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이미지: Bjarne Melgaard’s Untitled (Bjarne Melgaard Interviews Leo Bersani) (2011)
https://artreview.com/bjarne-melgaard/
송고은의 노트
와 함께 시작하는 [미술아냥] 2021년 6~9월 시즌.
시작합니다.
꽤나 두꺼운 이 역사책을 관통하는 하나의 스토리 라인이 있다면 그것은 미술의 역사가 끊임 없이 반복해온 두 가지 열망의 축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이것은 두 가문의 싸움과도 같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두개의 서로 다른 열망은 바로, ‘순수한 기호’ VS ‘아방가르드(반예술)’ 입니다.
트레바리 ‘미술아냥’ 전용 밈#1
음… 딱히 확실히 다가오지 않는 논쟁의 주제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 이 양쪽을 가장 명확하게 대변할 수 있는 실제 작품을 먼저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데요. 바로 몬드리안(빨강, 노랑 파랑의 컴포지션,1929)과 뒤샹(샘, 1917) 입니다.
혹시, 이 색종이와 변기짝이 가장 위대한 현대미술의 역사라는 주장에 이미 지치셨다면, 먼저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해봅니다… 오늘의 시간은 이 작품들이 각각 600억 그 이상의 가치를 지녔다는 주장을 옹호하려고 한다기 보단 미술이 가지는 2 가지의 모순된 욕망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저자는 (안그래도 긴) 미술 역사의 시작을 Cosmic Calendar를 꺼내 들며 시작합니다.
‘자연이 그 자체로 정당한 것 처럼, 풍경을 그린 그림이 아니라 풍경(그 자체)가 미적으로 정당한 것 처럼’ – Frederick James(1915-1985)
재현 이후의 세계에는 ‘추상’만 자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앞서 설명한 반예술 즉, 아방가르드적 사명을 띄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래서 이 논쟁의 시작을 알리는 새로운 미술의 역사를 규정하며 Contemporary Art, 현대미술이라고 부릅니다. 현대미술은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미술, 현대라는 시대의 특성을 주목하고 중시하며 생산된 미술” 을 뜻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이렇게 기성에 반기를 들며 시작된 반예술의 활동들 역시 시간이 지나고 역사화 되면서 그들만의 권위를 갖게 됩니다. 그걸 오늘 바라봐야만 하는 (그 작품들에 비교적) 미래인들인 우리는, 그것들에 코웃음을 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당당히 이제까지 미술이라고 불리지 않았던 사물, 생각, 상황, 풍경이 더 위대한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우리의 사고와 태도 역시 지난 ‘현대미술’이 지속해온 동일한 운동이자 그 산물이라고 말한다면 그건 너무 큰 비약일까요?
어쨌든 최소한의 이런 예술은 앞서 이야기한 두 욕망의 축 사이에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여러분 좋아하게될, 혹은 이미 좋아하고 있는 아티스트의 영감은 기존의 질서를 파괴해온 이런 현대미술 역사의 한 페이지에서 부터 출발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이번 시즌은 ‘현대미술 강의’에서 읊고 있는 역사적 사실들을 기반으로 다양한 작품들을 더 친밀하게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를 들어 위에 문장들은 이 안내서에 의하면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미술, 현대라는 시대의 특성을 주목하고 중시하며 생산된 미술”이라고 정의된 현대미술의 매우 기본적인 틀에서 아주 먼 이야기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듯이요!
뉴욕의 작은 아파트 안에 자신들만의 컬렉션을 꾸미며 함께 늙어갔던 보글커플의 사랑스러운 사진을 바라며보며 이번 시즌을 엽니다.
질문 & 생각할 것들
-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게 느껴진 사건이 있다면 무엇이었나요?
- 눈에는 이미 익은 작품이지만 왜? 라는 질문에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것이 현대미술이기도 한것 같아요. 혹시 이번 책을 통해 그 작품들에 대해 새롭게 알게된 사실이 있으신가요? 있다면 무엇인가요?
- 당신의 생활에서 미술은 어떤 역할인가요?
독서노트로부터의 발췌
2011년, 워싱턴에 있는 사설 미술관 [필립스 컬렉션]의 로스코룸을 처음 방문했을 때 충격과 감동은 잊을 수가 없다. 이후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 이스트 빌딩]에서 때로 만난 폴락과 뉴먼, 로스코의 작품들을 보면서 그것은 증폭됐는데, 정확히 뉴먼, 로스코 두 작가 모두 색채와 공간의 자유로운 흐름을 끊지 않고, 색채로 개방성의 문제를 완벽하게 돌파했기 때문이고, 로스코룸에서 무한대의 고독과 자유, 기쁨을 느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 JOO
…그 중 하나는 온통 까만 배경에 흉터같은 자국이 남아있는 작품이었는데, 두고두고 보고 싶은 느낌이 들어서 확인해 보니 한국인 작가의 작품이었어서 더 기억에 남는다. (김구림 화백의 <태양의 죽음 I>이었던 것 같다.
… 뱅크시도…부정하려 했지만 (파쇄 퍼포먼스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이 이러한 구조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COO
“지식 없이 그림 관람을 하는 것은 가능한가?”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이러한 방대한 지식을 가지고 그림을 보는 것과, 그냥 순수하게 그림을 감상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하는 점이다. 그림은 항상 역사적 철학적 배경지식으로 설명되어야 하는 것일까? 그럿 없이도 일정한 미적 경험이 가능한 것일까?
– LOO
역사와 무관하게 존재했을 때조차도, 예술적 변혁과 역사적 시도를 했을 때도 항상 미술은 발전해 가고 있는 것이고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작품을 보며 감동하는 것일 테다.
이런 복잡하고 공통의 체제가 없는 세상에서, 앞으로의 미술은 또 어떤 경향을 띠게 될지 궁금했다.
– ㄱOO
“현대와 미술, 미술과 현대”
… 현대의 시점에서 과거를 비판할 때 어떤 논지를 취해야 하는가를 늘 고민하게 된다.
1. ‘그땐 그랬으니까’라며 가치 판단 없이 둔다 > 이건 아닌 것 같다.
2. 지금의 기준에서 그 고전이 현대 인간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지 없는지 결정한다 > 이것도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왜 페미니즘은 컨템포러리 현대미술의 중요한 ‘축’이 되는가? 라는 질문 또한 답이 없이 계속 머릿속을맴 돈다. 페미니즘이 컨템포러리의 주요한 축이라는 것은 여성이 미술계의 진짜 주체가 되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결국 예술은 어떤 사회의 표상인 것이지 사회 혁명이나 전환의 기폭제가 되지는 못하는 것일까?
– ㄱOO
…개인은 각자 분야별로 다른 시대를 살고 있다. 가령 우리가 사용하는 내비게이션은 양자역학을 이용한 기술이 적용되어 있지만,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미술적으로 나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 아마도 1800년대 후반 정도 사람들의 눈으로 바라보았던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이 나의 취향이라고 굳게 믿었다. …실제로는 교양을 포기한 변명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 OOO
…미술은 진화해왔고 진화되고 있다는 것이 내가 이 책에서 받은 가장 강력한 느낌이다. 미술작품은 그걸 만든 화가들 뿐만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의 생각과 인식도 나타내고 있는 듯 보였다.
– ㄱOO
(<먼나라 이웃나라> 이야기…) (…신정아 큐레이터 수업 들은 이야기…) …동시대 미술이 물어야 할 질문은 다시 근본적인 것, 즉 ‘무엇을 볼 것인가?’ 그리고 ‘내가 본 것을 다른 이들과 어떻게 나눌 것인가?’가 될 것이다.
– ㅂOO
“미술아냥? 꼭 알아야 하냥? (다른 멤버들의 미술에 대한 관념을 질문)
– COO
17년 넘게 직장 생활을 하며, 종종 SF를 쓰며, 가끔 미술관을 들르는
– LOO
현대미술의 시작점을 처음 알게 되었다. 과거를 거부하는 현재 옹호론의 모던/모더니티 개념을 현대적/현대라는 용어로 가리키면 된다는 점. …그동안 현대미술을 ‘현재’의 미술로 생각해버리고 있었다.
… 이 글을 쓰면서 드는 하나의 의문은 얼마 전 전시로 보게되었던 ‘헤르난바스’같은 현대 페인팅 미술가들의 작품은 재현의 요소를 통해 화폭을 구성하는 것 같은데 이런 상황에서 이런 미술은 잭슨폴록이 이후에 다시 재현적인 페인팅으로 돌아가서 퇴보의 길을 걸었다는 판단과 어떠한 차이가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 COO
(학부 때 ‘대중문화예술’ 강의에서 들은 구조주의 내용을 바탕으로)
모더니즘의 발전 과정은 … 회화에서의 기표들의 순수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모더니즘까지밖에 읽지 못했다. 이제 이렇게 기표로만 해체한 것을 다시 새로운 방법으로 기의와 다시 결합할 역사적 과정이 나올 거라는 기대를 하며 모임 전까지 책을 다 읽어야겠다.
– COO
“꼭 그렇게 해야했나 싶은 K-관계항”
회사 입구 정중앙에는 동그란 잔디밭이 있고 그 가운데 이우환 작가의 “관계항” 조각이 놓여있다. 꽤나 뜬금없긴 하지만, 이번 달에 더 뜬금 없다고 느끼게 된 건 이우환 조각 앞에 바람개비로 수놓아진 태극기 때문이다.
…이우환 작품은 현대미술의 여정에서 어디에 속할까? …대략 2달 전 “블라인드” 어플 속에서 회사 앞 이우환의 작품을 비난하는 글이 올라왔다. 그 당시 화제였던 “상속세 미술품 물납” 제도와 관련하여 수천억을 저런 돌멩이 따위로 받는게 말이 되냐는 격앙된 어조였다.
– OOㅈ
고등학교 기말시험에 벼락치기해서 외웠던 미술사의 ‘사조’들은 언제나 큐비즘에서 끝났다. 모더니즘이나 아방가르드는 단어구경조차 힘들었고, 가끔가다 다다와 팝이 한 줄로라도 구색이 맞춰져 있으면 다행이었달까. …파편화되어 있던 점과 점을 이어 계보를 만들어놓고 보니, 이제서야 ‘큰 그림’을 손에 넣은 우등생이 된 기분이다.
…계보를 쭉 일별해놓고 보니 현대미술의 역사란 곧 ‘새로움에 대한 목마름’으로 틔워온 물길같다는 생각이 든다. …끊임없이 ‘새로워’져 온 셈이다.
… 언제부턴가, 나는 미술에서 더이상 ‘셔터를 누르게 하는 아름다움’을 기대하지 않게 되었는데, 나 역시 ‘새로움에 대한 목마름’에 익숙해진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재현’을 거부하다 못해 아예 산산조각나 버린 미술이 ‘동시대 미술’이라면, 나는 이 파편들 속에서 또 어떤 미학이 생산될지 궁금해진다.
– OJO
내가 늘 현대미술에 관심이 가는 이유는 이 때문이었던 것 같다. ‘세계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미술’은 다른 말로 ‘팩트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삶’과 일맥상통한다고 느껴서다. 현대미술은 어쩌면 팩트의 재현을 거부한 동화 같은 세계가 아닐까.
– ㄱ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