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아냥, [사물의 뒷모습] (안규철. 현대문학, 2021)

고은의 노트

“내가 쓰고 있는 말은 어떤 상태인가. 그 말들은 아직 유효한가, 아니면 유효기간이 이미 지난 것을 나만 모르고 있는가. 서늘한 기운이 목덜미를 쓱 훑고 지나가는 가을 아침이다.” (139)

이 대목을 읽으며 이 책의 말들 중에 가장 솔직한 ‘작가의 말’이 아닌가 생각했다. 무언가를 이루었다고 보이는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가기 급급했던 시절 ‘자부심’으로 범벅된 지난 말들을 돌이켜보며 자신의 얼굴을 감싸는 것을 우리는 종종 본다. 이제 ‘무언가 이룬것 처럼 보이는’ 그 역시 이런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냉철하게 진격하는 행보가 마치 ‘독일군 장교’같다고 하던 그도 이제 이런 고민을 할 때가 된 것일까?

그는 나의 20살 현실에서 만난 최초의 현대미술가였다. 정물화나 석고 데생 같은 입시미술에 갇혀있던 내가 그가 먼지로 그렸다는 드로잉을 전시장에서 보았을때의 신선한 충격은 여전히 생생하다. 지금은 사라진 ‘로댕미술관’에서 였는데, 당시 새로산 디.카(니콘 쿨픽스4800)로 열심히 전시장 주변을 찍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에 나의 일방적인 조우의 순간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청춘과 잉여>라는 전시에서 였다. 무슨 이유인지 나는 전시 설치 즈음 공간을 방문했는데 한 겨울에 영등포의 빈 건물은 매섭게 추웠다. 추위에 떨고 있는 와중에 회색의 곱슬머리의 남자가 페인트가 채 마르지 않은 전시장에 그림 몇 점과 날개 모양의 가방을 들고와 두고 가는 것을 보았다. 안규철 작가였다. 당시 전시는 기성VS신성 이라는 양대 구도의 카운트 매치 형식으로 기획 되었는데, 뻔한 것 같아 보이는 구조지만 그럼에도 그가 젊은 작가들과 함께 전시에 참여한다는 것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어쩌면 그의 ‘유효한 말’에 대한 고민은 이때부터 의식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후에는 내가 일했던 전시 공간에서, 최근에는 동네 산책 길에 종종 마주하기도한다. 나와 같이 그와의 일방적인 조우에 대한 기억을 가진 이가 많을 것이다. 그 수가 많아질 수록 그의 말에 대한 고민은 더 깊어 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남의 마당을 무단으로 가로지르는 박새의 초초함’으로 또 다른 말을 써내려간다. 이것이 예술가의 영원한 업이자 소명일까?

“미술가들이 은퇴하지 않는 것을 비난할 이유는 없다. 모두들 나름의 할 일이 남았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 날이 이미 밝았는데 누군가가 끄는 걸 잊어서 불이 켜있는 가로등처럼 어색한 모습으로 미술계라는 곳에서 서성거리고 싶지 앟다. 그러니 이제는 하루하루 내가 무엇을 하기에 아직 은퇴를 하지 않는지 냉정하게 따져봐야하는 것이다.” (150-151)

나는 그와 같은 고민을 전혀 염두하지 않아도 되지만, 당돌한 것쯤으로 치부되던 나의 질문이 누군가의 마음에 조금은 남게 된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종종 나의 말들도 쿨하게 헤어지지 못한 전남친 같이 피하고 싶을 때가 있다. 여러분의 그의 말에서 또 자신의 말에서 요즘 어떤 것을 느끼고 계신가요? 예술가의 말은 그들의 작품 감상에 얼만큼의 영향을 줄까요?

재용의 노트

최근 한 전시에 ‘작가’로 참여하며 생각한 몇 가지와, 안규철의 작업에 대한 (것이 아닐지도 모르는) 몇 가지 정보과 생각.

#1.
참여 중인 전시는 1970년대에 개관해 운영중인 ‘삼일로 창고극장’에서 진행 중인 “불필요한 극장이 되는 법”(9월 1일~12일)이다. 나는 이 전시의 한 섹션인 ‘리딩룸’에 정지돈, 이홍도와 함께 텍스트 기반의 작품을 제출했다. 정확히는, 삼십여 장으로 이뤄진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아이패드와 위키 형식으로 열람할 수 있도록 했다.

작업의 주된 내용은 ‘극장’이라는 단어를 둘러싼 여러 시선이다. 예컨대 수백 년 동안 인쇄물 형태로 발간된 거의 모든 영미권의 텍스트를 담고 있는 corpus에서 ‘극장’이라는 단어를 검색할 경우, 이 단어가 일반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건 생각보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점이랄지, 70년대, 심지어 80년대까지도 많은 사람에게 ‘극장’ 혹은 ‘연극’이란 ‘민족문화의 창달’을 위한 정교한 도구에 다름 아니었다는 것. 서울의 국립극장은 평양에 국립극장이 개관한 지 1년 뒤 개관되었고, 첫 작품은 신라의 삼국 ‘통일’을 다룬 <원술랑>이었다는 사실. 광주에서 5.18이 일어나고서 1년 뒤 치러진 ‘국풍 81’ 축제는 정부 주도의 공연 문화에 반발하며 시위 현장에서 횡행하던 마당극을 적극 끌어들이려 했다는 점. 연예인들의 공연으로 물든 대학교들의 ‘대동제’의 출발점이 사실은 ‘오락에 물든’ 관 주도의 대학교 축제를 ‘민족 문화’ 위주로 바꾸려는 시도였다는 점. 등등. 무엇보다, 이 모든 것들이 불과 몇십 년 사이에 일어난 변화라는 사실.

그러니 누군가 80년대, 90년대, 2000년대를 걸쳐 지금 이 순간에도 ‘연극’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면, 그가 생각하는 ‘극장’ 혹은 ‘연극’은 무엇인지, 지금 그가 행하고 있는 ‘동시대 극장'(혹은 연극)은 또 무엇인지 반드시 확인을 해야 하지 않을까.

바꿔 말하면, (예술) 장르는 주기적으로 재정의되어야 한다. 혹은, 같은 시기에 존재하는 이들이 과연 ‘같은 페이지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지 점검해야 한다. 이런 점은 미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물론,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고 해서 모든 생각이 동일해야 하는 건 아니다.

#2.
전세계적으로 통화량이 급증하는 지금,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제1세계 위주로 가능했던)’ 정규직으로 정년 은퇴한 뒤 남은 여생을 투자 수익과 연금으로 편하게 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아마도 우리는 무한히 늘어난 통화량으로 인해 평가절하된 실물경제 속에서 허우적 거리며 늦춰진 은퇴와 줄어든 연금으로 어떻게든 살아보기 위해 애써야 할 것이다. 물론, 지금 당장 일어날 일은 아니다.

마치 탄광 속 카나리아처럼, 2008년 금융위기를 앞두고 ‘블루칩 아티스트’에 대한 열풍이 불며 미술계가 그 어느때보다 ‘호황’을 그렸던 것처럼, 코로나19로 모두가 만만찮은 시간을 보내면서도 더 급격해진 자산 축적의 양극화가 일어나고 있는 2021년에 다시 한 번 ‘미술 호황’이 시작되고 있다는 건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여기서 (현대) 미술은 무엇일까. 전시를 만드는 큐레이터, 작품을 만드는 작가가 무엇을 생각하든, 혹은 기존의 활동을 이어가든, 이건 그들보다 더 큰 ‘sea change’가 아닐 수 없다(고 본다).

삶의 방향은 자신이 주체적으로 어떤 선택을 내리는지보다 자신에게 흘러오는 선택 가운데 무엇을 고르는지에 따라 바뀐다고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창작자 혹은 작업자들에게 다가오게 될 선택지는 무엇일까? 올 봄 매일경제신문 문화면의 기사 제목과 내용을 잠시 빌려오면:

“집 주식 판 돈 싸들고 달려옵니다”…BTS도 찜한 투자처는?

최근 새로 등장한 신규 컬렉터들이 가격 상승 여지가 높은 물방울 화백 김창열, 추상화 거장 이우환, 단색화 대가 박서보·하종현, 신체드로잉 화가 이건용 등 블루칩 작가들과 주목받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싹쓸이하고 있다. 저명한 작가의 작품은 금과 달러화 같은 안전자산으로 인식되며, 부자들은 불황에 연연하지 않고 미술품에 투자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1~5월 코로나19로 오프라인 경매가 중단됐을 때도 크리스티 경매사의 VIP 컬렉터를 위한 프라이빗 세일 판매액은 오히려 전년보다 120% 증가했다.

https://www.mk.co.kr/news/culture/view/2021/03/217135/

여기서 현대(동시대) 미술은 무엇일까?

#3.
안규철은 80년부터 7년 가량 미술전문지 <계간미술>에서 기자로 일한 바 있다. 이와 동시에 ‘현실과 발언’의 일원으로 활동하였으며, 독일 유학을 다녀온 뒤 본격적으로 ‘작가’로서의 활동을 이어나갔다.



그의 작업에 대한 개인적 기억은 지금은 별다른 자료 없이 사라지고 만 (‘아라리오 뮤지엄’ 자리에 있던) 원서동 공간화랑에서 2009년에 열린 개인전 <2.6평방미터의 집>을 통해서다. 전시에서 안규철은 말 그대로 2.6평방미터 면적의 ‘집’과 열 개 가량의 집 관련 모형과 드로잉을 선보였다. 일종의 ‘아마추어 건축물’을 선보인 것인데, 잠시 작가의 말을 빌면:

“요즘 사회 문제가 된 철거, 재개발 사태의 본질은 생존 공간과 욕망의 문제인데, 작가들 사이에서는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어요. 이런 집을 제안한다고 거창한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는 건 아니겠지만, 주거는 결국 우리 사회가 조장한 욕망의 문제이고, 그건 예술가가 충분히 접근해볼만한 소재라는 생각입니다.”

2009년 안규철의 작업을 접했을 때 느꼈던 ‘감정’은 이질감이었다. (여러모로 ‘안전하다’고 밖에는 할 수 없는 환경을 거의 벗어난 적 없는 입장에서 조심스러운 발언이지만,) 손에 닿는 현실에 한 겹 정도 막이 씌워진 낭만적 메시지를 마주한 느낌이랄까. 이명박 집권 첫 해, 건축 사무소 지하에 마련된 전시장에서 이런 메시지를 접했을 때 말이다.

“나는 이 작업이 모든 개인에게 던져지는 보편적인 질문이 되기를 바란다. 소박한 책상 하나, 바람이 불고 해가 지고 별이 뜨는 것을 무심히 바라볼 수 있는 창문 하나, 몸을 눕힐 수 있는 침대 하나면 충분한, 최소화된 삶을 공간을 통해 구현하는 데서 의미를 찾고자 한다. 은둔자, 기도하는 사람, 참선 수행하는 사람, 자신만의 공간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 작은 방들을 제안한다. 꿈꾸는 방, 시공간을 넘어 여행하는 방, 현실로부터 가상으로 넘어가기 위한 비상대피소. 그것은 요람이면서 무덤이기도 하다.”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90331019005

한편, 안규철의 전시가 열리던 시기엔 아트선재센터에서도 ‘집’을 소재로 한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디자이너 이정혜의 <주거연습>이라는 전시로, 다음 경향신문 기사에서 이정혜, 안규철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 “2.6㎡ 1인용 주택으로 아파트 욕망에 맞서다

현실에 대한 관여/참여에 앞선 작업의 메시지는 시간을 역행해 만들어졌던 걸까. 이로부터 약 7년 뒤인 2016년, 안규철은 프로젝트를 위해 협업했던 한남동 ‘테이크아웃’ 드로잉이 새 건물주 싸이에게 퇴거 통보를 받은 상황에서 강제 퇴거를 거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는 자리에 참여하게 된다.

#4.
1997년 11월 8일, 현대미술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미술사가 김정희는 “국내 젊은 작가들에게서 나타난 수용의 문제”를 발표한다. 이 발표는 여러 일간지에 소개될 정도의 반향을 일으키는데, 주요한 내용은 ‘독일 유학’을 한 작가들의 작업에서 “외관상 외국 작가 작품과의 유사성을 어렵지 않게 발견하게 되는데, 이것은… 전략적 차용을 통해서도 아니고 파편적으로 나온 이미지와 양식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한 작가가 다른 작가의 작품 개념이나 형식을 약간 변형하거나 절충하여, 또는 다른 작의 고유 아이디어의 산물인 특이한 사물이나 형태를 약간 변형하여 자신의 작품으로 보여주므로써 생겨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안규철을 비롯한 여러 작가의 작업이 해당 논문의 분석 대상이 되었고, 안규철은 이에 대해 “내 작품의 외국 작품 차용시비에 관한 나의 입장”이라는 글로 반론을 제기했다. 글에서 안규철은 “오브제 미술이라는 것은 비유하자면 시를 짓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시인이 일상의 언어로부터 골라낸 단어들을 조합해 일상에서는 없었던 새로운 의미와 느낌을 만들어내듯이, 일상적인 기물을 선택하고 조합해서 우리는 일상에서 없었던 새로운 의미와 새로운 체험의 장을 만들 수 있다. … 이미지의 수많은 가능성들을 미술사의 새장 속에 몰아넣고 미술의 한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이러한 터무니없는 논리가 어떻게 미술사학 전공자에서 돌출되었을까?”

2021년, 미술 종사자이되 미술사가는 아닌 입장에서 김정희의 논문을 정독하며 많은 생각이 든다. 김정희의 논문 결론부를 조금 인용해본다:

다시 말해서, 앞서 살펴보았듯이 한 미술가가 다른 작가의 작품을 표피적으로 형식과 아이디어를 차용하게 되면 그 작가가 처한 공간과 시대의 특수성과, 나아가서는 작가 자신의 성격과 현존 상태를 드러내는 작품이 태어나지 않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김정희 152)

따라서 미술가에게는 오히려 어떤 미술이나 미술가로부터의 영향이나 그것의 참조에서 벗어나 있음을 주장하기 보다는 이러한 유산을 자기화하는 노력이 요청된다. (김정희 153)

1997년에 나는 이러한 논의와는 거리가 먼 어린이였으니, 당시 이를 둘러싼 논의, 토론, 혹은 논쟁이 어떻게 이뤄졌는지는 지금으로선 알기 어렵다. 그것은 어렴풋한 단서처럼 흐릿하게 다가올 뿐이다.

생각할 거리

시즌 첫 모임에서의 질문들을 다시 생각하며:

  • 책에서 혹은 작가의 작업, 활동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이 있다면?
  • 지금, 당신이 생각하는 현대 (동시대) 미술은 무엇인지? 혹은, 미술은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 것 같다고 보는지?
  • (위 질문과 비슷하지만) 미술은(당신에게, 우리에게)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독서노트

남겨둔 것들은 낡아서 버려질지라도 떼어내서 버려지는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냥 내 눈에 보이지 않게 숨겨둘 뿐이다. 이에 연결하여 숨막히도록 저릿한 통찰은 매끄러운 표면을 위한 연마가 미세먼지를 만든다는 대목이었다. 매끄럽게 만들기 위해 연마하는 것은 시각적인 만족감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 시각적인 만족감도 촉각적인 만족감을 기대하게 만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OㅇO

예술의 이름으로 관습과 상식의 경계를 넘어 가능한 멀리까지 가보려는 새로운 시도들은 전율과 희열을 느끼게 한다. 동시에 반성이 든다. 난 얼마나 새로운가.
– ㅈOO

쉽게 지나칠 수도 있는 사물들을 보며 그 너머를 생각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경험이 쌓여야 하는 걸까, 라는 생각에 참 멋진 사람이구나 싶었고, 지금의 나는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도 돌아보았다. 
– POO

<사물의 뒷모습>은 남은 것보다 버려지는 것,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것, 말하는 것보다 침묵하는 것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책이다.
– BOO

에드워드 양이 말하는 영화는 양양이 찍는 사람들의 뒷모습 같은 것이다. 나에게 뒷통수가 존재한다는 건 알고 사람의 뒷모습 자체가 새롭거나 의미있는 일은 전혀 아니지만, 누군가가 그 뒤통수를 찍어서 나에게 사진으로 건네 준다면 그것은 특별한, 어떻게 보면 특별보다는 특이에 가까운 비일상적 순간이 된다.
– OOㅈ

전체적으로는 노회한 예술가의 삶을 스스로 뒤돌아보는 – 처음 제목만 보았을때는 – 책이 아닐까 했는데, 오히려 스스로의 삶을 한켠 물러서서 보는 내용이었습니다.
– LOO

강남미술학원…강사로 나온 20대 중반의 학생은 안규철 작가에 대해 학생들에게 심심함과 순수한 사고와 이야기들을 비웃고 예술적 심오함과 매력적인 요소가 없음으로 판단하여 이야기했다. …어쩌면 심심하고, 당연한 이야기를 무척 아름답고 감명적이게 쓴 글들인 것처럼 느끼지 않기 위해 마치 잔소리를 유심히 공감하며 듣는 듯 노력해야 했다. …왜 그 강사들은 친절함을 찌질함으로 바라보았는지 의문이다.
– COO

(책의 내용 중 과학적 개념에 대한 오류를 지적한 뒤) 이렇게 쓰고 보니 너무나 꼬장스럽게 책을 읽었다. …괜히 읽으면서 목에 가시가 걸리듯 넘어가지 못했다.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단순히 글 뿐만은 아니다. …어떤 원리가 있을지 머리를 꼭 굴려보게 된다. 어쩌면 이건 ‘과학자의 시각’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이번 책은 재미있었다. …과학자의 차곡차곡이 아닌 예술가의 팔랑팔랑.
– SOO

작가는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작품으로 표현할텐데 그것들은 멋지거나 충격적이거나 때로는 기발하거나 직관적이거나 시선을 끌거나 여운을 남긴다. 안규철의 간결하지만 가볍지 않은 다양한 이야기들은 작품의 출발인 예술가의 관찰을 통한 깨달음이나 사건에 대한 통찰, 삶에 대한 사유들을 친절하게 표현한 방식이었다. 유난히 친숙한 문체 때문인지 보아온 현대 미술의 표현 방식 때문인지 친절하게 느껴졌다. (!)
– GOO


다음 시즌 (2021년 10월~2022년 1월) 첫 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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