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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ㄱOO 님의 독서노트를 인용, 되풀이한 것
(송고은의 노트로부터 시작합니다)
아방가르드! 무엇일까?
나에게 묻는다면 한 문장으로 “ 동시대를 새로운 예술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일련의 예술가 무리 혹은 그들의 활동”정도로 축약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거꾸로 당신이 떠올린 어떤 “아방가르드”함에 대해 호감을 느끼거나 관심이 있다면 당신은 오늘의 현대미술이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하거나 혹은 좋아 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아방가르드의 정의들:
1. 아방가르드 = 19세기에 완성된 미학적 이상(modernism)의 안티테제 = 미래파, 표현주의자, 다다이스트, 초현실주의자, De stijl
– 다이애나 크레인, [아방가르드와 미술시장] 11p:
2. “아방가르드라는 용어는 우상파괴적인 미적 가치(iconocllasttic aesthetic value)에 헌신하는 동시에 대중문화와 중간계급의 라이프스타일 모두를 거부했던 응집력있는 예술가 집단을 함축한다.”
3. 아방가르드의 정의 (다이애나 크레인, [아방가르드와 미술 시장] 27p)
(1) 예술의 관습을 재정의할 경우.
(2) 새로운 예술적 도구와 테크닉을 활용할 경우(예, 잭슨 폴록은 이젤을 없애 버렸다).
(3) 예술작품의 대상의 범위를 재정의 할 경우.
하지만 소위 ‘아방가르드’라는 네트워크가 확장된 시기인 1960년 – 80년 사이 미국 정부는 아래와 같은 이유를 근거로 예술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예술의 사회적 가치:
예술은 청소년 폭력과 정체성 혼란을 추방하고, 기술직 숙련공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며, 범죄를 예방하고, 새로운 고용 기회를 창출한다. 예술은 마약중독을 대체할 수 있으며, 죄수의 자활 노력에 훌륭한 조력자가 될 수 있으며, 구시대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예술의 세례를 받으면 도시 중심의 피로감을 완화 할 수 있으며 적대 문화의 색깔을 변화 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스 하케(1981)는 이에 대해 중산층의 자유의식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행위 라고 보고 자유로운 비판 의식을 잠재우길 기대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새로운 시대적 반향을 일으키기 위해 나타난 아방가르드 역시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또 다시 양식화 되고 관습적인 행위로 포괄 되었다는 것은 이전의 역사들을 봤을 때, 결코 놀랍지 않은 양상이기도 하다.
미술계를 둘러싼 오늘의 현실을 풍자한 <더 스퀘어>의 X-로얄 수석 큐레이터 크리스티안이 꿈꾸는 ‘아방가르드’ 역시 그 반복되는 역사의 작은 부분이 되는 듯 보인다.
(박재용의 노트로 이어집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예술 프로젝트를 하나쯤 가지고 있는 지금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지금 본인의 인스타그램 피드를 열어보세요. 혹은, 휴대전화 사진첩을 한 번 열어서 ‘자동분류’된 사진들을 살펴보세요!) 무엇이 ‘정당한’ 예술이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어떤 것인 ‘진부한’ 예술이며, 어떠한 것이 ‘새로운’ 것인지 판별하는 방법이 있는 걸까요? 이른바 ‘미술사’라는 것에 대해 살펴볼 때, 그러한 역사가 쓰여진 시대의 일반적 조건을 함께 생각해본다면 어떨까요?
말하자면, (서양 기준) 이른바 ‘아방가르드’의 역사가 쓰여졌을 때 인간의 일반적 삶의 조건은 어떠했을까요? 혹은, 지금 우리가 처한 삶의 조건 (모든 사람이 어느 정도는 예술가 혹은 창조자가 될 수 있는 도구가 ‘평등하게’ 주어진 상황은 어떤가요? 지금의 예술가들은 어떤 사람들이며, 지금 예술이 보여지는 곳은 어디일까요? (반대로, 지금 ‘아방가르드’였다고 인지되는 그 시기에는 어땠을까요?)
역사는 사후적으로 쓰여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가장 ‘새로운 것’에 대해서 우리가 내리는 (예술적)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오늘날의 ‘주목 경제’에서, (동시대) 예술의 자리는 어디일까요?
이번 모임을 위해 함께 살펴본 영화 [더 스퀘어]는 이런 난제들을 (괴상한) 위기에 처한 예술/미술인들을 통해 보여줍니다. 일종의 블랙 코미디를 통해서죠.
* 트리비아 1: 영화에 등장하는 Royal-X라는 가상의 미술관은 (현재 실존하고 있는) 스웨덴 왕실이 해체된 뒤 왕궁을 미술관으로 바꾼 곳이라는 설정입니다. 왕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에, ‘모두가 평등’할 수 있는 것이죠. 🤭🤔🤔
* 트리비아 2: 영화 속 퍼포먼스 아티스트 ‘올렉’은 [혹성탈출]에서 유인원 역할을 맡은 꽤 유명한 유인원 배우라고 해요!
* 트리비아 3: [더 스퀘어]는 일종의 설치작품으로 실제로 스웨덴 내 4개 가량의 도시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물론, 영화속의 것과 동일한 형태는 아닙니다. 일종의 공공미술로, 어린이들의 안전이 중요한 횡단보도를 눈에 잘 보이는 큰 사각형으로 표시한 것이라고 해요. 감독의 2011년작 [Play](어린이들이 서로 괴롭히는데 주변 어른들이 방관하는 내용이 등장)를 찍으며 아이디어를 냈고, 2015년 Värnamond의 디자인 미술관에서 실제로 구현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아 실행했다고 합니다. 현지 경찰들이 어린이들을 작품이 설치된 곳으로 데려가 사회의 기본 가치와 서로에 대한 배려를 알려주는 ‘퍼블릭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고.
참고 이미지
1.”Exhibition: Non-Exhibition” // Robert Smithson’s Site/Non-Site
2. “Where Shall we go Dancing Tonight?” (2015)
3. Oleg Kulik, “Dog House” (1996)
1996년 3월 2일, “소통의 문제”를 주제로 한 전시 [Interpol]에 참여한 작가 Oleg Kulik은 좌대 위에 목줄이 감긴 채 퍼포먼스를 했습니다. 관객들은 그가 ‘언어 문화를 거부’하는 상태이며, 가까이가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주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작가는 자신과 소통을 시도하는 사람들을 물어뜯었고, 경찰에 체포되었습니다. 이후 작가는 큐레이터들의 요청에 의해 자신의 의도를 밝히는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An Open Letter to the Art World” (영문 링크).
오늘 함께 생각할 거리
- 영화 속에 등장한 작품 [더 스퀘어]에서 표현하고자 한 아방가르드와 영화 안에서 표현되는 아방가르드는 과연… 무엇일까요?
- 21세기 한국/서울에서 살아가면서 ‘아방가르드’하다고 느낀 작업이나 전시가 있었나요?
- 지금, 아방가르드는 어디에 있을까요? (예술 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생각했을 때) 가장 전위적인 모습을 보이는 분야나 활동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독서노트에서 발췌
“탈권위를 탈출할 수 있을까?”
아방가르드가 당연한 현대미술이 된 지금도 아방가르드는 권위의 스펙트럼 바깥에 있는 반항아일까? (…) 결국 아방가르드의 존재의 역설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인정받는 순간 본래의 의미가 희석된다는 점 아닐까?
– ㄱOO
사람을 믿는다 믿지 않는다: (…) 크리스티안은 믿지 않는 것 같다. 많은 쇼핑몰 인파에서도 굳이 홈리스로 보이는 사람에게 자신의 쇼핑백을 맡겼으니까. (…)
“더 스퀘어는 신뢰와 배려의 영역으로 이 안에선 모든 동등한 권리와 의무가 있다”. [더 스퀘어] 전시를 설명할 때마다 저 문장을 반복하여 이야기했다. 도대체 신뢰와 배려가 작품 어디에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크리스티안 자신의 틀 안에서의 동등함이란 소거(elimination)함으로써 만들어지는 일정함인가?
– ㅊOO
영화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크리스티안의 소년을 향한 영상 편지에서 그는 이민자들을 향한 자신의 공포와 경시를 인정하면서 사과한 후, 곧바로 장황한 변명을 늘어 놓는다. (…) 그는 슬며시 사각형 주변으로 벽을 세운다. 나는 솔직히 이 주장에 적극적으로 반박할 수 없었고, 이 유려하고 능구렁이 같은 변명을 방관한 채 영화를 마저 보았다.
– ㅅOO
“이것은 예술이 아니다”
– ㄱOO
더 스퀘어를 다음 검색창에서 찾아봤을 때, 장르가 코미디로 분류되어 있다. 그리고 더 스퀘어를 한참 보다 말고, 다시 영화 장르를 검색을 하고 재확인을 하게 되었다. 분명 유럽을 휩쓴 블랙 코미디라고 보았는데, 정작 영화를 보는 내내 어디서 웃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또한 주인공 크리스티안이라는 사람이 궁지에 몰려서 자신이 속한 혹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순을 드러낼때, 나는 웃음이 나지 않았다.
– ㄱOO
잘 살펴보면 영화의 미장센은 크리스티앙을 끊임없이 네모 안에 가둔다. 그는 네모의 안과 밖을 철저히 구분짓고 싶어한다. 근데 자꾸만 네모 밖의 이방인들이 네모 안으로 침범해 들어온다. 광장(Square)이라는 네모에서도, 침대라는 네모에서도, 슬럼가 아파트 복도라는 네모에서도, 그는 선긋기에 실패하고 자꾸만 주류권력을 빼앗긴다.
– ㅂOO
“새로움은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왜 지금은 과거만큼 극단적이고 전위적인 작품과 전시가 존재하지 않을까? 내가 생각해본 한가지 이유는 예술 내부에 새로움의 동력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예술 외부와의 관계 때문인 것 같다.
– ㄱOO
아무튼 허문영 아저씨의 평론을 보면서 무대와 영화에 있어서의 관객과 작품의 차이, 경계선이 깨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따위에 대한 내용을 흥미롭게 보았는데 독후감 마감 시간이 가까워서 쓰지는 못하겠고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지도…!
– ㅇOO
“이 영화엔 일상적 타자의 습격이 지속적으로 등장하며, 무엇보다 ‘안락의자’ 관객을 직접 건드리는 인간야수의 육체적 퍼포먼스가 액자화되어있다. 여기엔 나와 세계의 차단이 작동하지 않는 순간, 혹은 비유컨대 스크린 붕괴의 순간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 허문영.
“Walking in an Exaggerated Manner Around the Perimeter of a Square” (1967)
10분 남짓하는 흑백 필름은 브루스 나우만이 정사각형 테두리를 걷는 모습을 보여준다. (…) 예술을 정의하는 매체와 방법론에 관한 영역을 확장하던 그 시기에 나우만은 예술가인 자신이 스튜디오에서 무엇을 하든 그것이 예술이라며 자신의 행위를 작품이라 부른다.
– ㅂOO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굳이 이 영화의 주인공인 크리스티안처럼 지식인층/상류층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위선적인 사람일 수 밖에 없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 ㄱOO
기존 제도권 미술을 부정하고 불편해도 삶의 진실을 드러내고자 원했던 ‘아방가드르’는 현대의 거장으로 “인정” 받으면서 그토록 부정했던 작품화 메커니즘에 빠져들게 되었다. 게다가 엘리트주의적인 성격으로 대중과의 교감을 획득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도리어 같은 “새로움”을 추구하는 상업적 소비주의의 대상으로 포섭되어버리기까지 한다. [아방가르드]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야기하듯 역설은 성공 이후에 발생한다.
– ㅅOO
한 시즌 동안,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음 시즌에, 혹은 다른 어느 곳에선가 또 만나도록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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