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크 아트
4개월을 한 주기로 운영 중인 트레바리 책읽기 모임 [미술아냥]의 (아마도) 16번째 시즌은 [토크 아트]와 함께 시작합니다.
배우 러셀 토비와 갤러리스트 로버트 다이아먼트가 쓴 이 책은 모든 것일 수도 있고 아무 것도 아닌 것 같기도 한 ‘컨템포러리 아트’를 탐색하는데 참고할 여러 이정표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든 책이 그렇지만, 책을 쓴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 책이 어떤 맥락에서 출간되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게 도움이 되겠습니다. ‘무언가 진행 중이라는 느낌'(16)에 끌려 예술 애호가가 되었다 결국 뮤지션에서 갤러리스트로 직업을 바꾼 로버트 다이어먼트. 수집품의 스펙트럼을 확장해 미술품 수집에 진심인 (꽤 알려진 배우) 러셀 토비. 두 사람은 각각 1980년과 81년생으로 연년생입니다.
두 사람이 자란 8-90년대의 영국은 1970년대의 경제 침체 이후 실업과 인종차별주의로 물든 시기였고, 마거릿 대처의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가 부상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1984년에는 터너상이 시작되었고 (1991년부터 채널4가 수상에 관여하며 영국의 전국민적 미디어이벤트가 되었습니다), 1988년에는 yBA 미술가들이 전시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에는 ‘뉴 밀레니엄’과 함께 테임즈 강가의 발전소를 개조한 ‘테이트 모던’ 미술관이 개관했습니다.)
Carsten Höller (New Year's Day Special Episode) – Talk Art
그런 시기를 자란 두 사람에게 동시대 미술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책의 서두에 잘 쓰여 있습니다. 추측해보건데, 소수자로서의 젠더 정체성을 지닌 두 사람에게 동시대 미술은 일종의 해독제antidote 역할을 했던 것 같습니다.
취미로 시작된 팟캐스트 “Talk Art”는 전 지구적으로 인기 있는 동시대 미술 토크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2020년 뉴욕 타임스에 실린 기사 제목이 이를 말해줍니다. “There Are No Pictures, but This Art Podcast Is Thriving: The gallerist Robert Diament and the actor Russell Tovey founded Talk Art as gossipy chat. Now it’s a global hit.” >링크<
기사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이 팟캐스트를 청취하는 청취자의 거의 대부분이 만35세 이하의 젊은이라고 합니다. 또한, 팟캐스트에 등장하는 작가들은 지극히 두 사람의 취향에 따르며 (그래서 사진 작가가 잘 없다고 함), 무척 쾌활한 두 사람의 말투와 진행방식으로 인해 종종 꽤 진지하고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미술가가 등장할 때엔 어색한 상황이 생기기도 합니다. 미술사에서 중요한 사건이라 전시 등에 대해 말문이 막히는 때도 있다고 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없이 쾌활한 두 사람의 에너지는 팟캐스트에 출연한 사람들이 긴장을 풀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냅니다. 다른 매체에서는 만날 일이 드문 컬렉터들도 두 사람의 팟캐스트에 출연했다고 하니까요. 그래서, 이 두 사람이 제시하는 동시대 미술은 어떤 방향을 보이고 있을까요? 사실, 저는 이 책의 번역 검토서를 쓴 적이 있습니다. 정확히 무엇이라고 코멘트를 했었는지 기억이 조금 가물거리지만… 그 중 하나는 이것이었습니다. 괜찮은 책이긴 한데… 책에서 소개하는 경향과 작가들이 한국에서 접하기에는 아직 조금 이르다는. 그래서, 굳이 번역할 필요가 있을까? (아마 그런 점을 책의 목차랄지, 책에서 소개하는 작가들에서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저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결국 다른 출판사에서 번역서가 나온 걸 보니, 제가 동시대 미술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을 과소평가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단, 다소 마이너한 출판사에서 두 명의 번역가와 함께 빠르게 작업한 뒤 책정한 27,000원이라는 가격은 책의 시장성에 대한 ‘모험적’ 성격을 짐작케 합니다.
책을 읽으며, 저는 동시대 미술(혹은 21세기 지금의 미술)이 어떤 존재로 지금의 시대를 가로질러 흐르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정말 많은 사람의 노력, 시간, (사적인 것 뿐 아니라 공적인) 돈이 동시대 미술에 흘러 들어가고 있습니다. 당장의 효용은 없지만 사회가 유지될 수 있게 해주는 어떤 것으로서 미술(을 포함한 당위적으로 비영리적인) 예술이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잠시, 클럽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 고은님의 짧은 노트도 공유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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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종류의 책이 흔히 그렇듯, 서문에서 밝힌 저자의 ‘나의 작고 소중한 연대기’가 책 전체로 이어지기에는 여러모로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의 팟캐스트는 훌륭했겠지만, 이들이 책을 위해 한 일이라곤 그에 비해 매우 작고 소중하기만한 에필로그를 쓴 정도인 듯 하다. 그럼에도 지금 가장 동시대적인 작가들의 이름을 쉼표도 없이 주르륵 읊으며 떠드는 이들의 수다스러움이 마냥 얄밉께 느껴지진 않았다. 이런 이들의 책에 서문을 장식해준 제리살츠는 매우 완벽한 선택이라고 볼 수있을 것 같다. 나는 20대에 그의 직설적이지만 익살스러움, 그리고 약간 히피같은 말들( Let the work come to you!)에 위로를 얻고는 했다. 물론 나는 그의 경구들 중 2번을 보며 미술대학 졸업 엄마의 한숨을 애써 외면하며 작업을 해보겠다고 보낸 자기연민의 시간에 대한 적절한 답을 얻었던 것 같다. 나는 그렇게까지 예술가가 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혹은 그 만큼의 재능이없다는 걸 약 16년의 교육과정을 마치고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여전히 그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토크 아트]의 추천사를 쓴 미술 평론가 제리 살츠의 작가들을 위한 조언
책을 읽으며 나의 친애하는 동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작업을 위해 고분 분투하는 이들, 예술가로 좋은 커리어를 쌓아 왔지만 여전히 불안하고 목마른 이들, 미술관/갤러리/컬렉터 사이에 자신과 자신의 작업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 이 책의 마지막에 부록처럼 달려 있는 정보들과 각 챕터의 작가들의 인터뷰가 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얼마나 해소해 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미술계라는 수 많은 평행 우주를 떠도는 우리 모두에게 이 둘의 안내서는 꽤 유용할 것 같다.
여기서 잠시, 제리 살츠가 심사위원으로 등장해 화제가 되었던 미국의 서바이벌 리얼리티쇼 “Work of Art”의 한국판 “아트스타코리아”의 한 꼭지를 공유해봅니다. (영상의 내용은 저나 고은님의 의견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생각해볼 것들 (시즌 첫 모임이라는 것을 감안한)
- 동시대 미술은 (내게? 인류에게?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시나요?
- 미술 작품을 볼 때 어떤 점을 기준으로 ‘좋은’ 작품이라고 판단하나요?
- 기억에 남는 ‘미술 체험’이 있다면, 공유해주실 수 있을까요?
독서 노트로부터의 발췌
책 후반부에 ‘모든 전시가 재미있는 건 아니다’ 라는 내용을 읽으면서 안심했다. 어떤 작품은 현재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나중에 다르게 보일 수 있는 것이다.
– ㅈOㅇ
동시대 미술의 범위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고 무한했다. 특히 누구나 손안의 스마트폰으로 쉽게 찍어내는 사진이 어떻게 예술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이 인상 깊었다.
– ㅇOO
개인적으로 좋은 작품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좋다고 생각되어지는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예술작품은 관객이 봐 줌으로서 그 가치가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종종 현대 작품들은 이해하기 위해 관객들에게 너무 많은 노력을 요하게 만들어 나같이 공부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어려운 경우가 있다.
– OOㅇ
다양한 부캐를 만들며 사회경제적인 활동을 하(도록 장려되)고, 현실세계에서 나아가 가상세계에서조차 자기표현이 요구되는 상황인 지금 우리 모두가 마이크로 예술가가 되어가는게 아닐까.
– OOㅈ
작가가 보여주고 싶었던 건 혹은 관객이 보고자 했던 건 광배가 아니라 작품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그 작품들에 베인 눈물 핏물 짓물 들은 속삭여 주는 듯했다.
– oOㅈ (놀러가기)
일상의 지난함에 무심코 지난치는 것들에게, 그 속에 숨겨진 결을 느껴보라고 이야기한다. 모든 것을 감싸안아 주는 것을 사랑이라고 한다면, 예술은 사랑의 한 종류일지도 모르겠다.
– ㅅOO (놀러가기)
책의 마지막에 서술한 ‘이제 막 싹을 틔운 예술가들을 위한 조언’은 나를 비롯하여 현대인에게 모두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 ㅇOㅈ
아쉬웠던 점을 꼽자면, 책에서 전달하는 예시의 양에 비해 참고 이미지가 턱없이 부족했다. 계속해서 검색해가며 책을 읽어야 했던 탓에 책을 읽는 속도가 느려지긴 했지만… 또한 현대미술에서 그리고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이기는 하나, 젠더 이슈에 대한 부분이 많이 다루어진 듯 하다.
– ㅇOO
의외로 이 책에서 내가 흥미롭게 본 부분은 두 저자가 어떻게 예술을 접하고 여기까지 흘러오게(?) 되었는가를 쓴 서문 부분과 예술에 관심이 있다면 이렇게 접근해보라고 친절히 설명을 해둔 ‘동시대 미술에 참여하는 방법’ 부분이었다.
– ㅇOO
“동시대 미술의 의미”
– ㅇOO
…많은 동시대 미술 작품들은 내가 관심을 두지 않는 동안 다른 한켠에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무엇보다도 치열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쩌면 말과 글보다도 솔직하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는 중이었다. …’인간애, 회복력, 진전, 세상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새로운 방식의 기록’
“미술로 보는 나”
– OOㅇ
…작가나 작품 자체를 따라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그걸 보는 ‘나’의 관점, ‘나’의 느낌이 먼저라는 것이다. …외려 작품이 나에게 ‘나’라는 사람의 취향을 알려주는 도구로 작용한다. 실상 매일 ‘나’를 이끌고 살면서도 정작 내가 무엇을 진짜 좋아하는지, 무엇을 진짜 싫어하는지, 무언가를 왜 좋아하고 왜 싫어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사람의 눈은 밖을 내다보긴 쉬워도 정작 눈이 붙어있는 내 안을 들여다보기는 어렵다. 우리는 미술작품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시각을 뒤집어보면 미술작품을 통해 나를 들여다 보는 것일 수도 있다.
갤러리를 방문하고, 대화를 시작하고, 취미로 즐겨라.
– OㅅO
책을 사고, 정말 마음에 드는 작품만 선택하고, 개성있는 자신의 규칙을 정하라.
“미술은 시대정신이다”
– ㅇOO
동시대 미술의 가장 뜨거운 현재를 다룬 이 책 [토크아트]에서 단연 인상깊었던 대목은 단연 예술이 페미니즘, 그리고 퀴어 정체성 투쟁과 만나는 지점이었다. …이들의 작업을 보며, ‘자기표현’이라는 형태로 예술에 정치가 한 스푼 섞일 때의 폭발적인 에너지를 느낀다. 어젠다가 저널리즘의 얼굴을 할 땐 ‘차갑게 찌르는 형태’가 되지만, 예술의 그릇에 담길 땐 ‘뜨겁게 녹이는 형태’가 된다. 때로는 구구절절한 서술보다, 세련된 상징으로 응축된 이미지로 ‘맥일’ 때의 전압이 더 높은 법. 그래서 예술이 재밌고, 또 예술이 필요한 게 아닐까 싶다.
– OO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