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17일~5월 13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개최된 전시 [한국의 단색화] 전 소개 텍스트.
– 국내 최대 규모로 1970년대 이후 현재에 이르는 ‘한국의 단색화’를 집중 조명
https://www.mmca.go.kr/exhibitions/exhibitionsDetail.do?exhId=201202240002871
– 40여년간 한국의 단색화가들이 이룩한 마음의 풍경
– 한국 대표 작가 31명의 150여점 공개
– 이우환 화백과 박서보 화백의 강연회, 윤진섭 교수의 렉쳐 퍼포먼스, 이강소 작가의 작업실 투어, 국제학술심포지엄 진행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정형민)은 3월 17일부터 5월 13일까지 과천본관에서『한국의 단색화 Dansaekhwa: Korean Monochrome Painting』전을 개최한다. 국내 최대규모로 1970년대 이후 현재에 이르는 ‘한국의 단색화’를 집중 조명하며 김환기, 곽인식, 박서보, 이우환, 정상화, 정창섭, 윤형근, 하종현 등 17명의 전기 단색화 작가와 이강소, 문범, 이인현, 김춘수, 노상균 등 14명의 후기 단색화 작가의 작가 소장작품과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대형작품 150여점을 소개한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의 전시를 마치고 6월 8일부터 7월15일까지 전북도립미술관으로 순회전시를 하게 된다.
초빙 큐레이터로는 윤진섭 호남대 교수가 전시 기획에 참여했다. 윤진섭 교수는 2000년 제3회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한일현대미술의 단면』전을 기획, 한국의 단색화를 집중 조명하여 그 해 <월간미술대상> 전시기획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이번 전시는 한국 단색화 전시의 결정판으로 이제까지 모노크롬 회화, 모노톤 회화, 단색평면 회화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렀던 한국의 단색화를 ‘모노크롬(monochrome)’이란 영어명이 아닌 ‘단색화(Dansaekhwa)’란 고유명을 공식적으로 표기한, 주체적인 시각이 돋보이는 전시회이다. 이는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한국미술의 브랜드를 갖기 위한 첫 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전시작품은 일체의 구상성을 배제하고 순수한 단색 추상화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70-80년대의 초기 단색화 작품들을 모아 하나의 섹션으로 꾸민 특별 전시실이 볼만 하다. 관객들은 이 전시실에 전시된 초기 작품들과 작가별 섹션에 전시된 중후기 작품들을 비교함으로써 단색화의 변천 과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특히 1972년, 제1회 『앙데팡당』전에 출품, 당시 파리비엔날레 출품작가 선정 심사위원인 야마모토 다카시 동경화랑 사장이 “조선의 백자를 연상시킨다.”라고 격찬한 이동엽의 화제작 <상황>의 원화(原畵)가 최초 공개된다.
더불어 한국 단색화의 형성과정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게 꾸민 ‘단색화 아카이브’가 전시와 함께 관객들의 단색화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한국 단색화와 관련된 각종 도록, 서적, 잡지, 일간지 기사, 드로잉 공문 등 약 300여 종에 이르는 풍부한 자료가 전시되며, 단색화의 세계적 위상을 리좀(뿌리줄기)식 그래픽 구성으로 벽면에 제시하고 작가와 이론가들의 생생한 인터뷰 내용을 다섯 대의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들려준다. 특히 이번 아카이브 공간에는 일본에서 한국 단색화의 유행을 촉발한 1975년 일본 동경화랑 주최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개의 흰색』전 도록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33점의 단색화 관련 국내외 도록들이 총망라돼 전시된다.
이어서, 2013년 미국 미네소타 대학교 출판부에서 발간된 책 [Contemporary Korean Art: Tansaekhwa and the Urgency of Method] 소개 페이지 인용.
The first in-depth examination in English of twentieth-century Korea’s most important artistic movement
https://www.upress.umn.edu/book-division/books/contemporary-korean-art
A crucial artistic movement of twentieth-century Korea, Tansaekhwa (monochromatic painting) also became one of its most famous and successful. In this full-color, richly illustrated account—the first of its kind in English—Joan Kee provides a fresh interpretation of the movement’s emergence and meaning that sheds new light on the history of abstraction, twentieth-century Asian art, and contemporary art in general.
…Against the backdrop of the Cold War, decolonization, and the declaration of martial law in South Korea, these artists asked questions that continue to resonate today: In what ways can art matter to the world? How does art exert agency when its viewers live in times of explicit or implicit duress? How can specific social and political conditions inspire or influence methods and styles?
(고은의 노트)
얼마전 황당한 기사를 봤다. 몇몇 신진 작가들의 그림을 두고 ‘포스트 단색화’ 라는 수식어를 붙여 전시를 홍보하는 내용이었다. 어떤 사조에 영향을 받거나 혹은 그에 반해 새로운 미술사적 운동으로 호명되기 까지는 엄밀한 미학적, 역사적인 평가 후에 이루어져야 함에도 단순히 한국의 젊은 작가로, ‘단색의 추상화’를 그린다는 이유로, 그들을 ‘포스트’라고 표현할 수 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더욱이 그림의 어떤 스타일을 공유한다고 해서 그 화풍의 새로운 주자가 된다는 것은, 마치 표절한 곡의 작곡가를 원곡의 작곡가의 명맥을 잇는 주요한 예술가로 꼽는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일 것이다. 사실 이건 어쩌면 형식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시도를 하려는 젊은 작가의 작품을 상업적 이유로 애써 포장시키려는 행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슬프게도 이러한 얄팍한 수는 현재 잘 통용되는 듯 보인다. 열기가 한창인 한국 미술 시장에 ‘단색화’만큼 커다란 이목을 받는 단어는 없을 것이다. 오늘 시간에 ‘단색화’에 대해 몇가지 사실을 확인해 보며, 조금은 객관적인 시선으로 이 현상들을 바라보고, 또 단색화에 대한 새로운 감상들을 나눠 볼 수 있기를 바란다.
1. 단색화/ Dansaekhwa / Tansaekhwa ?
‘(Dansaekhwa)’ 1970 단색화 單色畵 는 년대 한국 화단에 등장한 단 색조의 추상회화 중에서도 작가의 반복적 행위로 집단개성을 드러내는 일련의 유파를 지칭한다.
모노크롬 회화 . (Monochrome Painting) 등으로 불 리던 이들 화풍을 칭하는 단색화 라는 이름이 본격적으로 통용되기 시작한 것은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본관에서 열린 ‘한국의 단색화’ 전이 계기였다.
단색화에 대한 미학적 담론과 그 명칭에 대한 학계의 완벽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단색화 와 이를 영문으로 표기한 ‘Dansaekhwa’는 세계미술계에 급속히 확산됐다.
이들 단색화는 2014년 아트바젤 프리즈 등 영향력 있는 국제 아트페어를 중심으로 해외시장에서 비상한 주목을 받았다. 국제화의 경향 속에서 단색화는 1970년대를 전후로 한 아시아 현대미술 가운데 한국 고유의 미술운동이자 화파의 하나로 위상을 확보했다. 또한 ‘단색화’ 및 ‘Dansaekhwa /Tansaekhwa’ 라는 일관성 있는 명칭은 일종의 브랜드로 작용해 단색화는 등장 여 년 만에 급격한 재조명을 받기에 이르렀다.
출처:
<단색화 재조명에 관한 연구 : 2010년대 미술시장의 변화를 중심으로>(조상인, 2019, 서울대학교 대학원
2. 단색화의 주역들
단색화 대표 작가로는 권영우, 정창섭, 윤형근, 박서보, 정상화, 하종현 등을 꼽을 수 있다. 이외 단색화 작가로 포함될 수 있는 작가들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이들은 화풍 및 작풍에서의 공통점 뿐 아니라 70년대 이후 꾸준하고 지속적인 활동을 보여왔다. 단색화가의 범위로 종종 언급되는 김환기, 이우환의 경우는 활동양상 및 시장에서의 평가가 일군의 단색화 작가들과는 차이점을 보인다.
(재용의 노트)
아직도 종종 생각나곤 하는 이야기. ‘민중미술’과 ‘포스트 민중’에 대한, 어느 미술 전시 뒤풀이에서의 대화.
나: 근데 ‘포스트 민중’ 작가는 어떻게 구분하는 거에요?
포스트 민중으로 분류되는 작가분: 그건 DNA같은 거에요. 민중미술 DNA가 있다 하면 그렇게 분류하는 거죠.
나: ???
단색화 역시, 어쩌면 그런 건지도 모른다. (단색화에 대한 여러 학술적 논의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니, 부디 오해는 금물.) 하나의 단어를 둘러싼 여러 생각. 심지어 살짝 어긋난 단어들까지! (이를테면 Dansekhwa인가 Tansekhwa인가!) 갖가지 이해관계와 역동적으로 변한 내외부의 상황들.
대가로 인정받는 한 명의 작가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수 많은 사람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 개인을 넘어선, 개인의 역량만으로는 통제할 수 없으며 그 누구든 시대의 흐름을 (본인의 의사와는 별개로) 탈 수 밖에 없다는 점. 박서보라는 한 인물/작가를 중심으로 단색화의 흐름을 기술한 케이트 림의 책을 읽으며 줄곧 뇌리를 맴돈 생각이다.
요컨대… 단색화에 대한 각광은 어디서 비롯한 것일까? 박서보가 작가로서 힘주어 강조한 ‘이것은 그저 미니멀리즘이 아니’라는 말, ‘정신성’에 대한 강조는 ‘각광받아 마땅한 한국 미술’로서의 단색화’라는 아젠다에 잘 부합하는 이야기일까?
몇 가지 질문
1. 책을 읽기 전, 단색화에 대해 어떤 인상을 가지고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책을 읽고 난 뒤 변화한 생각이 있다면? 몰랐는데 알게된 것이 있다면?
2. ‘한국적인 미술’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최근(혹은 과거에) 감상한 작품이나 전시, 작가 중에 ‘이것은 참으로 한국적이구나’ 생각했던 것이 있다면 공유해주세요!
3. 책을 읽으면서, 미술(과 그것을 둘러싼 제도, 전시, 담론 등)을 만드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나요? 누가, 이것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