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 노트는 재용-고은 순으로 진행해보겠습니다.)
이번 시즌으로 만 6년 차를 맞이하는 “미술아냥” 두 번째 모임은 마틴 게이퍼드와 데이비드 호크니의 [봄은 언제나 찾아온다]를 읽습니다.
재용의 노트
책의 영어판 원제는 좀 더 구체적입니다. [Spring Cannot Be Cancelled: David Hockney in Normandy]. 책의 출간 시기는 2021년.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철저한 ‘봉쇄(lockdown)’이 진행되고 있던 유럽, 그 중에서도 노르망디에 머무르고 있는 작가와의 대화를 모은 책이라는 것이죠. 출판사의 책 소개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David Hockney reflects upon life and art as he experiences lockdown in rural Normandy in this inspiring book…” 이를테면 ‘노년에 이른 대작가가 들려주는 예술과 삶에 대한 이야기’ 쯤이라고 해야 할까요? 제목에서부터, ‘아무리 힘들더라도 이어나가는 작업’에 대한 결기가 느껴지는 듯 합니다.
재미있는 게, 호크니는 책 출간에 앞서 [The Arrival of Spring, Normandy]라는 제목으로 전시를 열었습니다. 런던의 Royal Academy에서 열린 이 전시는 그가 노르망디의 자연을 관찰하며 그린 작품들을 소개했죠.
책의 저자인 마틴 게이퍼드는 이 책이 출간되기 10년 전에도 데이비드 호크니와의 대담집을 낸 적이 있습니다. 책의 제목은 [A Bigger Message: Conversations with David Hockney] 였습니다. 책의 “Introduction” 챕터 제목은 “Turner with an iPhone” 이었죠.
여기서 잠시 회화(繪畵) 혹은 그림이라는 아주 오래된 예술 매체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완벽히 맞아 떨어지는 비유는 아니겠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운동 종목 가운데 가장 기본적이라고 여겨지는 몇 가지 종목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육상과 같은 것들 말입니다. (재현 혹은 기호의 시각적 묘사를 통한 의미 전달으로서의) 회화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업이, 어쩌면 그런 것일 테고요.
호크니가 회화라는 양식을 ‘갱신’하는 미술가인가? 라고 묻는다면, 딱히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간 쌓인 역사가 무척 길기에 꽤 어깨가 무거운 회화라는 하나의 예술 양식을 새롭게 상상하는 것에 그가 관심을 두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물론 이렇게 도매급으로 가볍게만 말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호크니는 다양한 미술 사조를 참조하며, 매우 의도적으로 고전 대가들에게서부터 이어져온 원칙을 거스르는 작업을 합니다. 그의 작업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비율, 원근, 색상 등에 있어 아주 도전적인 면모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정된 미의 원칙에 따라 그려진 딱딱한 작업이 아니라, 모순된 것, 서로 다른 것이 공존하는 캔버스랄까요?)
다시 좀 운동이라는 좀 거친 비유로 돌아가자면, 호크니는 ‘육상 선수 출신의 브레이크 댄서’라기 보다 ‘단거리에서 시작해 중장거리, 마라톤을 섭렵한 기초 종목의 대가’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맨발 달리기에서부터 첨단 과학의 도움을 받은 달리기를 다 겪어본, 그런 대가 말입니다.
ㅂOO님이 독서 노트에서 언급해주신 것처럼, 저 역시 개인적으론 데이비드 호크니가 그리 큰 감동이나 사유의 울림을 주는 미술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작가가 얼마만큼의 삶을 투여해서 작업을 이뤄오고 있는지와는 별개로 말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호크니의 작업의 가치를 낮춰 보는 것은 아닙니다. (현대) 미술이라는 소우주에서 서로 다른 북극성을 바라보는 것일 뿐입니다.
고은의 노트
“나의 문어선생님(넷플릭스, 2020,작.크레이그 포스터)”을 보고, ‘문어 이제 못 먹는건가?’라는 질문이 솔직한 나의 첫 감상이지만, 문어가 자신의 촉수를 들어 다른 생물들과 ‘놀이’하는 모습 역시 잊을 수 없다. 나는 그 장면을 통해 비로소 이 생물이 단순히 우리의 먹이가 아닌, 하나의 생명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처럼 ‘놀이’라는 행위는 어쩌면 생명체의 가장 고등적인 활동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런 관점에서 호크니의 말과 글은 그가 인생을 얼마나 충분한 깊이의 ‘놀이’들로 채워 가려고 했는지, 그리고 그의 그림들을 보고 왜 우리의 입가가 저절로 올라가게 되는지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잠시, 잠시 호크니를 향해 우리가 부르는 “부럽지가 않어”를 상상해 본다. 혹은 호크니가 부르는 “부럽지가 않어” 를 상상해 본다.)
정치적인 메세지와 심오한 철학들을 담은 그림들도 많지만, 그것은 결국 색과 형태의 또 다른 놀이의 과정이라는 생각이 요즘들어 더 많이 든다. 그리고 우리 모두 그렇게 그림을 그리진 못하지만, 우리들 중 누군가는 그 행위들을 지속해나가고 있다는게 좀 다행처럼 느껴진다.
분명히 그 시간들은 ‘그림 같다’는 말처럼 낭만적이거나 평화롭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내가 실제로 목격하고 경험한 일이니 장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호크니의 그림이 주는 또 다른 즐거움은 바로 그럼에도 끊임없이 자신의 방식으로 그 행위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 내가 사람들을 차에 태워 여기로 올 때 길이 무슨 색이냐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들은 대답하지 못했지요. 10분 후에 내가 같은 질문을 다시 하자 그들은 길의 색이 다르다는 점을 알아보았습니다. 그 후에 그들은 “길이 무슨 색인지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솔직히 그런 질문을 받지 않았다면 길의 색은 그저 길색일 뿐입니다. 무엇인가를 바라볼 때 자신이 보고 있는 것에 대해 항상 이와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그래야 사물을 훨씬 더 명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함께 생각해볼 것
- 데이비드 호크니가 당신에게 준 가장 큰 인사이트를 한 단어로 소개한다면?
- 왜/어떻게 해서 우리는 예술가들에 대해서 어떤 식의 고정관념화된 이미지를 갖고 있는 걸까?
- 호크니의 회화에서 예술에 대한 갱신의 의지를 발견할 수 있나요? 발견할 수 있다면 왜 그런지, 할 수 없다면 왜 그런지 설명해 볼 수 있을까요?
멤버들의 독서 노트 발췌
그림 그리는 것은 일상이고, 누가 알아봐주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닌 내가 현재를 즐기는 것으로 보인다.
– OㅅO
노르망디에 있으면서 그린 이 책에 나오는 그림은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그림을 보면서 자주 미소가 짓게 되는 것을 멈추기 힘들었다.
– ㅈOO
세계는 아주아주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을 알아채기 위해서는 열심히 그리고 자세하게 보아야 한다는데, 내 마음을 더 부지런히 가꾸어야 더 아름다운 것들을 볼 수 있겠다싶다.
– OㅅO
팬데믹 속 갇혀있는 상황에서도 그 시간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며 매일 보는 풍경에서 빛에 따라 변화하는 다양성을 주목하는 모습을 통해 시선의 중요성을 배운다.
– ㅂOO
그림으로 표현하진 못하더라도 하루종일 바다를 바라보며 시간과 햇볕에 따른 변화를 관찰하며 노년을 보내고 싶은 꿈이 생겼다.
– ㅇOO
나의 80대는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을까. 호크니 처럼 창조적이긴 어렵겠지만, 그 어떤 영역이라도 죽을때까지 현역이라는 자세를 유지할 수 있다면 좋을텐데.
– OㅅO
호크니 신작 <죽음과 태양은 오래 바라볼 수 없음을 기억하라>의 상영이 시작되었다.(…)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어두운 밤을 이겨낸 태양은 그 이전의 것보다도 훨씬 더 강력했고, 그 빛들은 퍼지고 퍼져 끝내 온 세상을 봄으로 노랗게 물들였다. 호크니가 전하는 위로에 궂은 날씨는 없다.
– ㄱOO
비비드한 컬러감의 뿔테 안경을 낀 할아버지 청바지는 입지 않지만, 파스텔 톤의 니트를 즐겨입는 귀여운 패셔너블한 할아버지, 데이비드 호크니!
– ㅇOO
한장 한장 질 좋게 두꺼운 종이를 조심스레 넘기며 책 속 가득한 다양한 도판을 보며 굉장하다를 연발한다.
– ㄱOO
‘ 이거 나중에 찢어서 벽에 붙여야겠어! 내가 좋아하는 크라나흐도 있잖아. 굉장해! 아주 마음에 들어.’
나에게 있어서도 예술은 기본적으로 기쁨이다. 그게 지적인 도전이나 인식의 확장일수도 있고, 이재삼의 그림이나 르누아르가 그린 이레느 깡 단베르 양의 초상처럼 시각적인 만족에서 오는 기쁨일 수도 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나에게 어떤식으로든 기쁨을 주어야 한다.
– ㅇOO
흔히 ‘예술가는 자유롭다, 예술가는 골방에 있다, 예술가는 괴팍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을 읽다보면 호크니는 자유로우며 절제된 삶을 살고 있고, 골방에 있으며 연결되어 있고, 독특하면서도 부드러운 것 같다.
– OㅅO
호크니 그림의 활력 있고, 감각적인 색상들이 저기서 온 거구나… 자기 패션과 그림 색상의 일치라니… 참으로 진정성 있는 사람이네 느꼈었고…
– ㅇOO
(중략)
저렇게 미술을 골고루 좋아하니깐 호크니 그림이 특정 사조에 얽매여 있기 보다는 여러 사조들의 장점들이 뒤섞인 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보기 드물게 무명시절 없이 대학 졸업 후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사랑과 관심을 받는 작가라고 한다. …마치 예술을 하는 사람은 대게 충동적이고, 욕망이 이끄는 대로 살 것 같은, 그래서 누구보다 자유로울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 ㅇOO
그러나 호크니의 삶은 오로지 작품을 위한 것이다. 그의 모든 시간은 작품을 위한 것이지, 사적인 자유로움이 파고들 새가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생산해낸다는 것은 중요한 위상을 갖는다. 심지어 그 무엇이 예술 작품이라니. 어쩌면 호크니의 작품만을 위한 삶은 현대 사회가 만든 쳇바퀴와 맞물려, 그가 현재의 위대한 작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으면서 뭔가 기시감이 들었다. …저번 시즌 마지막 책 <어떤 그림>과 이 책이 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그림>은 존 버거와 이브 버거 둘의 편지글 대화로 구성되어 있고, 그들의 작품 세계관을 다른 작가 작품들과 비교하거나 빗대어 서술하고 있다.
– OOㅇ
…왜 나는 호크니에 그닥 큰 관심이 없을까? 책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해봤다.
…현대미술 중 회화 작품을 떠올려보면 유명 한국 작가들의 단색화나 외국 유명작가들의 추상화같은 게 먼저 생각난다. 미술 문외한이 볼 때 ‘저런 것도 그림이냐’ 혹은 ‘현대미술 난해하다. 역시 현대미술이란…’ 이럴법한 작품들 말이다.
이번 책 <봄은 언제나 찾아온다>를 통해 호크니를 오랜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다시 만난 호크니는 나를 한 숨 쉬어가게 해주었다. (중략) 작가인 마틴 게이퍼드와 호크니가 생각을 주고 받는 이 책의 서술 방식에 나도 모르게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듯한 느낌이 든다.
– ㅅOO
예술가가 직접 쓴 책을 읽고 작품을 보니 뭔가 더 그림에서 사람이 느껴지는 느낌… 점점 더 나는 어떤 작품들을 좋아하게 될 지 궁금해졌고, 이를 위해 작가의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결론이 들었다. 전시 도록이나 작가 소개를 읽는 것과는 와닿는 깊이가 달랐다. (그런 의미에서 대중적인 고마운 책이었네…)
– ㅇ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