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이미지의 출처는 연합뉴스 2019년 보도 “”10년 모아야 한 채”…커지는 내집 마련 부담“)
내 집의 취향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이번 달로 산지 딱 4년이 되는 집입니다. 종종 이 이야기를 하면 놀라는 사람들이 있는데, 집에서 살기 시작하고 첫 1년 동안은 냉장고와 싱크대가 없는 생활을 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냉장고는 들이지 않았고 싱크대는 없앤 상태로 지냈던 것이지요.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어? 라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지만, 네, 저는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다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사실, 지금(은 월세로) 거주 중인 집 이전에 살던 곳은 더 본격적으로 수리를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유럽 여행 중 어느 미술관 화장실에서 보고 메모해두었던 변기가 호텔 공사 후 하나 남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 확보하는가 하면, 두꺼운 대리석 상판을 얹은 싱크대를 만들어보고 싶어 인도 어디에서 난다는 대리석을 구해 제작을 의뢰하기도 했습니다.
30대가 된 이후, 제가 사는 곳을 제 취향에 맞게 꾸며보는 건 저에게 일종의 포기할 수 없는 어떤 일이 되어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쉽지는 않았습니다. 예컨대, ‘플라스틱이라는 신소재’가 나와 유선형 사출 디자인이 가능하게 된 20세기 중반, Vico Magistretti가 Artemide를 위해 디자인 한 Triteti라는 조명을 구하기 위해 생각날 때마다 ebay를 확인하며 ‘잠복’하는데만 거의 반 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던 것이지요.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왜냐면, 저의 집수리는 4년이 지난 지금도 아주 조금씩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저의 DIY는 (약 500여 년에 걸쳐 완성된) 쾰른 대성당 혹은 (1882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여전히 건설 과정에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나 다름 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들어간 시간과 돈이 아깝지 않니? 라는 질문을 받기도 합니다.
네, 그리 아깝지 않습니다. 라고 대답하곤 합니다. 제가 ‘받아들일 수 없는’ 벽과 천장, 싱크대와 함께 생활하는데서 오는 스트레스가 더 클 것임이 너무나도 명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는 사이, 2018년과 2019년에는 매년 봄 열리는 밀라노디자인위크에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여러 이유로 다녀왔지만, 그 가운데 ‘내 집 꾸미기를 위한 영감 얻기’ 또한 밀라노 방문의 이유였습니다. (라고 말하면 역시나 당황하는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혹시, 당황스러우신가요…?)
당황스러운 부분이 있다면 역시 이런 점일 것 같습니다. 그렇게까지 해야 되겠니…? 라는 질문 말입니다. 역시나 저의 대답은: 네, 저는 이렇게까지 해야 직성이 풀리겠습니다. 겠지만 말입니다.
종종 절대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의 취향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못생긴 싱크대와 함께 사느니 1년 동안 싱크대 없이 살겠어’라는 마음을 먹게 된 제 취향 역시 누군가에게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것인지 모르겠고요.
취향taste, 이란 대체 무엇일까요? 이 단어의 한자어는 趣向입니다. 사전에서 풀어쓴 의미는 이렇습니다. “하고 싶은 마음이 쏠리는 방향.”
내 마음이 무엇을 하고 싶어하고, 어디로 쏠리며, 그 방향이 어디를 향하는 지. (저를 포함해)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이걸 명확히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명확히 안다고 생각은 하지만, 사실은 내가 그러하다고 착각하는 건 아닐까요? 나의 취향이란 사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취향이 아니라, ‘취향처럼 보이는 어떤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이번 달 모임을 위한 책 두 권 가운데 하나인 [취향의 자립](디렉터리 매거진 제6호) 109페이지를 한 번 볼까요.
취향과 호불호
질문은 이것입니다. “취향과 호불호를 잘 드러내는 분야는?”
답변은 이렇습니다. (경향이 강하게 드러나는 퍼센트 순서로)
- 대중문화 (70%)
- 물건 구입 (67%)
- 사회 이슈 (57%)
- 음식 (54%)
- 옷 (46%)
- 교육 (30%)
- 정치 (28%)
- 종교 (20%)
상위를 차지하는 네 항목 가운데 ‘사회 이슈’를 제외하면 모두 ‘소비, 구매’와 연결되는 것들입니다. 결국은 다 ‘돈으로 어떻게든 해볼 수 있는’ 것에 불과한 걸까요? (물론, 그렇지는 않다고 봅니다.)
내가 살아가는 공간의 의미
다음 시즌부터 “취향의 자립”으로 이름을 바꾸고, 제가 일하는 예술 분야와 다른 영역에서 활발히 일하는 손하빈 님과 함께 모임을 이어나갈 계획입니다. 최근 몇 시즌 동안은 의식주 – 즉, 입는 것, 먹는 것, 사는 곳에 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야기 해왔다면, 다음 시즌부터는 또 좀 다른 이야기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 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향’에 관해 논하면서 우리를 둘러싼 사물과 공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은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2020년 5~8월 시즌을 마무리하는 모임을 위해서는 “살아가기 위한 공간”, 즉 “집”에 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질문들, 생각할 거리
모임의 파트너로 활동 중인 지호 님이 독서노트에서 이미 좋은 질문들을 제안해주셨습니다.
1. 목가적인 집에서 자란 아이와 르네상스풍의 집에서 자란 아이는 과연 다를까요?
2. 스무 살 이전 친구들과 만나지 않는 이유로 든 ‘얘기가 잘 안 통한다’는 차이를 과연 취향의 차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 가치관이나 성향과 취향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3. “조카 부부가 사는 집을 본 숙모가 자신도 집에 있는 물건들을 다 갖다버리고 싶다고 하는 얘기를 듣고 예지 씨가 궁금해한 게 있었죠. ‘그 물건을 좋아하기 때문에 집에 둔 게 아닌가요?’” 👉🏻 집에 물건을 둔다면 그 기준은 무엇일까요?
이 질문들에 살짝만 스핀을 걸고 방향을 조금만 바꿔 다시 생각해봅시다.
1. 목가적인 집에서 자란 아이와 르네상스풍의 집에서 자란 아이는 과연 다를까요? & 내가 살았던 집들은 어떻게 생겼는지, 생각해볼까요? 그것이 나에게 준 영향은 어떤 것이 있을지도요!
2. 성향과 취향은 어떻게 다른 거죠? 정답은 없다지만, ‘취향’이라는 것에 대해 나름의 / 각자의 정의를 (함께) 내려볼까요?
3. 나는: 미니멀리스트이다 vs 맥시멀리스트다. 혹은, 제3의 길을 걷고 있나요…?
여러분의 독서노트
위 질문과 생각거리를 염두하며, 각자의 독서 노트를 함께 보았으면 합니다. 소리내어 읽고, 생각을 공유하거나 의견을 덧붙여봅시다.
OㅈO님의 노트.
‘살고 싶다’와 ‘사고 싶다’의 간격은 정말 어마어마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놀러오기’로 오늘 모임에 함께 해주신 OHO 님의 노트에서 발췌.
그리고, KOO 님의 노트. 글의 제목은 “잠시나마 자유로운 꿈을 꿨다” 입니다.
“후회는 없다.” 그리고 아래는 COO님의 노트.
그리고 오랜만에 뵙는 KOB 님의 노트.
마지막으로! 파트너, 지호님의 노트에서 발췌.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