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국립현대무용단 10주년을 기념하는 미술 전시를 준비하던 중이었습니다. 이미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 수위가 오르락 내리락 하던 시기였고, 계절은 가을이었지요.
석유 저장고로 쓰였던 거대한 산업 공간을 전시장으로 바꾼 ‘문화비축기지’라는 물리적 공간에서 치러질 예정이던 전시 일정은 결국 코로나19로 인해 큰 변화를 맞게 되었는데요.
네, 예상 하셨을 바와 같이,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전시는 취소되고 말았습니다.
무용단의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움직임’ 그리고 ‘물질’과 같은 키워드로 구성해볼까 구상했던 전시를 치를 수 없게된 상황에서 도출한 대안은 이랬습니다. ‘미술 전시라는 프로젝트의 성격 자체를 뒤엎고, 바꿔버리자.’ 그리고 그 결과로 만들어진 것은 ‘침대에 누워서 휴대전화로 스크롤 할 것’을 가정하고 만든 ‘아카이브 웹사이트’ 였지요.
이때까지만 해도 몰랐습니다. 이렇게나 모든 것이 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게 될 거라고는 말이에요.
2020-2021년 사이에 했던 일 가운데 가장 ‘언택트’ 스러운 일은 6개월 넘게 진행된 ‘온라인 동시통역’ 건으로, 2020년 가을에서 겨울로, 다시 2021년 초에서 봄으로 오프닝 날짜를 미뤄 개최된 광주비엔날레에서 주최한 포럼이었습니다.
이 행사 역시 원래는 이런 모습으로 진행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런 모습으로 이뤄졌습니다. 행사 주최측의 행정 인력들은 전라도 광주에서 ‘줌’ 회의를 개설하고, 물리적으로 분리된 공간에 있는 두 명의 통역자들이 동시에 접속을 해서 ‘동시 통역자 지정’을 받고, 홍콩에 있는 모더레이터가 행사를 진행하는 한편, 동유럽, 티벳, 미국 등에 있는 강연자들이 매번 접속을 했죠.
어떤 면에서는 모든 것이 매우 간편했습니다. 시간과 돈을 들여 따로 이동을 할 필요도 없고, 답답한 통역 부스에 들어갈 일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통역을 하기 전에 연사를 미리 만나 호흡을 파악한다던가, 그날의 여러가지 상태를 확인하고,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돌발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혹은, 이제는 그러한 일들이 모두 예전과는 ‘다르게’ 이뤄져야 했습니다.
무엇보다, 행사를 마친 직후의 기분과 분위기가 예전과는 무척 달랐는데요. 행사가 끝나고 청중들이 박수를 치면서 마무리되는 현장에서 뿌듯한 마음으로 가방을 싸는 일 대신, ‘줌 회의가 종료되었습니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컴퓨터 화면이 검은색으로 변하는 즉시 제가 앉아있던 곳은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 편한 마음으로 식사를 하러 가거나 집으로 돌아갈 교통편을 찾아보는’ 현장이 아니라 그저 제가 머무르고 있던 곳 – 때로는 저의 집, 또 다른 때는 비용을 지불하고 잠시 빌린 공간’으로 즉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집 밖으로 언제쯤 나갈 수 있을까요?’ 영국이나 호주 등 저녁 시간에는 아예 통행을 금지할 정도로 강력한 ‘락다운’을 한 번도 시행하지 않은 한국에서 이런 말을 던지는 것이 조금 조심스럽기는 합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것이 변화했다는 것만은 확실해 보입니다. 우리는 마치 조지 오웰의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일 –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 출입할 때마다 생체 정보(체온)를 기록하고 QR 코드를 통해 출입자의 신상 정보를 기록 – 에 대해서 너무나 짧은 시간에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한 일’이라는 합당한 이유만 있다면, 관계 기관에서는 여러분이 몇 시 몇 분에 어디에 있었는지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우리가 (규칙을 어기지 않기 위해) 자발적으로 제출하는 방문기록 뿐 아니라 거의 24시간 손이 닿는 거리에 두는 휴대전화가 큰 몫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집 안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바깥 바람을 쐬러 나와 공간을 ‘체험’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각종 전시장은 예약이 쇄도하고 있습니다. 감염을 피하면서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자가용 수요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실제로 2020년 국내 자동차 시장은 2002년 이후 최대 매출을 기록한 바 있습니다. (“국산車 18년만에 최다 판매… 코로나에도 내수 ‘탄탄’” 조선일보 2020년 12월 기사)
오프라인이 답답한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숨 쉴 공간을 찾기도 했습니다. 올 해 초 출시된 음성 기반의 소셜미디어 애플리케이션 ‘클럽 하우스’는 한국에서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고, 국내 기업인 카카오에서 재빨리 이와 비슷한 ‘음’이라는 서비스를 출시하기도 했지요.
이 발제문을 읽고(쓰고) 있는 바로 지금, 여러분은 어디에 앉아 계신가요. 아마도 트레바리 (온라인) 모임에 참여할 수 있는 적당히 조용한 공간에 계실 것이며, 퇴근 시간 이후에 모임이 진행되니 높은 확률로 본인이 거주하는 공간에 계실 것 같습니다.
그 공간은 어떤 공간인가요. 말하자면, 그 공간은 어떤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그 공간을 만든 사람 혹은 사용하는 사람의 생각이나 생활을 얼마나, 어떻게 반영하고 있나요?
[궁극의 취향!] 2021년 5~8월 시즌의 새 번째 책 [공간이 만든 공간]은 [아메토라]를 통해 다뤄본 입는 것과 [돈가스의 탄생]으로 이야기 나눈 먹는 것에 이어 사는 것, 머무르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선택한 책입니다.
오늘 우리는 책에 관해 이야기 나누고, 각자가 쓴 책에 대한 단상을 함께 살펴볼 것이며, 자신을 둘러싼 공간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볼 것입니다. 한국-서울의 집값은 제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이 비싸고 앞으로 더 비싸질 것 같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몇 안 되는 선택지마저 코로나19로 인해 더욱 줄어들고 있는 듯 합니다. (혹은 지금까지 없었던 전혀 다른 방식의 해결책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죠.)
이런 저런 사정으로 인해 모임에 참여할 수 있는 멤버의 숫자가 적은 오늘 모임을 위해서는 업로드해주신 노트에서 인상적인 부분을 따로 뽑아서 작성하지 않았습니다. ‘화면 공유’를 통해 각자의 글을 함께 살펴보고, 읽고, 생각을 나누고자 합니다.
- 간략한 근황 업데이트는 지난 한 달 사이 가장 많이 머물렀던 곳과 (직접 방문 유무를 떠나) 인상적이었던 장소를 위주로 나누어보았으면 합니다.
- 책의 전체적인 인상, 느낌, 좋았거나 아쉬웠던 점, 인사이트 등에 대해서도 간략히 의견을 공유했으면 하고요.
-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염두에 둘 세 가지 생각 거리는 아래와 같습니다.
- 이 책에서 저자는 줄곧 ‘건축은 여러가지 사회문화적 조건, 철학 등을 반영한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그렇다면 내가 긴 시간을 보내는 공간 혹은 지금 거주하는 공간은 어떤 환경이나 조건을 반영하고 있나요?
- ‘여기는 내 공간이지’라고 여기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그렇게 여기는 공간 혹은 지역이 있나요? 자주 들르지 않는 곳이지만 마치 ‘제2, 제3의 고향’인 것처럼 느껴지는 곳이 있나요?
- 이번 책을 읽으면서, (언젠가 갖게 될 지도 모르는 혹은 이미 가지고 있는) ‘나만의 공간’을 어떻게 건축/구성할 지 생각해보았나요? 그렇다면, 어떤 공감은 머릿속에 그려보았나요?
- 참, 모임 중에는 ‘공간을 채우고 있는 것’이라는 주제와 관련해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말씀드렸던 ‘가짜같지만 진짜였던 것을 가짜로 만들어버린’, 현재 유행 중인 가구를 소개하고 의견 나누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