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아냥, [사진의 이해]

위 동영상: Aperture Foundation에서 열린 Understanding a Photograph 출간 기념 강연

Understanding “a” Photograph

책의 영어 제목에 쓰인 “사진”이 “사진 일반”을 뜻하는 “Photography”가 아닌 개별적인 한 장의 사진, 즉 “a” photograph임에 유의하며, 2021년 5~9월의 미술 책읽기 모임을 마무리하는 [사진의 이해] 모임에 임했으면 합니다.

송고은의 노트: 가상현실에 맞서는 사진

“이 작품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사회적 권리를 알고, 주장할 수 있게 도움 혹은 용기를 주는가?”

그 시대의 영향이 있겠지만, 한때 여성의 누드를 그리며 살고 싶어 했던 예술학도 치고는 다분히 정치적 성향의 작품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이런 그의 글을 읽으며 지난 초여름 보았던 전시가 떠올랐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수해를 입은 필름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홍진훤은 녹아내린 필름을 복원하고, 그  과정을 기록하기로 한다. ‘민족사진연구회’가 30년 전 ‘민주화운동’의 현장을 찍은 A컷 필름 북으로 추정되는 이 기록물은, 당시의 현장, 기록자의 시선, 현재의 쓸모를 재단하는 판도라의 상자가 될 수도 있다.”
-경향신문, 김지연의 기억소환, “기억은 녹아내리고” 2021.07.03 03:00 –  https://m.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107030300025/amp

위 사진 출처:https://m.blog.daum.net/spide7/20

여전히 노동운동은 절실하지만, 30년 전의 광기와 뜨거움은 이제 흙탕물로 번져진 필름처럼 늘러붙은 자국으로만 남아있는 것 같다. 영화는 사진의 시선을 쫒으며 판도라의 상자를 열지만, 거기에는 치열했던 역사의 현장과 사건이 아닌 한 때 청춘이었던 그들의 일상만이 남겨져 있음을 확인하며 끝을 맺는다. 

사진은 희대의 사건과 내가 방금 먹은 것을 같은 노력으로 보상해준다. 그래서 ‘사진찍기’는 회화나 조각 만들기 보다 우리에게 훨씬 친절하게 느껴지며, 사진이 분명한 예술 매체임을 역설한 ‘조금’ 학구적이었던 초기 사진예찬론자들의 주장 역시 넉넉하게 수용시킨다. 존 버거가 사진을 사랑했던 이유는 사진이 희소성의 가치를 비웃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사진보다 무한한 복제력을 가진 디지털 이미지 역시 희소성을 부과해 사고파는 오늘의 모습을 보았다면, 그리고 회화 다음으로 가장 잘 팔리는 예술품이 사진이라는 사실을 접하게 된다면 그 어떤 얼굴을 할지 문득 궁금해진다. 

책을 읽으며 AR과 VR의 시대에 고집스럽게 연출과 합성을 거부하는 일군의 사진가들 또한 떠올리게 되었다.

존 버거가 사진가에게 정언한 ‘그가 내릴 수 있는 유일한 결정은, 어떤 순간을 따로 떼어내 보여 줄 것인가 하는 것뿐이다.’(34p) 라는 말을 오늘날도 쉽게 놓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상의 ‘사진계’를 지켜내기 위한 결정과 개인의 예술성 사이에 커다란 모순을 일으키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순 없지만, 사진이 가진 매체성에 대한 진심은 느낄 수 있다. 그 진심을 향하는 마음에는 ‘사진에서 변모하는 것도 없다. 있는 것은 결정, 그리고 초점 뿐이다.’라는 문구를 오늘도 새길 것이다.  그것은 가상현실로 나아가기 위해 버둥거리는 오늘의 시간을 또한 그대로 포착하게 할 것이다.

박재용의 노트: ‘사진’의 이해

존 버거에 대한 파편적인 정보를 먼저 공유해야 할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만 버거로 부르고 다른 나라에서는 버저로 발음되는 영국 출신의 작가는 <지>(G)라는 소설로 1972년 부커상을 받은 뒤 수상 연설에서 그 상금이 카리브 지역을 착취하여 번 부커 재벌의 돈이라고 폭로하면서 그 반은 블랙팬서(흑인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설립된 무장 조직) 영국 지부에 기부하고, 나머지 반은 이주노동자를 연구해 3년 뒤에 낸 <제7의 인간> 집필을 위해 썼다. 그리고 “나의 유일한 조국, 그것은 말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영국을 떠나 후반생을 알프스 산자락 시골마을에 정착해 농사를 지으며 보냈다.” – “존 버거 “나의 유일한 조국은 말이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959840.html#csidx4710bfdf386428197423b4e889b86ac

“버거는 미술비평서 <다른 방식으로 보기>와 부커상 수상작인 소설 <G>로 유명하지만, 사실 10편이 넘는 소설은 물론 시집·희곡을 펴내고 수많은 비평과 에세이를 썼다. 특히 <다른 방식으로 보기>는 회화 등 시각예술을 보는 방식에 정치·사회적 관점을 적용함으로써 기존과 다른 새로운 ‘보는 법’을 제시, 현대미술 비평과 연구는 물론 광고 등 대중문화 분석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중략)

저널리스트이자 좌파적 문화활동 투사로 활약한 ‘성난 젊은이’ 시절, 유럽 전역을 다니며 비평가·작가로 왕성한 생산력을 발휘한 ‘여행하는 모더니스트’, 프랑스에서 저술과 농사를 지으며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 끊임없이 저항한 ‘이야기꾼’ 등 세 단계로 나눈다. 저자는 버거가 전쟁과 냉전, 68혁명, 신자유주의 등 격동의 시대에 ‘예술이란, 특히 좋은 예술이란 무엇인가’ ‘왜, 누구를 위해 글을 쓰는가’ 등을 늘 자문하며 자신의 신념에 따른 헌신적 삶을 살았다고 정리한다. 나아가 저자는 “그는 마침내 인본주의 좌파의 영적 길잡이, 양심의 수호자가 됐다”며 “그가 한 말이 옳지 않을 수 있지만 늘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 – 경향신문, “‘좌파의 영적 길잡이’ 존 버거의 궤적” https://www.khan.co.kr/culture/book/article/202001172044015#csidxfa3bb596a18ee518a27357701fcf8b0 

포스팅 첫머리에 첨부한 강연의 초입에 재미난 언급이 있다. (영미권을 기준으로) 20세기 후반, 미술과 관련한 수업 시간엔 존 버거의 “다르게 보는 법 Ways of Seeing” BBC 4부작이 필수 시청각 자료였다는 것이다.

그만큼 존 버거는 굳이 사진 뿐 아니라 미술, 시각 예술 전반을 바라보는 방식에 큰 영향력을 미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좌파의 영적 길잡이’라는 말을 붙인 위 경향신문 기사에서 다루고 있는 책 [우리 시대의 작가-존 버거의 생애]라는 책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쿠팡맨 배달인증 사진 속 ‘친절한 손’ 합성이었다” https://www.wikitree.co.kr/articles/341045

다시 한 번. 이 책은 ‘사진의 본질’을 종합적으로 다루는 개론서는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진의 이해”라는 제목이 조금 헷갈린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 책은 외려 ‘좌파의 영적 길잡이’로서의 존 버거가 사진 한 장 한 장을 통해, 혹은 사진가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가 바라보는 사진(혹은 예술)의 역할과 세상에 대한 시선을 공유하는 글 모음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버거의 글을 통해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전 세계적인 자산가치 버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2021년의 한국에서 ‘미술’은 ‘새로운 대중적 투자처’로 가장 크게 인식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와중에 ‘포착된 순간 너머에 존재하는 인간들에게 말을 거는’ 것으로서의 사진을 말하는 영원한 좌파, 존 버거의 말을 우리 자신에게 어떤 방식으로 비춰볼 수 있을까.

노순택, <얄읏한 공 the strAngeball 03>
“얄읏한 공 작업은 평택 팽성읍 대추리의 너른 들녘에 우뚝 솟은 흰 공 모양의 대형 구조물이 대체 무엇인가를 추적해 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작가는 원고지 100매 분량의 작업노트를 통해 주민 인터뷰, 주한미군사령부에 보낸 질의서, 검색엔진을 통한 국내외 자료수집, 군사전문가의 자문내용, 구조물의 재질과 용도를 서술해 나간다. 그리고 이 흰 공의 주위에서 삶을 영위해 온 늙은 농부들에게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환기시킨다.”
http://geonhi.com/korean/노순택-얄읏한-공-the-strangeball-2006/

함께 생각해볼 것

  1. 존 버거가 역설한 1960년대의 ‘사진에 대한 이해’와 오늘 당신이 이해하는 ‘사진’은 어떻게 다른가요? 당신이 생각하는 ‘사진’이란?
  2. 최근 찍은 사진(혹은 이미지) 가운데 함께 공유하고 싶은 것이 있나요? 그것에 대해 (존 버거의 표현처럼) 어떤 면에서 ‘보는 행위가 기록으로 남길 만한 가치가 있다고 결정’했나요?
  3. 존 버거에 따르면 ‘사진’이라는 이미지의 존재 이유는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 같습니다. 한때 ‘진실을 전하는 것’에 큰 가치가 있었다면, 지금 이 시대에 ‘사진’은 어떤 가치가 있을까요? (혹은 있어야 할까요?)

여러분의 독서 노트

지금의 기술은 사진과 회화를 구별하기 어려워졌다. 그래서 이제는 사진이라면 이거 사진이에요 라고 작가가 증언함으로 보장해야한다. 어쩌면 보정하지 않음도 보장해야한다.(…)구디 작가 혹은 전달자가 책임져야 하는 형식을 갖추게 되는 건 그 안에 담은 희생과 노력이 사실임을 주장하고 싶어하기 때문일 걸라 여겨진다. 아마도 존 버거가 사진을 투쟁의 무기로 여기는 건 이런 맥락이 아닐까 싶다.
– ㅇOO

‘매일같이 쏟아지는 이미지를 통해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분쟁지역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염려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여기와 그때 사이에 그들을 위한 사진이있다.
– ㅈoO

작가의 말대로 사진기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사진을 찍는 사람의 마음은 사진에 온전히 담긴다. 종군기자들 혹은 군인들이 직접 찍은 전시 사진을 보면 마음이 불편해지는 이유는, 사진에 담긴 참혹한 현실 때문이기도 하지만 침략하는 자가 침략당하는 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담겨 있기 때문인 것 같다.
– COㅇ

만약 나에게 누군가 사진의 의미를 묻는다면, 난 아마도 일상이요! 라고 답하겠지. 휴대폰으로 사진 촬영이 손쉽게 이루어지고, 지우고 다시 찍는 것 및 저장에 있어 크게 한계도 없다보니 사진은 내 삶을 참 즐겁게 해주는 것이면서도 그 자체에 굳이 특별함을 부여하진 않았던 것 같다. 
– ㅂOO

그 유명한 조앤 디디온의 <베들레헴을 향해 웅크리다>를 읽었을 때도 그렇고 그녀 만큼 유명한 존 버거의 책들을 읽을 때에도 ‘생각보다 별로 대단한 문장들이 아님’에 놀란다.(…)실제로 이 위대한 작가들의 문장은 훨씬 담백하고 건조했다는 이야기다. 이 글들의 훌륭함은 사람을 홀리는 문장이 아니라 그들이 관찰하고 묘사한 대상과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에 있었다. 
– ㄱOO

책에서는 사진이 특정 순간을 포착한 채로 남아 있는 까닭에 발생하는 ‘시간의 불연속성’을 자세히 이야기한다. 이미 한 장의 사진은 어느 때의 한 장면을 떼내어 보여주고 그것이 우리에게 도달하기까지의 시차때문에 불연속성을 갖는다. 사진과 보는 이 사이에 흐르는 루비콘강-시간의 불연속성-때문에 사진 한 장이 역사적 사실을 증명하며 사회구성원의 마음에 공명하기도 하고 또는 지극히 개인사적 잊지 못할 추억거리로 남기도 한다.
– ㅂOㅇ

존 버거는 프레임에 담긴 이미지와 찰나의 순간을 넘어 프레임에서 벗어난 장면과 긴 시간까지도 사진을 통해서 보았다. ‘사진들 한장 한장 사이로 삶이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장을 읽을 때 비로소 ‘사진의 이해’란 무엇인지 머릿속에 윤곽이 잡히는 듯했다.
– COㅇ

지난 23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찾은 노인들이 제1터미널 출국장에 앉아 뜨고 내리는 비행기를 바라보고 있다. 최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코로나 확산으로 경로당 등 공공 시설이 문을 닫으면서 공항을 찾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무료 지하철’을 타고 공항에 와서, 준비한 간식거리를 나눠 먹고 친구도 사귀며 더위를 피하고 있다. /장련성 기자

공짜 지하철에 에어컨 빵빵… 인천공항 놀러가는 어르신들
숨막히는 가마솥 더위 일주일째, 사람 살려~ 가축 살려~
“무료 지하철 타고, 친구도 불러… 편의시설 잘돼있어 좋다”
https://www.chosun.com/national/national_general/2021/07/26/JRYA647ZSZHJVD3AU32TKNUTMA/

사진은 과연 그 자체로서 ‘진실’을 보여줄 수 있을까. …취재기자로 일해오며, 내가 오랜 시간 답을 구하고자 한 질문이다. (중략) 여러 겹의 맥락이 복잡하게 교차하는 진실의 현장에선 오히려 사진이 ‘무력하기까지’하다는 사실을 비로소 순순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 ㅂOㅇ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에서 더 많은 것을 본다. (중략) 사진과 회화는 모두 모호하다. 그 모호함은 모두 정보의 부재에서 기인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정보 부재의 원인은 서로 다르다. 회화의 모호성은 작가의 의도에 기반해 있는 반면, 사진의 모호성은 작가의 의도 뿐만 아니라 불연속적 시간성에 기반해 있다. (중략) 따라서 제3자가 의도된 맥락을 부여하여 다른 목적으로 이용할 위험성에 놓여 있기도 하다. (중략) 동시대의 사진들은 점차 납작해진다.
– ㄱOO

“이 책을 읽고 폰 갤러리를 보니 좋은 사진을 찍으려고 노력한 적은 없지만 내가 찍은 사진…을 좋은 사진이라고 할 수 없었다.”
– COㅇ

사진은 명확성이라고 생각했는데, 모호함이 사진의 특성이라니. 사진을 찍는 순간과 사진을 보는 순간이 달라서 생기는 불연속성에서 생기는 모호함. (중략) 내가 어릴 때 도서실에서 본 4.3항쟁의 시체 더미 사진은 나에게 그 당시 전쟁의 고통을 찾아보게 했고, 그 고통에 공감하게 했던 기억이 있다.
– CㅇO

하지만 이 책은 사진이 사실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님을 얘기하고 있다는 것이 굉장히 마음에 들고 인상적입니다. …하나의 사진이 이미 자신이 기록한 하나의 메시지일뿐만 아니라 사진은 현실에 대한 총체적 관점을 시험하고 확정하고 구성해나가는 수단이라는 것입니다.
– LOO

(10가지 포인트 중에 8번째)
사진은 욕망을 드러낸다. 오래전 사진가들이 사진을 예술의 위치로 올리고자 했던 욕망, 우리가 소유하고 싶은 것에 대한 욕망, 사회/정치적인 도구로서의 욕망, 인스타그램에 가득 차있는 욕망.
– SOO

책에서 나온대로 사진은 주어진 상황에서 실행되는 인간의 선택에 대한 증거다.
– KOO

“기쁨을 누리는 모습을 찍기 위해 렌즈를 교체한 다음 셔터를 눌렀습니다.”
– K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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