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고은, 박재용의 발제 노트를 읽고, 곧장 시작합니다!
몇 해전인가 해외 비평가가 나에게 묻길, 한국 사람들은 백남준을 ‘한국인’으로 생각하느냐?라고 했다. 그때는 당연하게도 또 별 망설임없이 ‘그렇다’고 대답했는데, 이후에는 종종 그 질문에 대한 전혀 다른 생각들이 맴돈다. 그는 인류사에서 가장 빠르고 어지럽게 흘러간 시간의 대부분을 살아냈다. 그점이 백남준을 ‘백남준’으로 만든다. 1932년에 태어난 백남준, 한국전쟁이 시작되기 전인 그의 나이 약 15세에 일본으로 건너간다. 대학에서 작곡과 음악사를 공부한 그는 24살(1956년) 독일로 유학을 떠났고 1960년 그 유명한 플럭서스(Fluxus) 활동을 시작한다. 이후 우리가 익히 알아 온 그의 작품 ‘TV 붓다’, ‘달은 가장 오래된 TV다’, ‘TV 정원’, ‘TV 물고기’ 등을 제작하며 1982년 그의 나이 50세에 뉴욕 휘트니 미술에서 ‘백남준회고전’을 연다. 그가 한국에서 실제 활동한 시기는 1990년 부터 매우 간헐적이다.
그런 백남준에게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독일관에 참여작가로 선정된 것은 뜻 밖에 일이 었나보다.
백남준: “나를 선정해 주어서 무척 영광이다. 그런데 독일같이 큰 나라에서 어떻게 나 같은 작은 한국인을 뽑을 생각을 했나? 나에게는 독일 패스포트도 없는데. 게다가 이번 비엔날레는 독일 통일 후 첫 전시라서 보통 같으면 동독출신 작가 한 명과 서독출신 작가 한 명을 선정해서 참가시킨다는 생각을 할텐데.”
클라우스 부스만Klaus Buβman: “만약 동쪽에서 한 사람을 택한다면 아예 아주아주 먼 동쪽인 극동지역 작가로 독일에 거주했던 한국인을, 그리고 한때 동독에서 살다가 아주 아주 서쪽인 현재 미국에서 살고 있는 독일작가를 선정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가 마치 동쪽에서 온 미래인으로 작업했던 ‘비디오 아트’는 단순히 예술의 어떤 매체를 발견한 일이라기 보다는 “게임에서 이길 수 없다면 규칙을 바꿔라”라는 생각에 기반한 매우 전복적인 활동이었다. 그는 기술이 압축하는 세상의 에너지로 인해 인간의 몸과 세상의 권력, 모든 지정학적 한계들을 극복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진심으로 그런 세계가 이미 도래했음을 믿었고, 그 믿음대로 살았다. 그러나 그의 이런 생각은 황홀했던 1960년대를 지난 점점 잦아들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는 미치광이 혁명가이기보다 존경받는 ‘전문 예술가’로 활동했다.
1980년 백남준의 인터뷰는 여전히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에 가득찼지만 그는 이런 인터뷰를 남기기도 했다.
린 허스만 리손Lynn Hershman Leeson: 만약 사람들이 당신을 대통령으로 뽑아 준다면 당신은 어떻게 세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나?
백남준: (…)파라다이스를 만드는 일보다 파라다이스에 가는 일이 더 쉽다. 죽는 것은 세상을 파라다이스로 만드는 것보다 훨씬 싸다.
– 송고은
지난 해 말 받았던 심리 분석 세션에서, 저는 ‘이른 갱년기’가 온 것 같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인지, [나의 사랑 백남준]을 보면서 몇 번 눈물을 짓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예술(가로 산다는 것)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하는 구절들도 적지 않았죠.
“미술보다는 음악을 가까이 하고 살았던 사람”(22쪽)
“당시 도쿄대학을 나왔다는 것은 보수 엘리트 계층 출신이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50쪽)
“당시 한국에서는 이름조차 생소한 파인애플이었다. 난리통에도 이런 귀한 과일이 있었다니, 참으로 희한한 집안이었다.” (61쪽)
“2층에 자리 잡은 본부는 말만 거창했다 사실 마키우나스의 개인 사무실이었다.” (86쪽)
사실은 내가 그 퍼포먼스를 하고 싶어. 그런데 난 남자라 불가능하잖아. (중략) 내가 시게코에게 이런 공연을 해달라고 부탁한 사실은 비밀에 부쳐줘.” (108쪽)
“자네의 멋진 전보. 10000000000000000000번 넘게 고맙다네.” (117쪽)
“남준이 황병기를 알게 된 건 그의 누나를 통해서였다.” (117쪽)
“어쨌든, 죽는 건 늘 타인들이다.” (179쪽, 뒤샹의 묘비)
“‘미술의 나라라는 프랑스, 그것도 뒤샹이 묻힌 루앙 묘지 바로 앞에서 장사를 하는 여인이 현대미술의 아버지인 그를 모르다니.’”(179쪽)
“구겐하임 관장 토머스 크렌스가 독일관에서 남준의 작품을 보고는 2000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남준의 회고전을 열자고” (236쪽)
“여기에 타틀린의 <제3인터내셔널 기념탑>을 닮은…” (264쪽)
“백악관 국빈 만찬이라는 게 평생에 한 번 가볼까말까 하는 기회인데 이왕 갔으면 해볼 것 다 해봐야지.” (300쪽)
– 박재용
“(백 하쿠타에 관한 이야기 관련) 사람 일이 다 그렇다지만 감동을 감동으로 남겨두기란 쉽지 않다.” – 유OO
“제가 몰라뵈었습니다.”
32년생 한국인으로 어딜가도 당연히 소수자였을 백남준에게서도 그다지 소수자로서의 괴로움이나 그에 따른 고민이 보이지 않아 신기했다. 스스로의 재능에 대해 확신했기 때문에 그런 자잘한 것이 신경쓰이지 않을 것일까? – ㅎOO
“무엇이드니즘(!) (중략) …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재 신화에는 석연찮은 부분도 존재한다. “만들어진 승리자들”이라는 책이 있다. … 책 “나의 사랑 백남준”을 읽고 구보타 시게코가 없었다면 지금의 백남준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마 남편 백남준의 천재성이 지나치게 부각되도록 책이 편집되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본다. (중략) “백남준이라는 브랜드 아래서 한 팀을 이룬 두 사람” (중략) 그동안 단지 국뽕인줄로만 알았던 백남준을 이제라도 제대로 알게되어 다행이다. – 김OO
“대단한 옛날 사람.”
“동시에 ‘그런데 지금은?’ 이라는 의문이 떠올랐다. 그때는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시도지만, 지금 시대에 비슷한 작품을 한다면 그냥 아류작이고 시시한 것이 될 가등성이 높다. 결과적으로 백남준의 작품은 시대적인 맥락이나 의미와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결국 텍스트 속의 예술이 되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같은 조각상은…(후략)
백남준이 한 작업과 그가 살아온 배경이 크게 괴리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중략) 백남준이 뭔가 어려운 일을 하려고 할 때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짠하고 경기고 동문들이 나타난다. (후략)”
“상투성을 향한 공격성”
“예술은 공격성, 관객이 으레 그럴 것이라고 믿는 상투성을 향한 공격성을 통해 뚜렷한 활기를 얻는다.” (손택)
“왜, 천재들은 고장만 스프링클러처럼 사방에 매력이나 페로몬을 ‘뿜뿜’ 발사하고 다니지 않나. 아닌 밤중에 코 꿰인 시게코 같은 사람들은 기꺼이 뒤치다꺼리를 자처하게 되는 노릇이고 말이다. (!!) (중략) 가만보면 사랑도 재능이다!”
“천재들은 아무렇거나 살아도 ‘어쩔 수 없이 발견’되는 걸까, 아니면 우리가 ‘원조하게 발견된’ 천재들만이 알게 된 걸까.”
– 박OO
시게코의 시선에서 작성한 것이 아닌 자서전이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궁금증도 함께. (그리고 왜 남성 위인들 옆엔 서포터 홀로서는 대단한 여성들이 있는 것일까.) (후략)
“인생은 싱거운 것입니다. 짭짤하고 재밌게 만들려고 하는 거지요.”
– 최OO
이것은 한 여성의 사랑 이야기일까?
… 가끔은 백남준을 통해 시게코를 말하는 것 같은 건 그냥 느낌인걸까. 시게코는 자신의 사랑 백남준의 이야기를 통해 너무나 자신의 삶과 예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독후감을 쓰기 전에 들었다.
– KDY
이 책을 통해 이처럼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내고 기존의 관념이나 관습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사조를 만들어내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 MOO
그의 예술작품 혹은 행위라는 것들을 읽다가 공연 도중 나간 관객처럼 책장을 여러 번 덮었다. 범죄와 예술 중간을 오가는 듯한 그의 사상이 나는 궁금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특수한 환경을 고려하니 숨을 한 번 삼키고 책을 다시 펼칠 수 있었다. 그의 천재성과 집중을 전혀 다른 학문에 쏟았을 때, 완벽한 시기와 맞물려 펼쳐진 그의 잠재력은 놀라웠다. 이제까지 읽었던 전형적인 미국 혹은 유럽의 스타 예술가의 삶이 아닌 한국인 스타 예술가의 삶은 새롭고 놀라웠다.
– ㅎOO
“누구의 안사람도 아닌, 구보타 시게코”
“요코는 가장 알려지지 않은 유명한 예술가가. 거의 모든 사람이 그녀의 이름을 알지만 그녀가 무엇을 하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존 레논이 오노 요소에 대해 한 이야기다. 이렇듯 유명한 예술가의 여자는 본인만의 이름을 갖는 일이 쉽지 않다. (중략) 아니 2020년에 백남준이요? 아니 이 무슨 철이 지나도 한참은 지난 유행가 같은 그 이름, 백남준이요? 그 국현 과천관 입구의 못 생긴데다 심지어 커다랗거나 말로 다 할 수 없는 그 작품 (이름이 다다익선인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의 주인공이요? (후략) 나에게 눈에 들어오는 이름은 백남준이 아니라, 이 글을 쓴 미디어 아트 작가 구보타 시게코였다. (중략) 동시대에 극동아시아에서 태어나 최선을 다해 ‘편한 팔자를 스스로 꼬기로 선택한’ 일본 할머니의 이야기가 훨씬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 OSH
“하지만 백남준과 나의 세대 차이는 어마어마. 어찌됐든 나는 지금의 눈으로 백남준을 보고 있으니깐. (중략)
백남준이 요즘 사람이었다면?
성공요인
1) 선구자적인 면모
2) 엄청난 추진력
3) 놀라운 스타성
실패요인
1) 그 당시의 시대적 배경
2) 어쨌거나 옛날사람”
– SOO
“시리얼 쇼커, 백남준”
“오늘의 1분 지식코너! 잠깐 ‘유전자 조작’을 소개해볼까 한다. (중략. ‘전기천공법’에 대한 소개) …이렇게 합체가 되면 세포 안에 원래 존재했던 도구들을 통해 DNA는 특정 기능을 가진 완성품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뜬금없겠지만, 미디어아트가 첫 선을 보인 <음악의 전시>에서 갤러리 현관에 황소머리를 달아 그 충격요법으로 관객의 의식을 각성시키려 했다는 에피소드에서 전기 천공법이 생각났다면 조금 이해가 가능할까?
– 이OO
- 백남준의 작품 중 실제 본 작품이 있나요? 있다면 어땠는지,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이었나요?
- 구보다 시게코처럼, 유명 예술가들 주변에는 항상 이런 증언자와 목격자가 있는 것 같아요. 이들의 말은 얼마나 신뢰 할 수 있을까요? 사실만을 기록하는 완벽한 회고록은 가능한 걸까요?
- 아이 한 명을 기르기 위해선 하나의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위대한’ 작가 한 명이 탄생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해요. 무엇이, 필요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