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아트포럼 2020년 10월 23일 오후 1:24.
아티스트 콜렉티브가 요셉 보이스 조각품을 절도했다고 밝혀
독일 아티스트 콜렉티브인 ‘프랑크푸르터 하웁트슐레’가 독일 오버하우젠의 한 전시에서 요셉 보이스의 조각품을 훔쳐 “과거 독일 식민지에 대해 보상하는 상징적 행위”로 탄자니아의 이링가 보마 지역 미술관에 가져다놓았다고 발표했다.
이 단체는 유튜브에 올린 영상 “Bad Beuys Go Africa”를 통해…
https://www.artforum.com/news/artist-collective-claims-responsibility-for-stolen-beuys-sculpture-84262
송고은의 노트
1.요셉 보이스와 그의 시대
책을 읽으며 ‘조조 래빗’에 등장하는 이 소년이 떠올랐다. 요셉 보이스와 큰아버지 뻘 되는 나이 차이가 나는 가상의 소년이지만, 중절모를 쓴 유난히도 매스큘린한 이미지를 풍기는 이 작가의 어린시절은 사실 이런 모습이지 않았을까? 그의 ‘펠트와 지방’ 신화는 어느 위인전 같이 조작 되었음을 알았지만 긴 연구를 진행해온 저자의 시선으로 본 그는 사뭇 더 섬세하고 또 불안정한 한 인간으로 다가온다. (36p. “ 벤자민 부클로는 보이스의 신화 역시 실제와 허구로 복잡하게 엮어진 것으로 해석한다)이 작가의 기묘한 행위에도 크게 놀랄것 없다는 어조로 그의 ‘인생 경력/작품 경력’을 읊어 준다.
2. Art into Society Society into Art
책에도 소개된 수 많은 그의 예술 행위들이 있지만, 나에게 요셉 보이스를 떠올렸을 때 처음 떠오르는 이미지는 위의 사진과 포스터다. 당시 이 7명의 독일 예술가들은 런던의 ICA에서 작은 전시를 가졌다. 요셉 보이스를 필두로 일련의 작가들의 작품 중 가장 눈에 띠는 것은 Gustav Metzger의 작업 이다. 그는 ‘예술 파업’을 주장했는데, 여기에 동요되어 지지했을 요셉 보이스의 모습이 선하다. 그들은 요동치는 6-70년대 예술이 진심으로 세상을 바꾸기에 충분하고 넘치는 도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오히려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주장은 예술이 멈춰 질 때, 비로소 예술이 이룰 수 있는 가장 큰 혁명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3. 플럭서스, 워홀 그리고 뒤샹
“마르쉘 뒤샹을 다르게 해석하고 그(의 작업)을 확장 시키는데 있다.” (p.254)
“워홀은 돈과 명성을 얻었으며, 생각하기보다는 ‘상품을 만드는 기계’가 되고 싶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반면 보이스는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하고 돈이 아닌 인간의 창의성을 자본으로 간주했다. 따라서 ‘생각하지 않으려는 사람은 떠나라’는 보이스의 주장은 바로 ‘기계가 되고 싶은 사람’인 워홀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p.260)
“산소는 호흡이 곤란한 그(보이스)를 떠올렸다. 낡은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마치 저승의 문턱에 다가선 것 같았으며, 모든 사람이 비슷하게 느꼈다.” (p.270)
4. 보이스의 주장: 그래도 우리는 혁명한다.
보이스의 주장 중, 가장 사랑 받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모든 사람은 예술가다’라는 문장일 것이다.
이를 ‘일상이 예술’이 된다는 뉘앙스로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도 낭만적인 해석일 것이다. 그의 취지는 누구나 예술가며, 예술작품을 만들 수 있다기 보다는 모든 노동의 결과는 결국 예술 작품과 같은 선상에서 생산 되며 예술 역시 이와 동등한 위치 혹은 그런 역할을 해야한다는 의미이다. (p.122)
박재용의 노트
“동시대 미술작가를 세계적인 작가로 키우기 위해서는 세 가지의 가치를 고려해 봐야하는데, 바로
흥행가치, 투자가치, 작품가치다.”
동시대 미술contemporary art을 포스트-개념미술(post-conceptual art)로 정의했던 피터 오스본(Peter Osborne)과 관련해 한글 자료가 뭐가 있을까 검색하다 우연히 들어간 웹사이트에서 접한 문장입니다. 여기서 동시대 미술이란 1989년을 (유럽 중심적인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시점인 베를린 장벽 붕괴를 위시한 구체제 붕괴를) 기점으로 삼아 그 이후의 세계에 관한 예술을 칭하는 것입니다. (한편, 이러한 ‘포스트-개념미술’ 이전인 1980년대엔 포스트모던 예술/미술이 존재했을텐데, 한국은 1987년 6월 민주항쟁, 88년 서울올림픽, 89년 해외여행 자유화 등을 겪으며 80년대를 마무리했죠.)
[아트리뷰]지가 매년 발표하는 미술계 파워100에서 2017년 1위를 차지한 (👈🏻 시니컬한 뉘앙스임을 미리 밝힙니다) 히토 슈타이얼은 저서인 [면세 미술Duty Free Art](2019)에서 최근 급증하고 있는 자유항구의 예술품 수장고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사실, 책 자체가 이런 비밀스러운 수장고에 의해서 영감을 받았다고 할 수 있죠.
중립국 스위스의 ‘환승 구역’에 자리잡고 있는 이곳은 특정한 국가의 관할에 속하지도, 속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없는 애매한 위치에 있어 확인이나 세금 부과, 추적 등이 불가능합니다. 스위스 뿐 아니라 룩셈부르크, 싱가포르 등 다른 곳에도 경쟁적으로 생겨나고 있는 이 시절에는 왠만한 대형 미술관, 박물관에서는 꿈꾸지 못할 작품들이 보관 중입니다. (그렇다고 추정됩니다. 확인이 불가능하니까요.)
슈타이얼이 쓴 책의 부제는 “행성 차원의 내전이 벌어지는 시대의 예술Art in the age of planetary civil war”입니다. 앞서 동시대 미술을 포스트-개념미술로 정의하고자 했던 피터 오스본은 2013년 [모든 곳 혹은 아무 것도 아닌Anywhere Or Not At All]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습니다. 누군가는 현대 미술? 동시대 미술? 사이에서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는 사이, 또 다른 어디선가는 포스트-개념미술, 심지어 면세-미술을 고민하고 있는 것이지요.
물론, 이것은 예술이 만들어지고, 유통되고, 감상되는 것의 근본적 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오늘 책의 주인공인 요셉 보이스(혹은 요제프 보이스)가 속했던 시대는 1980년대까지. 80년대까지였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실제로 보이스는 베를린 장벽과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를 목격하지 못한 채 1986년 1월 23일 영면했습니다.)
포스팅 앞에 기사와 동영상으로 소개한 ‘프랑크푸르터 하웁트슐레'(프랑크푸르트 중앙역이라는 뜻) 콜렉티브에게, 보이스는 심지어 아주 먼 구시대 – 식민주의! – 상징으로 활용되기 까지 합니다. 보이스가 ‘유라시안장대’를 선보였던 장소 중 한 곳인 앤트워프의 현대미술관 M KHA에서 열린 큰 회고전 [Greetings from the Eurasian](2017)을 우연히 관람했을 때, 저는 그가 현대 미술이라는 (혹은 동시대 미술이라는) ‘다신교’ 안에서 ‘신’으로 여겨진다는 – 혹은 그 전시가 그러한 것을 목표로 한다는 – 인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구글 포토 앨범 “2017.11.24 Joseph Beuys at M KHA – Exhibitions” https://photos.app.goo.gl/HLDrjJUXB2LbEBp76
책에 대해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며, 요셉 보이스가 현대미술교(敎)의 신 – 만약 신이 아니라면, 적어도 지금은 세상을 떠난 중요한 사제(司祭)라고 생각하고, 그의 작업과 활동, 그에 대한 평가를 2020년 서울에서 미술이라는 것을 생산하거나 감상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유용한 지표 혹은 참조점으로 삼아보았으면 합니다.
질문 혹은 생각할 거리
- 보이스의 작품 중 가장 와닿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 누군가는 보이스를 열렬한 예술가이자, 샤먼으로 혹자는 사기꾼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당신의 선택은?
- 보이스가 살았던 시대는 세계 대전 이후 경제적인 안정과 더불어 문화, 정치적 격변기로도 여겨집니다. 그 당시에 보이스의 미술을 본다는 것은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혹은, 우리의 2020년은 어떤 시기라고 여겨지게 될까요?
독서노트로부터
“이것은 결국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데에는 필연적으로 사회적 맥락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함을 의미한다.(…)맥락이 없는 인간의 행위란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 김OO
“관객들에게 이성보다는 직관과 영감을 요구하는 그의 작업이 난해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만 책을 읽으며 나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들을 섬세하게 다루는 보이스의 행위와,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숨죽이고 보는 관객들의 집중력과 공기의 고요함, 그 속에서 조용하게 폭발하는 에너지 같은 것들을 상상해보았다.”
– O유O
“지방과 펠트라는 재료에 대한 그의 설명 없이,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일까? … 하지만 보이스가 예술을 통해 이성과 행동을 통합할 수 있다고 보았다는 지점에서 바라본다면 또 달리 보인다.”
– 김OO
“어쩌면 혁명은 세월 속에 감춰져 있다가 먼 훗날 빛을 발할 지도 모른다. 그가 심은 7000그루의 참나무가 30여년 세월이 지나 뒤셀도르프 거리의 그늘이 되어주듯이. 그렇다면 이상적일지라도, 실패했을 지라도 혁명의 용기 하나만으로도 혁명의 존재 가치는 충분한 걸까.”
– KOK
“지난 시즌 백남준에 관한 책을 읽었을 때에도 느꼈던 것이지만 요제프 보이스가 살았던 시대를 잠깐이라도 살아보고 싶다는 것이다. 모두가 새로운 것을 갈망하고, 미술관에서는 이상한 행위예술이 매일같이 이뤄지던 그 시대를 산다는 건 어떤 기분이었을까?”
– OㅅO
“보이스는 미술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중요시하게 여기며 미술관은 단순히 수집과 보관, 전시로 한정된 장소가 아닌 서로의 정보를 주고 받는 토론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만약 이 개념이 명확했다면 오늘날 미술관의 설계부터 달라지지 않았을까? 라는 꽤나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 김Oㅇ
“예술에 관한 정의를 내려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던 때가 있었다. 예술과 문화가 한 덩어리처럼 혼재된 상태에서 무엇이 예술이고 무엇이 문화이고 또 무엇이 미술인지 얽혀있는 것 같은 실타래를 풀다가 그만 ㅈ 나왔던 기억이 책을 읽으면서 떠올랐다.”
– OOㅈ
“나에게 있어 현대미술의 매력은 전혀 연관 없다고 느낀 학문적 사유를 미술 작품에서 연관성을 찾아 내는 것이다. 그게 가끔은 과학, 마음공부, 경영 뭐 등등 살면서 배웠던 학문적 통찰이 미술과 어우러질때 희열을 느낀다.”
– COO
“작가는 요제프 보이스가 아닌 “우리가”혁명이다 라고 했고, 이는 요제프 보이스의 “모두가 예술가이다”라는 말과 일맥 상통하는 것처럼 보인다.”
– 김OO
솔직히 현대 예술을 공부하면 할 수록 모르겠다. 단순히 미학적 발견 속에서 인지적 확장성을 즐겼던 감상에 벗어나 여러 시대의 담론과 반박, 서로 교차하고 빗겨 가는 이론의 총체에 진입할수록, ‘아, 예술이란 이런 겁니다’라고 말하기 겁난다.
– OㅅO
“올해의 작가상은… 동시대의 가장 첨예한 미학적, 사회적 이슈들을 다루는 역량있는 시각예술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다…”
http://www.mmca.go.kr/exhibitions/exhibitionsDetail.do?exhId=202001090001231
– 김OO
내 식으로 정리하자면, 요제프 보이스는 이런 인물이 아닐까 싶다.
새로운 미술 사조와 양식과 개념이 우후죽순 솟아나고 사라지던 현대미술의 춘추전국 시대에 그 혼란과 다양함을 이용하고 활용해 자신의 입지를 확실히 다졌던 영리한 사기꾼 같은 예술가…^^
– OㅇO (놀러가기)
실상 예술이란 건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가 무엇을 의도했건 간에 작품을 감상하는 이가 어떻게 느끼고 감상자들에게 어떻게 회자되느냐가 더 중요한 게 아닐까 싶다. (요제프 보이스는 사람들에게 예술이 어떻게 회자되는지를 아주 잘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 ㅂOO
‘개나 소’와 ‘작가’를 구분하는 것
…
탁월한 질문의 산파
…
보이스의 퍼포먼스를 실제로 보던 당대의 관객들도 비슷하게 그의 행위에 ‘감전되지’ 않았을까.
– ㅂOO
…그런 의미에서 요제프 보이스가 예술 활동에 스스로를 철저히 소모했다는 것은 더욱 대단하게 느껴지면서도 마지막에 스스로를 뒤돌아볼 때 적잖은 감상이 들었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 ㄱOO
요제프 보이스는 사회적 조각이라는 표현에 자신의 열정을 바쳐 사회에 대한 헌신과 정의감 등이 넘어서지 못하는 한계를 사람들이 넘어설 수 있도록 만들어준 것이 아닌가 억지를 부려본다.
– OOO (놀러가기)
이전 시즌 읽었던 [세븐키]를 통해 알게 된 작품, [더 팩]의 이미지로 기억한다. …이 오브제들이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암시하는 개인적 상징으로 기능한다는 설명과 함께였다. … 당시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의 상황에서 그는 예술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겠다는 생각을 한다. ‘모든 사람은 예술가다’라는 문구로 표현되는 그의 사상은 확장된 예술 개념을 통해…
– ㄱOO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가는데 능했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잘 이용했다. 그건 우리가 아는 유명한 예술가들의 공통적인 속성인가보다. 백남준의 이야기를 들을 때나, 보이스의 이야기를 들을 때나 비슷한 느낌을 받은 건 그런 지점인 듯 하다. 특히나 보이스는 아방가르드한 저항정신의 작품을 만들어내며 혁명가 같은 이미지가 있었으나 그만큼 제도권의 혜택을 누린사람이니까 그 모순이 더 크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렇게 잘 이용하지 않고서는 <7000그루의 참나무> 전시는 불가능했을 것이고, 협조도 쉽지 않아 보이는 <나는 미국을 좋아하고, 미국도 나를 좋아한다>라는 전시는 생각도 못했을테다. 일단 보이스는 하고픈 것이 많은 사람이었으니까.
– S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