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진섭 (미술평론가) “문화의 힘”
-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높은 울타리 안 미술과 통섭의 시대”
- 최태만 (국민대학교 교수) “검열 잔혹사, 더 이상 안 된다”
- 김찬동 (전시기획자) “큐레이터의 전문성과 윤리 문제”
- 바르토메우 마리 (독립큐레이터) “국제무대를 향한 전시와 담화”
-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위기를 벗어날 일곱 가지 방안”
- 이숙경 (테이트 미술관 큐레이터) “한국미술의 ‘다른 이야기들’”
- 윤 익 (미술문화기획자) “미술애호가를 양성하는 미술 감상교육”
- 서진석 (울산시립미술관 추진단장) “한국 현대미술의 세계화”
- 장경화 (문학박사)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준비는 하고 있는가?”
- 김주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절박한 ‘미술관’의 얼굴”
- 홍명섭 (작가) “힘의 불균형/소수자-되기”
- 박남희 (전시기획자) “미술을 만드는 사람들 ‘전문 인력’”
-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 “‘미술진흥법’ 제정 적극 추진해야 한다”
- 이현숙 (국제갤러리 회장) “한국미술시장, ‘근력’을 키워야 할 때”
- 이옥경 (서울옥션 부회장) “미술시장, 이제는 산업으로 인식해야”
- 조태권 (광주요 그룹 회장) “문화는 세계사의 산물이다”
- 최정은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장) “미술 생태계를 위한 짧은 제언”
- 최은주 (대구미술관장) “미술관장의 현실과 꿈”
- 최웅철 (한국화랑협회 회장) “우리 미술의 우수성, 성장하는 한국미술의 국제 경쟁력”
- 이기표 (아시아문화원장) “‘사람이 있는 문화’를 위한 제언”
- 조은정 (고려대학교 초빙교수) “국가권력의 범위에 대한 성찰”
- 이대형 (Hzone 디렉터) “창의적인 관료제”
- 오세원 (씨알콜렉티브 디렉터) “2019 친 염세주의”
- 안규철 (작가) “동시대를 넘어서”
- 심상용 (서울대학교 교수) “사어화(死語化)된 예술혼(藝術魂) 리셋(reset)하기”
- 이선영 (미술평론가) “안정된 구조를 뒤흔드는 타자의 힘”
- 김달진 (김달진미술연구소장) “한국미술 디지털아카이브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 백동민 (월간 「퍼블릭아트」 발행인) “혁신적 공공미술 기관 신설하자”
- 김인선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대표) “지금, 예술의 다양성이 빛나야 하는 순간”
오늘의 책, [1945년 이후 한국 현대미술]의 목차는 아닙니다. “2017년 6월부터 2020년 6월까지 월간 「퍼블릭아트」에 실린 ‘컬쳐레터_한국미술에 바란다’를 엮은 출판물”, [컬처레터 한국미술에 바란다 문화예술 리더 30인이 전하는 통찰력 있는 제언](⌨️링크)의 목차입니다. 목차만으로도, 미술’계’의 고민을 얼추 파악할 수 있지요.
그럼 [1945년 이후 한국 현대미술]의 목차를 한 번 살펴볼까요.
I. 해방 이후 한국미술 : 1945-1957
(1) 새로운 시작 ㅤ
– 해방 이후의 미술계
– 한국전쟁과 미술
(2) 미술계의 재편과 변화
– 서양화단의 활동
– 동양화단의 변화
– 조각의 새로운 움직임
– 건축, 공예와 사진
(3) 전시와 국제 교류 ㅤ
II. 모더니즘 미술과 국가 주도 미술 : 1957-1975
(1) 추상미술의 확산
– 앵포르멜 미술
– 중견 미술가들의 독자적 모색
– 현대조각의 추상 실험
– 국전 개혁의 시도
(2) 다양한 미술에의 도전 ㅤ
– 매체의 확산
– 건축, 공예와 사진
(3) 국가 주도의 미술 ㅤ
– 공공조각
– 민족기록화
(4) 전시와 국제 교류 ㅤ
III. 한국미술의 정체성 찾기 : 1975-1990
(1)단색화와 민중미술
1. 단색화
2. 민중미술
(2) 동양화에서 한국화로 ㅤ
(3) 포스트모더니즘과 이미지의 복귀 ㅤ
– 포스트모더니즘 논의와 서술적 이미지
– 백남준과 미디어 아트
(4) 공예, 공공미술과 건축 ㅤ
(5) 전시와 국제 교류
IV. 새로운 문화 환경과 글로벌리즘 : 1990년 이후
(1) 글로벌 세대
– 기억과 시간
– 동시대를 바라보다
– 유목민적인 문화 이동
– 유토피아의 꿈
– 뉴미디어 시대의 텍스트
(2) 공공미술과 건축 ㅤ
(2) 전시와 국제 교류 ㅤ
V. 북한의 미술
(1) 해방 이후의 북한미술 ㅤ
(2) 1966년 이후 주체미술과 조선화 ㅤ
(3) 집체화와 집체조각 ㅤ
(4) 1990년대 이후
목차를 죽 훑어보면, 이른바 한국 현대미술이라는 ‘이야기’의 줄거리가 그려지나요? 어쩌면, 한국 현대미술은 (‘제1세계’가 아닌 다른 많은 지역/국가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이야기를 쌓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급격한 외형적 성장으로 물리적 인프라가 커진 상태에서, 물리적 인프라의 ‘정신’ 혹은 ‘소프트웨어’에 해당하는 부분들을 여전히 채워나가려는 노력이 이뤄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또한, 현대미술 혹은 동시대미술은 그 무엇보다 급진적인 스타일과 내용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둘러싼 제도와 기반 구조는 다른 그 어떤 영역보다 느리게 움직이기도 하고요.
한편, 한국 현대미술이라는 이 이야기에는 수많은 잊혀진 이름들이 존재합니다. 예컨대:
1929년에 예일대학교 미술대학 장학금으로 유럽 미술연구를 떠나 약 1년간 파리에서 제작생활을 하였다. 이 시기 서울에서 파리로 유학을 가 있던 여류 서양화가 백남순(白南舜)과 만나 결혼을 하였고, 함께 파리의 살롱 도톤느(Salon d’Automne) 등에 출품하여 입선하였다.1930년백남순을 동반하고 서울로 돌아와 부부유화가작품전을 가진 뒤 국내에서의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서화협회전람회와 1934년의 목일회(牧日會) 동인전 및 1937년의 목시회(牧時會) 동인전 등에 부부가 함께 참가하였다.현재 남한에 전하는 작품은 1930년 귀국 직전에 파리에서 그린 독특한 필치와 세련된 색채구사의 「에르블레 풍경」(국립현대미술관 소장)과 1940년에 그린 「금강산 풍경」 뿐이고 최근 연필화 「십자가의 상」(1929)이 확인되어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이는 1931년부터 평안북도 정주의 오산학교에서 미술과 영어교사로 재직하다 광복 직후에 북한의 공산화 추세를 피하여 남한으로 탈출할 때 그 동안의 작품들을 모두 두고 왔기 때문이다.서울에 정착해서는 미군 군정장관 고문을 지냈고, 정부 수립 후에는 서울세관장을 역임하였다. 새로이 화가로서의 활동을 보이려 할 때 6·25전쟁이 일어나 남침 공산군 기관에 연행된 뒤 생사불명이 되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임용련(任用璉))] (🌏링크)
[1945년 이후 한국 현대미술]의 한 부분에 스치듯 언급되는 임용련의 삶을 짧게 정리한 문단입니다. 굳이 임용련이 아니더라도, 또 다른 수 많은 사람들이 언급되지 못하거나 주목받지 못한 채 시간의 물결 너머로 지나가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남은 것은 꼼꼼한 역사가들이 과거의 흔적을 그러모아 다시 쌓은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아야 하는 걸까요? 이야기를 전하는 화자(narrator)의 목소리의 어조까지 생각하며, 심지어 메타(meta)적으로 이 이야기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도 있을까요?
“예술 아.만.보”는 비단 ‘배우신 서양분들’에게만 해당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의도와 관계 없이 특정한 시대에 태어난 개인이고, 이것은 미술 작가들 역시 마찬가지이며, 따라서 미술가들의 삶과 미술사를 살펴보는 일은 필연적으로 더 큰 차원의 역사의 흐름을 수반합니다.
(여기까지 박재용의 노트. 뒤이어 송고은의 노트로 이어집니다.
“ 내가 스물두 살 때였다. 그때는 일본이 우리 나라를 보호국으로 만든지 이 년이 되었고, 필경 합병의 욕을 당하게 되기 삼년 전이었다. (…) 무엇을 하려고 하여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것저것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청산하여 버리고 그림의 세계와 주국酒國에로 갈 길을 정했다. ”
– 오광수, [한국현대미술사], 26쪽
미술’, ‘서양화’/ ‘동양화’ 라는 구분, ‘한국성’ 자의식은 언제 생겨나게 되었을까요? 오늘은 <1945년 이후 한국 현대미술>이라는 책을 통해 한국 미술의 기원과 흐름을 알아보려고 합니다.
참조:
권영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의 추상 아카데미즘, 한국근현대미술사학, 2018
김경연, 《해방 이후부터 1970년대 동양화: 전통의 계승 혹은 전통과의 대결》, 2017
1940년대 후반의 동양화:
민족미술과 민주주의 미술의 모색 해방 이후 새로운 독립국가의 미술을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이념 대립과 조직의 이합집산이 거듭되었다.
미술계의 일반적인 흐름과 마찬가지로 동양화단에서도 민족미술의 수립과 이를 위한 ‘식민 잔재 청산’은 좌익과 우익 그리고 중도파 모두에게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그러나 과연 청산해야 할 식민 지배의 잔재가 무엇인지 그리고 민족미술로서 동양화의 진로와 어떻게 결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입장에서 갈등을 빚었다.
특히 식민지 시대 ‘동양화와 서양화’라는 구도 속에서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동양화는 전통 서화를 계승하는 장르로 규정되어 왔기에, 계승해야 할 전통의 성격 등을 논의하는 ‘전통론’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조국 근대화, 민족주의 전통의 수립:
1970년대 한국 사회는 1960년대 이래 전투적으로 질주해 온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고도성장의 결실을 맺으면서 뚜렷한 변화의 시대를 맞고 있었다. 1961년 5.16군사정변으로 집권한 박정희 정부는 국가 재건을
위해 수출 진흥에 전력 질주할 것을 선언하고 1962년부터 5개년 단위의 경제개발계획에 착수했으며, ‘잘살아 보세’ 정신으로 허리띠를 졸라맨 노동자들이 정부의 강력한 수출 정책에 따라 밤낮없이 일한 결과 제1차, 제2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추진된 1960년대 한국 경제는 연평균 9퍼센트에 달하는 고도성장을 달성했다.
이러한 가운데 1960년대 본격적인 서구식 산업화에 돌입하며 하루빨리 떨쳐 내야 할 구습으로 치부되었던 ‘옛것’이 소중히 간직해야 할 아름다운 ‘전통’으로 복귀했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은 대통령 중심의 강력한 국가주의 체제를 수립하면서 각종 문화 예술 제도를 정비하고 여러 전통문화 정책을 시행했다.
한국미술의 현대화, 모노크롬 회화 등장
1970년대 한국미술에서는 추상이 다시 한번 시대의 과제로 부상했다. 전후 자유 진영의 한국에서 추상은 현대의 동의어였고, 한국 현대미술의 수립은 ‘조국 근대화’만큼이나 의심의 여지없는 미술 영역의 당면 과제였다. 추상으로 수행된 전후 한국의 현대미술은 1950년대 말의 앵포르멜과 1960년대 말의 기하추상이 있었으며 그 뒤를 이어 세 번째로 1970년대 중반 백색의 전면 추상회화가 등장했다. 흔히 ‘모노크롬 회화’로 불린 1970년대의 추상은 세계 현대미술에의 참여와 한국적인 것의 모색이라는 양립적 모토를 내세우고 있었다. 작품에 있어서는 백색 혹은 절제된 무채색으로 민족적 정체성을 대변하고, 무위의 반복적 행위로 회화의 평면성을 검증하며, 종국에는 회화를 화가 개인의 내면적 수양을 위한 장으로 삼는 것이 특징이었다.
이우환: “호흡을 가다듬고 신체로 리듬을 느끼면서 캔버스 어딘가에 붓을 떨구는” 일필일획의 순간을 반복한다.
박서보: “주문을 외듯, 참선을 행하듯, 한없이 반복한다는 짓은 탈아의 경지에 들어서는, 또는 나를 비우는 행위의 반복이지 형식의 반복만은 아니”라고 했다.”
백색 모노크롬은 가장 한국적인 것의 성취라는 평가와 함께 1970년대를 대표하는 미술로 기록되었으나 이에 대한 비판도 모노크롬 회화가 구체화될 무렵부터 제기되었다. 미술의 사회적 기여와 현실 인식을 강조하는 미술평론을 펼친 김윤수는 1975년 광복 30주년을 기념하여 해방 이후 한국미술을 논하면서 전후 한국미술의 지배적 현상인 추상을 현실도피적인 예술지상주의라고 논박했다. 국전의 신변잡기적 사실주의 화풍에 도전하여 식민 잔재 청산을 주장한 것이 전후 추상회화의 의의이나 이는 명목상 ‘전위’에 그쳤으며 공허한 개인주의와 예술의 자율성 논리에 빠져 급속히 아카데미즘화되는 것을 피하지 못했다고 보았다. 1970년대 중반에 구체화된 모노크롬 회화는 이후 여러 엇갈리는 평가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발전하며 2000년대 들어 그 의미가 재조명되었다. 특히 2010년대에는 해외미술 시장에서 작품 가격이 폭등하며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성과로 주목받았다.
1970년대 모노크롬 화가들이 열망하던 한국미술의 국제화가 40여 년 뒤에 실현된 셈이다. 이때를 전후하여 기존의 ‘모노크롬’이라는 명칭 대신 ‘단색화’라는 한국어 명칭과 ‘Dansaekhwa’라는 영문 표기를 사용하자는 제안이 있었다. 1970년대 백색 모노크롬이 산업화 시대 한국미술의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한다면, 2010년대 고가의 판매 기록으로 부활한 단색화는 세계화된 미술 시장의 매력적인 문화 상품으로 거듭났다.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염두에 두고, 책 전반에 대한 생각/인상, 인상적이었던 부분, 읽으며 궁금했던 부분들을 두루 이야기 나눈 뒤 각자의 독서노트를 읽고 생각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 현대(동시대) 미술은 언제, 어디를 기준으로 구분해야 할까? 혹은 구분되고 있을까?
- 내가 생각하는 현대미술의 전형적인 이미지가 있다면…?
- 미술에 대해서,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나요?
이 책을 읽으며 영화<미드나잇 인 파리>가 떠올랐다. 지금은 이미 그들의 최고의 작품으로만 언급되는 작가들 또한 겪어야 했던 젊은 시절의 고민이 있었다는 것과 그 시대에 그들을 둘러싼 공기를 느낄 수 있었다.
– ㅇOO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려는 미술계의 치열한 몸부림’ 이것이 이 책을 읽은 소감이 될 듯 하다.
– ㅂOO
한국의 미술이 미래에는 어떤식으로 흘러갈지, 어떤 정체성을 강화해갈지 궁금해진다. 1945년 처럼 특정 시점 이후로 한국 미술을 한번 정리하게 된다면 내 생애주기에 한번은 그 시점이 있지 않을까?
– COO
어느 한 작가의 작품 안에는 그 시대와 그 사람의 시간이 담겨 있다. 시대. 시간. 책을 읽는 동안 이 두 단어를 자꾸 되새김했다.
– ㅂOO
작가가 구현한 세계, 평단이 부여한 의미, 소비자와 관람객이 찾아낸 가치. 다르다 해도 사실 크게 문제될 것 없지만,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면 행복감이 더 커질 수도 있을 터인데,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나만의 눈과 마음으로 한국 근현대 미술을 읽어낼 수 있는 기본 목차가 되어줄 듯 하다.
– COO
60~70년대의 우리나라 현대미술이 놀라웠습니다. 책에 나와 있는 그 시대의 작품을 보면 현재 나왔다고 해도 믿을 만큼 제 눈에는 세련된 작품들이 많았는데 그 당시에는 얼마나 혁신적인 시도이고, 시대를 앞선 걸까 싶습니다.
– OOㅇ
“작가는 시대를 만나 어떤 작품을 만드는가.”
특히 식민지 시대와 한국전쟁이라는 큰 시대의 풍파를 이기지 못하고 떠내려 갔던 이쾌대라는 작가에 관심이 갔다. …책에서는 좌파 지식인인 형 이여성의 월북으로 선택했으리라고 짐작된다고 했지만,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이쾌대 선생과 같이 수용소 생활을 했던 화가 이주영 유족의 증언은 이와 다르다. 이쾌대는 좌익활동을 했던 전력이 있는 상황에서 남한에 남을 경우 살아남을 수도 없다는 두려움 때문에 가족을 남한에 남겨두고 월북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 ㅇOO
(2019년도 <광장: 미술과 사회> 전시 관람기) “한국 최고 미술관의 이유 있는 ‘썰렁함’ – 국립현대미술관 50주년 특별전 ‘광장’, 2030 시민 3명과 돌아보니…”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191115/98369909/1
격동의 한국사를 정리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듯, 분명 한국 미술사의 역사를 정리하는 것 역시쉬운 일이 아닐테다. … 어느 한 순간에 뚝 하고 떨어진 낭만적인 발전이 아닌, 여러 작가의 고민과 서로의 영향 속에서 조금씩 한 발짝 나아간 결과다.
– ㅇHㅇ
자연과학이나 의학 분야는 논문을 통해, 유학이나 연수를 통해 교류를 하고 있는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했다. 미술도 그렇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잡지를 통해, 문화원을 통해, 유학 가거나 비엔날레 등의 전시를 통해 교류한다는 점이 신기했다.
… 시대의 흐름을 만드는 사람.
– 시대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흐름을 만드는 사람.
– 시대의 흐름은 신경쓰지 않으며 흐름을 만드는 사람.
예술은 오리지널을 만드는 것 같다. 김치같은 오리지널. 부대찌게 같은 오리지널. 짜장면같은 오리지널. 혹은 세상에 없던 무엇.
– JOO
“완독의 성취감”
…책을 다 읽고 나니 제목의 한 글자 한 글자가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1945년’ ‘이후’ ‘한국’ ‘현대’ 미술. …책을 읽고 난 후 머릿속에 카테고리별 폴더가 생긴 느낌이었다. 작가 ‘개인’에 초점을 둔 감상에서 그 개인이 속한 국가, 지역, 성별, 역사 등 ‘사회’에도 추점을 둘 수 있는…
– KOO
…어쩌면 단색화는 혼란한 상황에서 벗어나 하나의 통일되고 이상적인 상태를 꿈꾸는 작가의 바램이 예술적으로 투영된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 ㅇOO
(파리 여행에서의 워킹 투어 경험담과 이후 <야수파 걸작전> 감상담에 이어서…) 작품이나 그 시대에 얽힌 배경과 이야기를 알고 감상하는 것과 모르고 감상하는 것의 차이를 제대로 느끼게 해준 경험이었다.
– ㅇOO
“아름다운 것을 보기 위한 훈련”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동안 약간은 너무나 이념적이고 약간은 진부하다고 생각했던 민중미술에 대한 챕터였다. 어감에서 뿜어져나오는 식상함이 아니라 실제로는 꽤나 창의적이고 유쾌한 작품들을 접할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 ㅈOO
한국의 현대미술은 미술의 내적 논리에 따라 형성되었다기보다는 시대상황의 변화에 깊이 영향을 받았다. …!
– ㄱOO
(미술가의 작업실에 다녀온 이야기와 함께) 어쩌면 작가는 이곳에서 ‘고독해서’ 충분히 자유로운 것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함부로 간섭하고, 충고하며, 제멋대로 점수를 매기는 세상으로부터 얼마간은 유리되어 있어야, 자신 앞의 깊은 곳을 들여댜 볼 수 있었으리라.
… 숨을 한껏 깊이 들이쉬고 잠수해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는 법이다. 어쩌면 예술가들은, 깊은 심해의 압력 속에서 자유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아닐까. 때문에 ‘고립’을 연료로 움직이는 이들이 아닐까.
– OO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