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의 취향! [리추얼의 종말]

아주 솔직히 고백하면, 이번 책. 제목에 끌려서 선정한 게 맞습니다. ‘리추얼의 종말’이라니. 모두가 리추얼에 미쳐있는 지금 말입니다. 물론, 제목만 보고 정한 건 아니지만요.

여기서 잠깐, 이 책의 독일어 제목을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Vom Verschwinden der Rituale Eine Topologie der Gegenwart]이고, 영어로 직역하면 [On the Disappearance of Rituals: A Topology of the Present] 쯤 되겠습니다. 다시 한국어로 직역하면, [리추얼의 소멸에 관하여: 현재의 위상학] 정도?

독일에서의 출간 연도는 2018년. 한국에 번역 출간된 시기는 2021년. 심지어 부제도 다릅니다. [리추얼의 종말: 삶의 정처 없음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여러 멤버들의 독서 노트를 보면, 한병철 님이 리추얼의 시대를 그리워하는 ‘꼰대’가 아닌가 잠시 헷갈리게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 한병철의 태도는 좀 다양합니다. 그는 신자유주의화된 이 세계에 불만이 아주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례가 사고를 지배하는 시대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건 아니거든요.

얇고도 복잡한 이 책은 ‘그래서 어쩌라고’를 유발하는 ‘골치아픈’ 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이 책의 미덕인지도 모릅니다. 마치 방향을 알려주되, 목적지를 짚어주지는 않는 나침반처럼요.

심지어, ‘리추얼의 종말’이라는 제목마저 어쩌면 일종의 맥거핀인지 모릅니다. (* 참고: “맥거핀은 작품 안에서 별 의미를 갖지 않지만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풀어가게 만드는 장치를 뜻합니다.

중요하지도 않은데 뭔가 있는 척하면서 관객을 자꾸 유혹하는 미끼인 셈이죠.”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611151679914832)

책을 통해 함께 함께 생각해보고자 하는 건 이런 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궁극의 취향!]에서 해보려는 겁니다. 우리의 위치. 우리의 좌표. 그리고 그 위치와 좌표를 둘러싸고 있는 (우리를 현혹시키는) 것들. ‘이게 다 신자유주의 때문이야’라고 말하는 건 쉽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봐야 할 삶속의 디테일들 말입니다.

아마 매우 추상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가?

하지만 아주 가볍고 사소한 질문부터 시작해보죠.

  • 내가 매일 반복하는 ‘리추얼’은?

모임의 흐름은 이렇게 하고자 합니다.

  • 자기소개
    • 이번 시즌에서 바라는 점을 꼭 이야기하기!
  • 책의 전체적인 인상에 대한 이야기
  • 생각할 거리들에 대한 논의
    •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독서노트 발췌도 함께 읽기!
참고자료: 유튜브에 [리추얼의 종말] 관련해 올라온 유일한 영상
독서노트 발췌

그러하면 리추얼의 시대에 새로운 삶의 꼴은 무엇인가?

공동체적 의식에서 기원하여… 개인의 일상, 습관으로 변화된 리추얼을 어찌 해석해야 하나. 정말 리추얼은 종말이 되어버린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리추얼의 탄생 아니면 리추얼의 진화로 보아야하는 것인가. …이 기이한 시대에 질식하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ㄱOO

‘리추얼의 종말’에서 리추얼은 우리가 흔히 쓰는 리추얼의 의미가 아닙니다.
요즘 자주 사용하는 리추얼은 이른바 소확행의 리추얼인데요.
책에서 언급하는 리추얼은 의례, 의식, 잔치 등의 의미입니다.
(중략)…소통 없는 공동체이면서, 예법과 예절이 존재하며, 서로 직접 대면하는 공동체 활동을 모두 포함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략)…현대 사회는 리추얼이 부재…새로운 생활양식의 정체는 바로 신자유주의라고 합니다.

– ㄱOO

“리추얼적 전환은 내면과 외면의 관계, 정신과 몸의 관계를 뒤집는다. [중략] 외적 형식이 내적 변화를 가져온다.”고 하는데

솔직히 외관은 어떨지 몰라도
형식을 그다지 중요시하지 않은 나에게
이 부분 내용을 읽었을 때 한 방 맞은 느낌이었다.

– OOo

– 우선, 리추얼이 시간에 질서를 부여해서 삶을 안정화시킨다는 개념이 인상적이었다.
– 책에서 “건강과 최적화와 성과의 독재에 굴종하는 삶은 한낱 생존과 다를 바 없다”라는 문장을 발견하고 한참 멈춰섰다.
– 평소에 내가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며 사는 것이 에너지를 헛되이 쓰지 않고 내 에고를 먹여 키운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해석해왔는데, 다음 문장을 읽고 왠지 섬뜩해졌다.
“나르시시즘적 호모 프시콜로기쿠스는 자기 안에, 자신의 뒤틀린 내면성 안에 갇혀 있다. 그의 세계 결핍은 그를 고작 자기 주위만 맴돌게 한다.”
…나는 오만한 생각으로 종종 내가 탈현대인이라고 생각했었는데(근거 없음),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완벽한 현대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근데 꼭 리추얼의 시대로 돌아가야만 하는 걸까요?
지금의 개인주의와 리추얼이 어떻게 적절히 양립될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 OㅇO

‘미사 덕분에 성직자는 사물과 아름답게 교류하는 법을 배운다.~’ 삶 자체가 과정이고, 과정 과정이 완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OㅇO

유튜브를 검색해도 관련된 동영상은 하나뿐이었다.
그만큼 이해하기 어렵고, 쉽게 선택하기 힘든 책임을 반등하는 듯했다.

…공동체적인 의미인 리추얼의 종말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말한다. 나도 작가의 의견에 대부분 동의하고, 리추얼의 종말을 극복하기 위해 트레바리 같은 대면 독서 클럽을 하지 않나 생각해본다.

– ㄱOO

…과연 현재사회가 리추얼이 종말되어가는 중일까? 하는 것이었다. 자연스러운 방향으로의 변화는 아닐까? 과연 결핍의 시대일까? 새롭게 변해가는 사회가 ‘리추얼의 종말’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부정적이고 조심해야하는 미래일까?

책의 첫부분을 읽다보면 저자가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꼰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중략) 세상이 변화하듯 공동체적인 면모도 새롭게 생성되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공동체 종말로 보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본인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시대일지도 모른다.

– OOOO

클럽장님은 첫번째 책으로 왜 [리추얼의 종말]을 선택했을까.
…모두 환영한다고 하기엔 요즘 유행처럼 번지는 ‘리추얼’이라는 말이 괜히 얄미운 나같은 사람에게 그러한 ‘리추얼’의 종말을 고하고 본격적으로 취향을 말하는 책인줄 알았건만.

– ㅇOO

책이 얇을 때는 항상 의심해봐야 한다.

(중략) 공동체적 문화가 이어지려면, 결국은 지속성이 있어야한다고 책에서는 이야기한다. 하지만 현실 사회는 점점 지속성이 있는 것을 거부하고 있는 것 같다. (중략) 공동체가 사라지고 커뮤니티가 생성된 그런 (공동체 없는 소통의) 모습 아닌가.

책에서는 신자유주의가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경제 위기 속에서 지금까지의 세계화 분위기와 신자유주의 분위기가 변화할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 사회는 어떤 식으로 변할지 궁금해진다.

– OㅅO

현재를 병적인 상태로 치부해버린 역자 후기가 인상깊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공감되긴 했다. 그러나 ‘현재의 상태를 꼭 치유해야 하는 상태로 봐야 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제곱의 결과를 낼 수 있는 솔루션이 필요하다. 노동하고 생산하고 빠르게 성과를 내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삶이 가산적인 것이 되는 게 아쉬운 것인가? 끝맺음이 꼭 필요한가? 미완성인 것은 안 좋은 것인가? 최적화하는 것이 나쁜 것인가? 평생학습은 졸업을 허용하지 않는낟고 한다. 그럼 오히려 좋은 거 아닌가? 평생 생산하고 바꿔나가고 싶은 나와 같은 사람들은 현재가 아주 매력적으로 느껴질거라 생각하진 않는 건가?
…시니컬하게 써내려 갔지만 사실은 괴로웠던 것 같다.

– OOO

나에게도 몇가지 어설픈 리추얼이 있었다. …눈에 불을 켜고 인생의 재미만을 찾아다녔다.
…이러한 놀이들이 현대판 노예들에게 “행복을 흉내낼 기회를 제공”하여 “우리를 비극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삶을 축제와 마법처럼 보이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 시대에 실현 가능한 일종의 리추얼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 OㅅO

가끔 아주 가끔 농경사회의 삶을 상상해본다. …그런 식으로 순환적인 생활은 어떤 삶일까? 한껏 상상새보지만 막연하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연례 행사를 치르며 살아가지만, 그것이 삶의 강력한 추동이 되지는 않는 것 같다(물론 나에게 한정된 이야기일 수 있다).

…맺음이 없이 가산된다는 부분이 와닿았다. “성과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삶은 한없이 쌓고 쌓으며, 끝이 보이지 않는 산등성이를 계쏙 오르는 듯한 막막함도 있다. 놀이 능력을 잃어간다는 대목도 자꾸 맴돈다.

– ㄱOO

리추얼이 사라지는 세계에서는 의식이 없다. 입학식과 졸업식의 경계가 옅어지고, 상업적 축제나 셀피로 기록할 수 있는 찰나를 제외하면 특정 시기의 통과 의례는 빠르게 사라지는 중이다. …집단을 연령대나 소속으로 묶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리추얼의 상실은 곧 ‘머무름’의 상실이다. …이제 우리가 믿었던 모든 가치에 대한 의심의 시대가 올 것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변화가 가속화되는 세상에서 나 자신으로서 더 또렷이 존재하는 방법은, 내가 인식하는 범위를 ‘나 자신’에 그치지 않고 더욱 넓게 바라보는 것이다.

– ㄱOO

오히려 나는 지금 인간관계에서 필요한 것들이 이런 의례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흥분과 감정이 주도권을 쥐지 않도록 “리추얼적 몸짓과 사교형식”을 갖추는 것 말이다.

– OOㅇ

‘오늘날처럼 휴식이 노동으로부터의 회복으로서 노동에 가까워지면 휴식은 존재론적 부가가치를 잃는다. 그러면 휴식은 독자적이며 더 높은 실존이기를 그치고 노동의 파생물로 전락한다.’

…노동으로부터 회복하는 ‘놀이’가 아닌, 그냥 그 ‘뛰어노는 행위’ 자체가 재밌고 행복했었다.

– ㅇ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