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팅 커버 이미지는 Forbes 아티클 “Is Busy Really the New Stupid?”(링크)에서.
4개월의 모임을 여는 책은 셀레스트 헤들리(Celeste Headlee)의 책 [Do Nothing: How to Break Away from Overworking, Overdoing, and Underliving](2020)입니다. 한국어 번역본 제목은 [바쁨 중독](한빛비즈, 2020). 영어판이 출간된 해에 한국어 번역본이 출간된 걸 보면, 출판사 입장에서 ‘이 책은 되겠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여기서 잠깐. 책의 저자인 셀레스트 헤들리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헤들리는 의사소통 및 행동 전문가이며, 20년 넘는 공중파 라디오 진행 경력을 자랑하는 방송인이자 프로듀서이기도 합니다. 미국에서 널리 알려진 작곡가인 윌리엄 그랜트 스틸(1895-1978)의 손녀이기도 한 헤들리는 보컬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음악가로도 오랜 시간 활동 중입니다. 게다가 두 아이의 엄마이기까지 합니다. 말하자면, 전형적인 ’하나만 하기에도 벅찬 일을 전문가 수준으로 여러 분야에서 해낸 사람’ 이죠.
그런 헤들리가 [바쁨 중독]을 쓰다니. 어떻게 보면, 하루를 48시간처럼 사는 유명인이 ’우리는지나치게 바쁘다’는 말을 하는 책을 쓴 셈입니다!
그나저나, 취향에 대해 탐구해보자는 책읽기 모임에서 왜 ‘바쁨’ 이야기를?
‘취향’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 그럼 이처럼 뭔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은 어디에서부터 비롯하는 걸까요? 그것은 결국 ‘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럼 다시, ‘나’는 무엇으로 인해 어떤 것을 하고 싶어지는 것일까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질문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잠시 1998년 퓰리처상 수상 후보에 올랐던 책, 주디스 리치 해리스의 [양육가설]을 가지고 와 보도록 하겠습니다.
1998년 출판된,『양육 가설』은 퓰리처상 논픽션 부분 최종후보에 오를 만큼 센세이셔널했다. 양육 과정에서 부모의 역할이 결정적이라던 기존의 견해를 반박하며 오히려 또래집단과 유전이 아이의 성격형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2006년 출판된,『개성의 탄생』은 인간의 독립성과 개성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그녀는 개성이 타고 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며, 관계, 사회화, 지위라는 3가지 체계에 의하여 형성된다고 주장한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60644981
여기서 ‘양육’이나 ‘개성’을 ‘취향’이라는 단어로 바꿔 한 번 읽어봅시다. 우리의 취향은… 타고 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며, 관계, 사회화, 지위라는 3가지 체계에 의해 형성된다…! 라고 주장해 볼 수 있겠습니다.
결국 ‘취향’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기 위해서는 ‘나’를 둘러싼 많은 것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는 중간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조금은 당황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아니, 좋은 걸 많이 사보고, 써보고, 겪어보면 쌓이는 게 바로 취향이라는 게 아니었어?’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취향 찾기에 왠 자아 탐구와 사회학적 메타 분석이 필요한 거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좋아 보이는 것들의 비밀’에 대해서 생각하기 전에, 우리에겐 ‘빨간 알약’ 모먼트가 필요합니다.
다시, 바쁨 중독에 관하여.
저는 [궁극의 취향!] 첫 번째 모임을 위한 책으로 왜 [바쁨 중독]을 선택한 걸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여러분의 몫으로 남겨둔 채, [바쁨 중독]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아니, 거기에 앞서, 며칠 전에 만난 덴마크에서 온 패션 비평가 동료와 나눈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내가 전 세계를 다니면서 직접 가 본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특히 유럽이나 영미권 쪽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에는 항상 늘어져 있거나 놀고 있는 사람들이 몇 명은 있었는데… 한국에서 방문한 스튜디오들에는 놀거나 쉬고 있는 사람이 정말 단 한 명도 없더라. 내가 유럽 사람이라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유럽 문화에서 창조적인 작업자라는 개념은 노동과 놀이, 여가라는 개념 사이에서 생겨난 직업이라고 생각하거든.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내가 한국에서 본 크리에이티브 워커들은 ‘크리에이티브’라는 신화를 쫓으면서 모더니즘이나 산업화 시기의 근면함이나 강도로 시간을 쓰고 일을 하는 것 같아.
이 나라에서 몇 개월, 저 나라에서 몇 개월씩 살아가고 있는 이 친구가 보기에 한국의 예술계, 디자인계 사람들의 노동 윤리는 자기가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종류의 어떤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의 사고 방식으로는 창조적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일부러라도 일하지 않는 시간을 내서 즐기는 것이 그들의 일에 있어서 오히려 중요한 것인데, 한국에서 만난 아트와 디자인 피플들은 자기가 본 그 어떤 사무직 종사자보다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다는 말과 함께.
OECD 자료를 기준으로, 한국의 연간 노동 시간은 약 2,000시간입니다. 이는 연간 노동 시간이 가장 짧은 독일에 비해 연간 약 600시간 이상 더 많은 노동 시간입니다. ([바쁨 중독]의 배경이 된 미국은 연간 총 노동 시간이 약 1,800시간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다루는 것은 단순히 ‘돈을 버는 일’로 인한 바쁨만이 아니지요. 오히려, 생산성과 효율에 대한 강박,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부정적 인식, 일하지 않는 시간에도 뭔가 ‘유용한’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이 책이 던지는 핵심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참 아이러니합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100년 전이었으면 대저택을 가진 부호들이나 누릴 법한 온갖 사치를 누리고 있는데… 대체 왜 이렇게 바쁜 걸까요? 대부분은 아마도 우리에게 끊임 없이 푸시 알람을 울려대는 집중력 도둑인 모바일 기기와 아직까지도 정립되지 않은 정신 노동의 효율화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수 많은 회의, 이메일과 메신저 알림이 과연 우리가 일을 더 잘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건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바쁜데, 내가 누군지, 나를 둘러싼 건 뭔지, 그래서 내 ‘취향’이 뭔지 알 수 있을까?
[바쁨 중독]을 시즌 첫 번째 책으로 선정한 건 바로 이런 생각에서였습니다. 여기서 또 한 번 생각해봅시다. 지금 이 순간까지, 내가 누군지, 내게 잘 맞는 건 뭔지, 내가 좋아하는 건 뭔지 생각해보고 시도해보고 실패하고 수정하고 갱신할 수 있었던 시간이 얼마나 있었나요? 있었다면 어떤 계기를 통해서였고, 없었다면 왜 없었나요? 오늘 내가 입고 있는 옷, 들고 있는 물건은 어떤 이유로 고르게 되었나요?
첫 번째 모임은 이렇게 진행하고자 합니다.
- 먼저, 각자 돌아가며 자기 소개를 하겠습니다. 자기 소개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말해보도록 합시다. 그런 뒤
- 무슨 일 하나요?
- 모임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어요?
- 랜덤 질문 / 멤버간의 질문 등은 파트너님의 진행에 따라
- 여기에 덧붙여, 오늘 자기가 입고 있는 옷 혹은 들고 있는 아이템에 대해서 설명해보도록 합시다.
- 책에 대한 전반적 ‘인상’이나 총평을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 그리고, 질문 거리를 나눠보겠습니다.
- ‘취향’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떠오르는 생각은?
- ‘오늘의 나’를 생각하며, 과거를 돌아봅시다. 내 취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나 사건, 사물이 있나요?
- 2022년 우리는 ‘더 풍부한 취향’이 존재하는 사회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 이 질문들에 직접 대답을 나눠봐도 좋겠고, 아래에 발췌해둔 독서 노트들을 함께 읽으며 생각을 나눠봐도 좋겠습니다.
위 동영상은 유튜브에서 직접 보기. ““회사 그만 둘 거야” 대퇴사 시대 (KBS_250회_2022.02.19.방송)”
독서 노트 발췌
책을 읽는 내내 전혀 다른 분야의 내용이라고 생각했던 한 책이 떠올랐다.
– KOO
‘포크를 생각하다 – 식탁의 역사’ 식문화와 연관된 여러가지의 기타 등등에 대한 미시사를 소개하는 책이었는데, 그 책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우리는 조금 더 ‘효율’적으로 요리하기 위해 푸드 프로세서와 같은 다양한 조리도구들이 개발되었지만 여전히 실질적으로 주망에 들어가는 시간이 줄어든 것은 아니라는 뉘앙스의 내용이었던 것 같다. (중략) 다만, 저자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잘 공감이 되지 않는다.
저자는 일은 생존을 위한 수단이지 목표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하며 일이 곧 내 삶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불쑥불쑥 반감이 드는 때가 있었다.
– ㅎOO
일이 내 삶에서 완전히 사라졌을 때 나는 비로소 삶의 진정한 목표를 찾았고, 이제는 직업적 목표로 삶의 목표도 둘 다 잘 이뤄내보려고 한다. 운명같이 이런 상황에서 만난 이 책은 나에게 첫 길잡이가 되어주기에 충분했다.
– (구)영보스 ㅈO
나는 ‘취향’이라는 단어를 꽤나 남발하는 사람이다. (중략) 그리고 아래 문장은 정말 내 사고를 흔들어 버렸다.
– ㄱOㅇ (최다 ‘좋아요’를 받은 독서 노트!)
“시간을 더 들여서 일정보다 미리 일을 끝내면 긴장을 낮출 수 있다고 믿겠지만, 실제로는 어떤 일을 빨리 끝내는 것보다 휴식할 시간을 빼놓고 실제로 휴식을 취할 때 스트레스가 낮아질 가능성이 더 높다.”(281)
“10년 전에 읽었더라면 더 도움이 됐을까하고 생각해보게 하는 책”
– ㄱOO
여러 산업화 시기의 예시 일화처럼 그 속도를 정하게 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 의해서라면 불행하겠지만 본인이 그 속도만 정할 수 있다면 바쁨도 행복한 선택이지 않을까. 10년 전 오피스에서 지내면서 출퇴근 시간도 아깝다고 생각하며 침낭에서 지내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 때 이 책을 읽었더라면 도움이 되었을까?
“맞는 말들과 의아한 근거들”
– ㅇOO
이 책은 맞는 말들로 가득하다. 그런데 그 근거들이 의아하다고 느껴졌다. (중략) 바쁘게 살다가 40대에 접어들면서 원하던 것들을 대부분 이룬 뒤에 ‘꼭 바쁠 필요는 없다’고 말하는 작가의 맥락은 이러한 경향을 가중시킨다.
“‘아무 것도 안해도 된다’는 안도감”
– ㅈOO
급여생활자를 끝내고 바로 이 책에서 말하는대로 시간을 돈으로 맞바꾸는 프리랜서가 되어버렸다. (중략) 물들어 올 때 노 저으라고, 얄팍한 지식을 시효에 쫓겨가며 팔아가다가 결국 몸과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난 후에야 비로소 느낀 바 있어, 현재 꼬인 삶의 매듭들을 다시 매만지는 중이다.
“코로나가 찾아준 게으름”
– ㅈOO
책에서 말하는 바쁨을 쫓는 인간의 모습에 대한 부정이 딱히 공감이 가지는 않았다. 바쁘지 않음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것이긴 하지만, 바쁨을 선택하더라도 그저 선택은 그 자체로 좋은 거니까.
그렇다면 나는 뭔가를 하지 않으면 왜 불안했을까?
왜인지 모르게 시간에 쫒기고 있다고 생각한 이유를 하나하나 따져보기로 했다. 첫 번째 이유로, 너무나도 많은 멀티태스킹이 생활 속에 이었다. (중략) 켜져있는 크롬의 탭 수를 살펴보니 12개였다. (중략) 시간의 중요성에 대해 그렇게 많이 듣고, 많이 보고 있었음에도 이렇게 살고 있었던 것인가. 아픈 이 시기를 기점으로 다시 한 번 재정비를 해보고자 한다.
– COO
책에서 얘기 하는 사례는 근무시간이 적은 미국의 사례를 말하고 있지만. 미국인의 삶이 절대적 근무 시간이 적다고 해서 그들이 일을 적게 한다거나 여유가 있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오히려 일은 연장이 되었고, 다만 회사에서의 물리적 일이 줄어 든 것이지. 일은 가정까지 침투하게 되었다고 저자를 밝히고 있습니다. 왜? 시간은 돈이고, 어떻게든 성과를 내야 생존할 수 있고, 생존을 해야 돈을 벌고, 그 돈을 가지고 물건을 사고, 삶을 영위할 수 있으니까.. .이런 논리가 계속 돌도 도는 쳇바퀴처럼 사람을 지배했던 겁니다.
– ㅇOO
(중략) 어쩌면, 저자가 이야기한 바쁨의 역사에 비해, 해결방법 들은 우리가 익히 들었던 얘기지만, 그냥 건성으로 들을 것이 아니라. 좀 더 깊이있게 생각하고 개선해야 하지 않냐고 봅니다. 위의 글을 풀어본다면, 계획하지 않으면 절대로 모든 일들이 정신없이 바쁘게 내게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며, 남들과 비교하다 보면, 그것을 따라잡기 위해 스스로 여유를 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휴식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취미를 만들지 않으면 그냥 여유가 만들어지지 않는 다는 것과, 그것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관계가 필수적이라고 저자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끝으로, 내가 원하는 목표가 분명하지 못하면, 바쁨과 여유를 구분짓는 것이 한계가 있다고 얘기합니다
관계 오답노트를 쓰며 그간의 에피소드들을 돌아보던 중 불통이 시작되었던 포인트가 생각났다. 나도, 그도 일에 치여 허덕이기 시작할 때였던 것이다. 함께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서로 열심히 일했던 것 뿐이었는데 아쉽기도 했지만, 이 기회에 삶의 방식을 다시 점검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효율적으로 살기 모드’를 잠시 중단했다.
– ㅇOO
남편과 재미있는 게임을 즐기고 싶은데, 결국은 나 자신을 돌아보고 디테일하게 분석하여 오감을 써야하는 것이다. 번아웃의 또 다른 단어, 나에 대한 성찰 부족의 습관 아닐까.
– POO
“나 자신에게”
– KOO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는 일은 평생 반복될거야. 조급하거나 교만할 필요는 없어.
바쁘게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압박감을 자주 느낀다. …누구나 살려면 노력해야 하고 노력한다는 것은 더 많이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떨쳐내기가 영 어렵다. (중략) 멀티태스킹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멀티태스킹을 요구받는다.
– KOO
“‘바쁨’이라는 핑계”
– COO
트레바리를 하면서 여러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썼지만, 이 책처럼 읽는 내내 반감을 가졌던 책은 처음이다 ㅎㅎ
(중략) 책의 뒷부분에서, 내가 나의 ‘바쁨’에 대해 책의 앞부분의 화자만큼 ‘부정적이지 않았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중략) ‘내 일정에 과부하가 걸린 것은 궁극적으로는 내 선택이 아니었다. 내가 잠시라도 일을 멈추면 게으른 거라고 믿게 만든 것은 근면의 문화였다’는 부분을 읽으며, 글쓴이와 나는 타협점을 이뤘다. ‘무언가를 탓하다니!’ 말이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