윗 백화점 창가에서
  2. 팝, 정치, 그리고 예술과 삶의 간극
  3. 브릴로 박스
  4. 무빙 이미지
  5. 첫 번째 죽음
  6. 앤디 워홀 엔터프라이즈
  7. 종교와 공통의 경험

‘청소년 롤모델 시리즈’의 한 권으로 각색 출간된 한국어판과 조금 다른 영어 원판의 목차입니다. 책은 예일 대학교 출판부가 발간하는 “Icons of America” 시리즈로 출간되었죠. 이 시리즈는 미국의 문화적, 역사적 아이콘들을 기리는 일종의 총서로, ‘헐리우드 간판’에서부터 ‘밥 딜런’, ‘월스트리트’, ‘햄버거’ 등 사물, 장소, 인물을 가리지 않고 미국을 대표하는 대상을 소개합니다. 책의 저자는 주로 저명한 연구자들이 맡고 있지요. 앤디 워홀 편 역시 이러한 구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데요. 책을 쓴 아서 단토는 우리에게 [예술의 종말] 등으로 널리 알려진 꽤나 심각하고 진지한 저자이죠. 하지만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편집된 한국어 번역본은 편집자주(13)에 나와 있듯 “원저작물에 어려운 부분이 많아 엮은이를 따로 두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철학적인 부분과 청소년에게 ‘부적절’한 부분을 다 뺀 것이겠지요.

저자인 아서 단토는 워홀의 [브릴로 박스]를 여러모로 좋아한 것 같습니다. 단토에게 있어 워홀은 뒤샹보다 더 중요한 존재였던 것 같기도 하고요. 단토가 쓴 여러 책의 표지에 브릴로 상자가 등장하는 것만 보아도 이런 마음이 느껴집니다.

1993년에 발간한 [Beyond the Brillo Box]
그리고 2014년에 발간한 [What Art Is]

그렇다면 대체 [브릴로 박스](1964)의 어떤 점이 그렇게나 중요하게 여겨진 걸까요?

  • [브릴로 박스]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다.
  • [브릴로 박스]는 반복된다.
  • [브릴로 박스]는 망막을 통한(retinal) 시각적 자극 너머의 개념을 통해 감상된다.
  • [브릴로 박스]는 보통 사람과 사회 일반이 좋아하는 것과 그 가치에 의미를 부여한다.

[브릴로 박스]가 등장한 시기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팝아트’가 ‘추상표현주의’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창조의 원천이 예술가의 신비한 내면이 아니라 표면에 널려 있는 다양한 것으로 부터 올 수 있다는 생각을 던졌던 것이죠. 그런가 하면 유럽에서는 롤랑 바르트의 [저자의 죽음](1967)과 같은 담론이 떠올랐습니다. (이걸 ‘구조주의’라고 했던가요?)
실제로 집에 [브릴로 박스]를 두고 지냈다는 (1964년에 전시된 것과 같은 배치로 놓아 두었다고 함) 아서 단토는 마치 ‘성배’와 같은 이 작품이 ‘반복’을 통해서도 그 가치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에 무척이나 고무된 것 같습니다. 혹은, 좀 더 철학적으로 질문을 던지자면: 똑같은 사물이 왜 어느 곳에서는 상품으로, 어디에서는 예술 작품으로 인식되는 걸까요?

Mike Bidlo, Not Warhol (Brillo Boxes, 1964), 2005, dimensions vary.

앤디 워홀에 관한 TMI

  • 앤디 워홀은 의학적 소견상 죽었다 살아난 적이 있다. (하지만 자신을 되살린 의사에게 3,000달러를 지불하지 않았다는 게 워홀 사후 ‘타임 캡슐’에 담겨 있던 문서를 통해 밝혀졌다.
  • 사후 자택에서 610개의 ‘타임 캡슐’이 발견되었고, 현재 워홀 뮤지엄에서 보관 중이다.
  • 약 10만 개 가량의 상품을 구매한 뒤 포장을 뜯지 않고 집에 보관했다.
  • 1968년 6월 3일 피격당한 뒤, 1969년 3월에서야 몸 안에 있던 총알 파편을 완전히 제거했다.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
  • 워홀은 정신의학적으로 다음 세 가지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 자기애성 인격장애 (2) 강박장애(호더) (3) 신체이형장애
  • 담낭질환으로 인해 20대에 탈모 증세가 시작되어 가발을 착용하였다.
  • 삶의 목표는 두 가지로, 유명해지는 것 & 부자가 되는 것
  • ‘팩토리’의 직원들은 악덕 고용주였던 그를 ‘스크루지’라고 불렀다.
  • 코카인을 복용했고, 다이어트 처방제로 암페타민과 메스암페타민을 지속적으로 먹었다 (현재는 마약으로 분류된 약물임).
  • 어린 시절 앓은 병의 후유증으로 나빠진 피부를 가리기 위해 지속적으로 피부과에 들렀다.
  • 간헐적으로 (어머니와 함께) 성당에 미사를 드리러 간 카톨릭 신자였으며, 피격 이후 신앙심이 깊어졌다.


(이어지는 송고은의 노트)

“일단 유명해져라, 똥을 싸도 박수를 쳐줄 것이다”

앤디 워홀이 했다고 퍼진 이 국내산 가짜 명언은 어쩌면 ‘예술은 사기다’라고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일부의 믿음이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특정 계층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예술에 대한 고정적 이미지는 귀족적이란 비판을 받으면서도 거꾸로 대중문화적 코드로 대표되는 팝아트는 깊이감이 없어 보인다는 이유로 또 다른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실크스크린으로 찍어낸 워홀의 작품이 현대미술의 패러다임을 바꿨다고 주장하고 있는 아서 단토는 이런 팝아트, 앤디워홀의 작업이 진정한 의미에서 예술철학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더 나아가 미술사의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워홀의 차용 이미지가 등장함으로써 지각적 특징을 통해서는 미술을정의할 수 없다는 것을 의식하게 된다. 워홀의 <브릴로 상자>와 슈퍼마켓에 있는 브릴로 상자 사이에 지각적으로는 어떠한 차이도 없게 되면서 이제는 더 이상 미술작품이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에 대한 어떠한 선천적인 구속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어떤 것도 미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분명해지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미술에 관해 철학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Andy Warhol, Brillo Box·1964년

“사실상 이 두 가지가똑같아 보일 경우, 미술작품과 미술작품이 아닌 것 사이의 차이를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단토는 이에 대해 ‘⑴ 무엇에 관한 것이며’ ‘⑵ 그것의 의미를 구현하는가’라는 두 조건을 제시한다. 그는 이 두 조건으로 미술 정의의 과업이 충분히 수행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런 사건의 등장으로 예술철학이 가능해졌다고 본 것이다. 팝 아트의 주요한 개념인 차용(appropriation)이라는 말은 독창성을 중시하는 미술에서는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서구의 르네상스 이후 미술(fine art)은 독자적인 체계를 갖추면서 일반 기술(craft)과는 다른 고유한 성질을 지니고 있다고 여겨졌다.


1980년, 교황을 영접한 앤디 워홀
생각할 거리
  • ‘진짜 예술(미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어떤 작가나 작품의 ‘진정성’을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요? (미술을 둘러싼 관념, 철학, 제도에 대한 질문)
  • 앤디 워홀이라는 ‘인간’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미술가, 예술가의 전형/스테레오타입에 대한 질문)
  • 워홀이 ‘청소년 롤모델 시리즈’로 K-소환된 것에 대한 의견은? 다수의 예술가, 혁신가, 혹은 이른바 ‘위인’들의 삶이 ‘롤모델’로 권유할 만한 종류의 것일까요?

어느 누구와도 비교되지 않는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갖고 싶었다는 그의 솔직함이 (어쩌면 당연할 수 있지만) 매력적이었다. 인간미가 느껴졌달까. 새로움에 대한 집착, 차별화를 위해서 캠벨 수프를 소재로 택했다는 것과, 상업 미술과 순수 미술의 경계를 허물고자 한 그의 의도까지도.

– ㅇOO

“Self-motivation” 개인적으로 요즘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화두인데, 뭐의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앤디 워홀의 motivation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진다.책에서는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튀고 싶은(?) 욕망으로 표현이 된 듯 한데, 그 이면의 열정이 있었을까 궁금하다.

– ㄱOO

팝아트는 순수예술과 상업예술을 ‘좋은’ 취향과 ‘나쁜’ 취향이라고 구분짓던 경계선을 허물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팝아트에 대한 설명이자 누구보다 앤디 워홀을 잘 나타내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순수예술은 고상한 것, 상업예술은 그렇지 않던 것이라고 나누지 않고 상업적인 것을 예술의 소재로 활용한 앤디 워홀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 OO

앤디 워홀이 그린 그림이나 찍은 영화 등에 대해서 관심이 갔지만, 그것보다는 앤디 워홀이라는 사람 자체에 대해서 흥미가 더 생겼다. 워홀은 지금 시대로 말한다면, 아마도 관종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 ㅇOO

사건사고와 죽음만을 다룬 워홀의 ‘재난 시리즈’를 보면, 잔인하고 섬뜩한 것 조차도 대조적인 색채를 써서 몽환적이거나 환상적인 것으로 탈바꿈 시킨다. 워홀은 재난과 사고, 죽음마저도 일상처럼 개방적으로 수용하고, 그것을 정반대 이미지로 시각화 시킴으로써 끔찍한 것 조차도 예술이 될 수 있다 걸 보여줬다.

– ㅂOO

“앤디 워홀은 야망인이었군”

기존에 내가 갖고 있던 앤디 워홀에 대한 “괴짜 천재”같은 이미지의 환상은 완전히 깨져버렸다. 오히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캐릭터… 승진을 위해 앞만 보고 달리는 직장인과 같은 애환이 느껴진달까…

…새삼 생각하게 된 것도 있었다. 예술이라는 것이 그 자체만으로는 예술이 될 수 없는 것 같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워홀이 이야기한 ‘비즈니스 예술’은 이러한 부분의 연장선 아닌가 싶다.

– ㅎOO

궁금한 점: 위키백과의 팝 아트 발생 배경.

– ㅇOO
“Andy Warhol Eating a Hamburger”

앤디 워홀. 독특하고 유연한. 미국 문화의 아이콘. 공장장. 게이.

– ㅈOO

앤디 워홀에 대한 평가에서 예술성과 유명세의 지분은 얼마나 될까? 시대와 운을 잘 타고나 유명세로 먹고 산 아티스트는 아니었을까? 라는 물음은 있지만…앤디 워홀을 움직이게 한 원동력이 궁금해짐과 동시에 내가 살아가는 원동력은 과연 무엇인가를 되짚어보는 밤이다.

– ㄱ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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