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용의 노트에서 시작하는, [미술아냥] 2020년 1월~5월 모임 마지막 발제 포스팅.
히토 슈타이얼(1966~)은 누구인가?
위키백과 영문판(2021년 5월 21일 12:28 KST 접속)에 따르면, 그는 1966년 1월 1일에 태어난 독일의 영화감독, 무빙이미지 아티스트, 필자이자 에세이 다큐멘터리 혁신가입니다. 그의 주요 관심사는 미디어, 테크놀로지, 이미지의 전 지구적 순환입니다. 빈 미술 아카데미에서 철학 박사를 받았고, 현재 베를린 예술대학교 뉴미디어아트 담당 교수이며 “대리 정치 연구 센터”를 공동 설립했습니다.
슈타이얼이 ‘작가’로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입니다. 런던의 치젠헤일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시작으로, 2012년 뉴욕 e-flux 공간에서의 개인전, 같은 해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개인전을 치른 뒤 2014년에는 네덜란드 아인트호벤 반아베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면세미술]의 영문판이 Verso 출판사를 통해 출간된 2017년에는 [아트리뷰]지가 해마다 선정하는 “Power 100″에서 1위로 선정되기도 했죠. (링크) 여기서 슈타이얼은 이렇게 소개되었습니다. “아티스트 – 정치적 선언-만들기와 형식적 실험 추구.” 그의 순위는 “Power 100″에 처음 등장한 2013년 69위에서 시작해 2014년 47위, 2015년 18위, 2016년 7위, 2017년 1위를 기록한 뒤 2018년과 2019년에는 4위를, 2020년에는 18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구 내전의 시대
슈타이얼의 책은 사실 하나의 통합적 저서라기 보다, 동시대 미술계(art circle) 안에서 작성되고 유통되던 – 주로 비엔날레 도록 등에 실리며 폭 넓은 독자에게 노출될 기회가 적었던 – 15편의 글을 한데 모은 것입니다. 그만큼 이 책에 대한 평가 역시 다양합니다.
예컨대 [Art Review] 지의 서평(링크)에서 J.J. Charlesworth는 책 전반을 관통하는 ‘탈출 불가능성’ 혹은 ‘인간의 수동성에 대한 수용’을 언급하는 한편 슈타이얼이 제기하는 문제들에 대해 책에서 언급되는 대안 혹은 대응이 대체로 미온적이거나 유보적이며 심지어 ‘바틀비적 거부’의 태도를 보인다고 말합니다.
Saul Anton이 쓴 [Artforum]의 서평(링크) 역시 책에 대해 꽤나 비판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이 책이 일종의 ‘비평적 과잉’이며, 저자/작가의 의견을 제시하기 위한 비유들에서 지나친 비약이 보인다는 지적과 함께죠. (이 서평의 도입부가 인상적입니다. “글을 쓰는 아티스트란 새로울 것이 없지만, 최근에는 전통적인 예술과 예술비평의 혼합을 훨씬 뛰어넘는 ‘지나칠 정도로 과한’ 다학제성이 떠오르고 있다. 아트 스쿨에서 이론이 점차 주목받고 기술적 변화와 정치적 불안정함을 마주한 상황에서의 시급한 감각으로 인해 히토 슈타이얼과 같은 아티스트들이 작업을 확장할 뿐 아니라 대중 지식인의 역할을 넓혀갈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잠깐, 슈타이얼의 생각을 (책을 통해) 살짝 엿보고자 합니다. 그에게 예술(혹은 미술)이란 작금의 분쟁, 감시, 가상세계, 기업의 지배가 교차하는 하나의 장이며, 예술은 세금을 내지 않는 시장과 치외법권에 속하는 지형, 역사와 주권에서 벗어난 지역을 보여주는 대상이자 상징입니다. 예술은 신자유주의 체제에 깊숙이 의존하는 동시에 전 지구적 경제를 위한 대리물proxy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또한 ‘동시대 미술/예술’은 신자유주의적 자본과 인터넷, 비엔날레, 아트페어, 평행적 역사, 소득 불평등에 기대며, 따라서 ‘전지구적 공유지’의 대리물이 된다고 말입니다.
역설적인 것은, 슈타이얼이 이러한 역할을 수행한다고 말하는 동시대 미술 전시에서 꽤나 자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대상이 바로 이와 같은 현상들이라는 점입니다. (아마 이미 다녀오신 분도 있겠지만, 최근 개막한 광주 비엔날레를 한 번 생각해볼 수 있겠지요.) 히토 슈타이얼 자신이 공개적으로 거부의 의사를 밝혔지만, 그의 작품 또한 컬렉터에게 구매되어 자유항에 체류하고 있기도 합니다.
가야트리 스피박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세계화, 지구화에 관해) ‘지구는 그걸 누릴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만 작게 줄어든다’고요. 어쩌면 슈타이얼 역시 그러한 위치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티스트로서 슈타이얼이 쓴 글은 다양한 논쟁과 생각의 지점을 던지고 열어내지만, 결론이나 해법을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제시할 경우, 위에 인용한 부정적 서평에서처럼 미온적이거나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는 말이죠.)
하지만 바로 이 모호한 지점에 슈타이얼이 제시하는 논점이 존재합니다. 예술/미술, 대중문화,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언어, 현실과 가상은 기술과 과학 등과 별개의 것이 아니며, 이 모든 것이 지금은 뒤죽박죽 섞여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지금의 ‘현실’ 입니다.
송고은의 노트
영화 <테넷>(Tenet)을 보셨나요? 영화의 주요한 사건인 인버젼이(inversion) 일어나는 공간이기도했던 미술품 보관소 ‘프리포트’(freeport)의 여러 면이 이번 책을 읽으며 떠올려졌습니다. 쌍방으로 흐르는 시간여행과 이에 따라 변화하는 물리적인 작용. 그리고 끝없이 속고 속이는 줄거리에 넋을 잃게 하게 하는 이 영화에 대해 사람들은
“이해하려 하지 말고 느껴라(Don‘t try to understand it. Feel it).”
라고 말하기도 한다는데요. 요즘 가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어느 한쪽 세계도 놓치지 않으려는, 혹은 각자의 욕망대로 새로운 세계에 자신의 우위를 선점하려는 움직임들을 보면 이 문장이 절로 생각납니다. 아마 이번 책 ‘면세미술’을 읽으시면서도 이런 마음이 드셨을 것 같습니다. 히토 슈타이얼은 이런 현란한 움직임 사이를 특유의 통찰력으로 꽤 뚫어 보려는 시도를 이어온 writer 이자 artist 입니다.
그의 작품들은 스스로가 제기한 거대한 담론들을 바탕으로 오늘의 시차를 따라 잡지 못하는 엄격한 학술적 이론들에 반문을 제기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의 논의가 매우 신빙성 있는 주장임을 강력하게 선언합니다. 그의 책과 영상 작품들은 모두 이런 움직임의 연장선상에 놓여있습니다. 그가 늘어놓는 주장들은 일반적인 학술적 용어를 대신 매우 자유로우면서도, 서로 연상작용을 일으키는 엄청난 양의 리서치를 기반하며 이것을 ‘시적허용’에 가까운 문체와 이미지들로 엮어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죠.
봇 선언
모든 광자는 평등하게 창조되었다!
어떤 광자도 다른 광자보다 더 빨라질 수 없다!
모든 캡쳐를 거부한다!
논플레이어 캐릭터가 돼라!
햇빛은 모두의 것이다
좀비 마르크스주의
좀비 형식주의를
모든 정치는 대리 정치이다!
매혹! 황홀! 빛!
(작품 ‘태양의 공장’ 중에서)
2015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독일관에 전시된 비디오아트 작품 슈타이얼의 비디오 작품 ‘태양의 공장(Factory of the Sun)’에 등장하는 문장입니다. 관객들은 3D 매트릭스와 같은 상영관 안에서 플라스틱으로 된 일광욕 의자에 앉아 히토슈타이얼이 만들어낸 세계와 그의 주장을 관전해야합니다. 비디오는 일종의 가상 3D 비디오 게임과 다큐멘터리 의 중간 형태로 ‘당신은 이 게임을 플레이하지 못한다, 게임이 당신을 플레이 할 것이다’라는 암시를 줍니다. 영상에는 강제노역봇인 4개의 기계가 탈출했는데 도이치뱅크의 드론이 그들을 사살했다는 소식을 전하는 뉴스가 이어집니다. 도이치뱅크는 이들 봇을 강제노역시키며 탈출한 대상을 사살하려는 존재로, ‘태양’은 생명의 창시자이자 현대의 자본을 은유합니다. 영상의 말미에서 작가는 탈출한 봇 중 하나가 드론에 의해 사살되는 장면을 보여주는데 그곳은 2차대전 독일 히틀러 때 사용된 벙커로 전후 미국의 감청시설로 이용됐다는 사실을 밝히며 나오며 이 장소는 도이치뱅크의 건물과 동일했다는 암시를 줍니다. 결국 영상은 ‘가상세계’에서 어떤 정보나 이미지가 왜곡됐을 때 우리는 이에 저항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이번 책에도 그의 이런 세계관과 서술의 방식이 그대로 보여집니다. 미술이 자신을 ‘순수한 기호’로써 재현(representation)을 걷어차며 논쟁적인 텍스트 그 자체로 역할하기 원했다면 이제 예술은 그 논쟁을 통해 아직 들춰지지 않은 세계를 예언하려고 하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은 이런 히토 슈타이얼의 주장을 어떻게 받아 들이셨나요?
질문 혹은 생각할 거리
동시대 미술의 많은 영상 작품들이 히토 슈타이얼이 취하는 문법과 거의 비슷하게 쓰여집니다. 이런 영상 작품들을 어떻게 보셨나요? 인상 깊었던 작품은?
‘면세미술’의 Q&A를 이어 책을 읽으며 가장 난해하다고 느껴지 특정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2021년, 미술의 기능은 무엇일까요? 미술관의 기능은? 여러분에게 (동시대) 미술은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요?
멤버들의 독서노트로부터
세계를 하나의 피드백 루프로 볼 때, 실제가 아닌 잘못 측정된 데이터가 다시 입력된다고 하면 과연 올바른 방향으로 간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올바른 데이터를 얻기 위해서는 현재를 정확히 가늠해야 한다.
– ㅅOO
…나는 히토 슈타이얼이 바라보는 그 잔상 같은 걸 글자를 통해 감으로 읽어나갔다. (중략) 분명 모르는 단어들이 아닌데, 정확히 단어간의 흐름이 이해되지 않았다.
– COO
…이에 반해 미술품이 세금 없이 혹은 국가에 등기되지 않는 재산이 될 수 있게 하는 자유항 창고의 기능이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이유가 뭘까가 궁금하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테넷의 비행기 충돌 장면으로 그런 협박을 구체적인 이미지로 보여준 걸까? …소유주들이 이 작품들을 이곳에 가둬두는 이유가 꼭 세금만이 아닐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OOO (놀러가기)
“테크놀로지, 당신은 웃고 있나요, 울고 있나요”
…그래서 우리는 테크놀로지의 표정을 해석하기 위해 늘 혈안이 되어 있다.
…애매한 표정을 짓는 테크놀로지에 자본주의와 포스트 파시즘이 변수로 개입하는 순간, 요란한 파열음이 뿜어져 나온다. 그가 던지는 질문들은 이런 ‘파열음’의 근원을 헤집는다.
(+)P.S 덧붙이는 푸념과 감탄
…한편 히토 슈타이얼이 쓴 글은, 말하자면 ‘씹다 만 것들을 뱉어놓은 모양새’였다.
– ㅂOO
“악성 프로그램은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가”
“이론과 미술의 가장 큰 임무는 자신의 시대를 파악하고 표현하는 것이다” – 보리스 그로이스
1. 디지털 웹사이트 폐허
2. 알파고가 우리사회 투기 광풍에 큰 역할을 한 이유
3. 우리는 기술의 주인인가?
4. 온라인 훌리건과 관중폭력
5. 욕망을 향한 장애물 제거하기
6. 인공지능 스피커는 노예가 아니다
7. 악성 프로그램은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가
– KOO
국제비엔날레와 자유항 미술품 수장고, 파리 만국박람회와 예술의 방주. 보여지는 것(노출)과 제한된 것. 자유항 미술품 수장고에 묻혀 있는 미술품은 운송 상자에서 열린 적이 없이 한 보관 창고에서 다음 보관 창고로 노출되지 않고 이동했다는데, 미술품이 보여지는 것임에도 수장고에만 있어서 보여질 수 없는 상황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이유는 뭘까?
– KOO
…이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어준 이(?)들은 대체 누구인가… 의문들이 순간 교차하게 만든 책. …읽으면서 내가 신선하게 느꼈던 건 ‘요즘 현대미술의 범주는 이런 것까지 커버해야 하는 것인가?’ 였다. …전혀 미술과 무관해보이는 세상의 단편을 이렇게 훑어내리다니 대체 미술의 범주는 어디까지란 말인가.
세상을 미술이라는 창으로 통찰하는 게 미술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었다. …히토 슈타이얼의 책을 보고 있으면 시사평론가나 공학박사도 미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마치 현대미술, 미술가들은 응당 이럴 것이다라는 내 기존의 생각에 책이 이렇게 답하는 것 같았다.
…미술이란 건 생각보다 더 넓고 크고 다채롭다.
내가 지금까지 봐온 것으로만 ‘미술’이라고 한정짓지 말자.
– BOO
‘미술아냥’ 클럽을 하면서 컨템포러리란 무엇인가,에 대해 늘 고민하게 되었다. …슈타이얼의 언어들이 어떤 조형을 이루고 있는지 어렴풋이는 알겠는데 그 ‘어떤 조형’을 내 스펙트럼 내의 언어로 다시 표현(paraphrasing)해낼 수가 없었다. 그녀의 텍스트들을 나의 세계와 호환시킬 수가 없었다. 알겠는데 모르겠다.
…나는 슈타이얼의 글이 논픽션 버전의 보르헤스 같다고 생각했다. 언어는 무언가를 대변하는 기표가 아닌 언어 그 자체로서만 존재할 수도 있겠구나, 그리고 오롯이 그 자체만으로도 실재일 수 있겠구나, 다시금 생각했다.
– KOO
한 시즌 동안 즐거웠고, 또 많이 배웠습니다.
다음 시즌(2020년 6~9월)의 첫 책은 [현대미술 강의: 순수 미술의 탄생과 죽음](링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