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안에서 8년, 밖에서 8년을 지낸, 옛 동료분과의 대화 중 일부를 정리해 공유해보는 것. 국공립 미술관에서 일하셨고, 이제는 육아와 사업에 집중하고 계신 선생님과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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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중소형 전시들… 기가차지 않아요? 한 5년, 10년 전까지만 해도 안 그랬던 것 같은데.
미술계는 지금도 단발성으로 프로젝트 하고, 책임지는 사람은 없고.
미술관 건물만 있는 거지, 히스토리는 파편화되어 있는 거잖아요.
병적인 양적 팽창.
재용씨가 말한 공공성에 대한 의식 부재라는 거… 그건 너무나 이기적인 것 같아요.
사람이, 자기가 몸 담은 것만 보이잖아요. 내가 아기 엄마다 보니까 – 한참 아이 데리고 돌아다닐 엄마다 보니까, 향유자로써, 또 아기 엄마고 하다 보니 – 너무 향유할 뭔가가 없어요. 한국에 분명히 기형적인 부분이 있어요. 교육도 보면 특정하게 치우친 부분에서 굉장히 미쳐 돌아가면서 투자되는 부분이 있고, 정작 필요한 어떤 부분은척박한 거에요.
그래서 나는 (아이 데리고) 성인들이 볼 전시를 많이 데리고 다녔어요. 어느 정도, 아이가 아직 꼬마니까, 시각적으로 화사해야 하고, 데리고 다니는 가운데 작품을 앉아서 오랜 시간 관람하는 건 볼 수가 없지. 그러니까 영상 작품같은 건 힘들고, 트래디셔널한 것들, 회화나 조각이라던지… 근데, 그런 걸 보여줄 전시가 그닥 없는 것 같아요.
주로 국립중앙박물관, 서울시립미술관, 이렇게 큰 곳들 데리고 다녔거든요? 근데 뭐랄까. 어떤… 흐름이라고 까지 하기는 그렇고. 어떤 맥이 있는데, 공공미술관이 명확한 성격이 있거나, 특정한 타겟층이 있거나, 1년 동안의 전시 스케쥴이 명확한 타겟과 방향성을 가지고 가는 느낌이 없는 것 같아요. 연간 계획이 되었든, 무엇이든. 그래서 이런 것들이 결국 정치적인 결정에 따른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저와는 멀어지는, 그들 만의 잔치라고 느껴지고. 내가 (미술계) 안에 있을 때는 내 일이니까 하라는 데로 했던 건데.
그러다 보니 예전에는 발도 안 들이던 예술의 전당이나 DDP 전시에 가요. 그런 전시들이 차라리 명료한 거에요. 흐름이나 맥락 고려할 필요도 없고. 그러니까, 어떤… 예전에 서울 안에서 내 발 딛었던 곳에는 안 가게 된 거에요. 미술계 밖 사람들이랑 이야기해보면, 같이 차 마시고 어디 가보고 싶다 하면 – 대림미술관 같은 곳에 가는 거에요. 한 마디로, 일전에 재용씨가 이야기했던 취향의 반영같은 것? 명확한 취향을 재생산 해주는 거지.
“국립현대미술관 같은데서 ‘올해는 이런 방향으로 가겠습니다’ 이런 게 없으니까?”
되게 얕은… 솔직히 내가 봐도 무슨 이야기하는지 잘 모르겠는 전시라면 – 왜, 전시 보는 사람들의 층위가 다양하잖아요? 지금 나는 미술계 인사이더가 아니라 선행 경험이 있는 향유자잖아요. 이게 어떻게 보면 마케팅 혹은 기획 부분에서 그런 부분을 고려하느냐 안하느냐의 문제일텐데, 일종의… 랜덤한 관람객에게 신경을 안 쓰는 것 같아요. 근데 그건 아마 결국 예산의 문제겠죠?
사람들 홀리는 인스타그램용 전시가 아니면 미술계 인사들끼리 잔치를 열고 다른 사람들은 오든지 말든지 하는. 그래서 저도 이제는 자세히 볼 마음의 여유가 없는 거에요. 그러다 보니, 브랜드 이미지가 굳어진 곳에 사람들이 모이는 거에요. 예술의 전당이나 DDP, 대림미술관 같은. 오히려 아이랑 다니는 전시는 그런 곳에 다니는 거에요.
공연같은 경우는 ‘아시테지’ 같은데 다니는 거에요. 아동 연극 축제인데, 혜화동에서 해요. 아르코와 함께 진행하는 건데, 분기별로 굉장히 재미있는 연극, 공연 같은 걸 – 일종의 축제같이 보여줘요. 되게 재미있어요. 아니면 차라리 발레 같은 걸 보러 가거나.
미술계에서도 사람들이 재미있는 걸 많이 하는데, 제가 모르는 거겠죠 어쩌면? 그래서 궁금한 거에요. 지금도 종종 연락하는 미술 쪽 사람들이 있는데 – 이제 떠난 지 거의 10년 됐잖아요. 근데 사람들이 다 생활인으로 살고 있는 거에요.
다들 주니어에서 시니어까지 (이렇게 말하니 너무 늙은 것 같은 느낌이지만) 다들 못 버티고 떨어져나가거나 조직에서 녹을 받잖아요. 그러니까, 판이 좁은 거에요. 어떻게 보면 프리랜서도 일하는 남자도 이 나이대에 많지 않죠?
“사실 잘 몰라요. 어떻게들 지내고 있는지? (웃음)”
아무튼 나는 너무 대단해 보여. (미술계 안에서) 방향 가지고 이렇게 가는 게.
“(아직도 미술계에서 일을 하는게) 과연 대단한 걸까요? 어던 주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선생님 말씀을 들어보니) 이해가 좀 가요. 왜 그렇게 사람들이 예술의 전당에 가는거지? 했거든요.”
그러니까 영화관 가는 것처럼 (예술의 전당 전시에) 가는 거에요. 모든 게 이해가 가니까. 10년 전에 당시 서울시립미술관 관장이 바뀌고, 르누아르 전시 이런 거 많이 했잖아요. 그땐 그런 거 하면 안 갔잖어요. 근데 이제 아기를 기르니까 가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전시들도. 교과서적으로, 아이 때는 고흐같은 거 보여줘야 한다 이런 게 있는 건 아니지만, 클래식 페인팅 전시를 하면 보여주지 않을 이유는 없어요. (미술계 안에 있을 땐) 그런 전시를 하면 되게 그렇다고 생각하잖아요. 재용씨나 나는 한국 밖으로 나가서 볼 수도 있고.
베니스 비엔날레 하던 해에 아기랑 같이 베니스에 갔어요. 그런데 아기랑 가면 현대미술 보는 게 고난의 행군이에요. 호텔에 여섯 시에는 들어가서 일곱 시에 아기 재워야 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안돼. 근데 서울에서 피렌체 미술관에서 뭐가 왔다하는전시를 하잖아요? 이젠 그러면 가야 하는 거야. 브루노 무나리 전시? 이제는 하면 가요. 관람객이 그리 많지 않다고 하면, 나는 이제 르누아르 전시 이런 데는 데려갈 용의가 있어요. 자코메티 전시 같은 거 하고 그러면요, 가서 전시 보고, 아기랑 아이스크림 하나 먹고, 아기랑 ‘저 조각은 왜 저렇게 삐쭉삐쭉해?’ 하고 할 이야기도 있고.
지금도 미술계에 불만은 많은데, 그게 전시의 짜임새에 대한 거라기 보다도 – 예전에는 눈길도 안 줬는데, 이제는 좀 다른 거 같아. 오히려 예전에 미술계 안에서 사람들 항상 만나던 때는 지나쳐버렸는데. 미술계 안에서 일하면 주변에 새롭게 만나는 사람이 많잖아요. 그런데, 뭔가를 공유하는 작은 그룹 내부의 사람만 만났던 거야. 불만의 지점도 비슷하고.
그런데 미술계 밖에 완전히 나와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 하다보니, 사람들이 바라는 바가 다른 것 같아요. 전시 이야기를 나누더라도, 내가 미술 일 했다는 말 할 필요도 없기도 하지만, 관람객들도 자기 나름대로 전문직을 갖고 있고 어느 정도 생활 수준이 있으니 뭔가를 향유하고 그럴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에요. 음악회 같은 거 보면 – 손열음, 요요마같은 사람들 공연을 하면, 사람들이 ‘아, 그렇지’ 하고 알죠.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훌륭한 사람들이 공연한다고 해서 사전 스터디를 하고 보러 가기는 힘들잖아요. 근데 미술 전시들이 그런 것 같아. 나만 해도 그런 여유가 없어. 내 시간 내서 가기 어렵고, 가족 단위로 가기가 힘드니까. 그래서 예술의 전당에 전시보러 정말 많이 갔어요.
이제는 저도 비엔날레같은 전시들 좀 보러 가고싶어요. 아기도 좀 컸으니까. 그런데 전시가 열리는 곳 안에서의 동선이나 숙박이랄지 그런 정보가 부족해. 아이 데리고 가면 사전 정보 없이는 보기 힘들거야. 사실 올해 생각했죠. 이제 애가 어느 정도 컸으니 데리고 가볼까, 아니면 혼자 가볼까, 하다가 그만뒀지. 포기!
“사실 기획 과정에서부터 이런 생각을 깊이 해야 하는데, 할 틈도 안 주고 할 마음도 없죠.”
매우 거칠게 이야기하는 건데, 해외 전시, 박물관 다녀보면 – 모자라지 않은 방식으로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게 해 주잖아요? 뭔가 크게 괴리 없이 – 어린 관객만 아니라 일반 방문객도 자기가 아는만큼 보고 가도 괴리감 없도록.
지금은 미술계 아웃사이더된 입장에서 느끼는 건, 미술 전시가 이분화된 것 같아요 이제. 인사이더들끼리 자기들끼리 진짜 재미있고 할 말 하는 전시와, 소위 인사이더들은 관심 없는 – 한 마디로 (미술)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전시. 명료하게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전시라고 레이블 붙인 행사들이 있죠. 중요한 작품 하나 가져다놓고 나머지 작은 작품들 주르륵 배치해둔, 주말에 관객 붐비는 전시들. 이렇게 이분화된 것 같아. 그래서 나만해도 국립현대미술관보다 국립중앙박물관을 더 많이 보는 것 같아.
“참, 서울역사박물관도 재미있는 전시를 많이 해요.”
(미술계 바깥의 삶에 관해) 미술계 밖으로 나와봐야 결국 콘텐츠만 바뀌지 다 똑같아요. 내가 견지하는 앵글, 이런 게 그대로 오더라고. 나를 둘러싼 외류만 바뀌지. 인더스트리만 바뀌는 거죠. 세상을 해석하는 앵글, 프레임을 짜는 방식 – 이런 게 그대로 따라와요. 일을 하면서 진화를 하고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게 있겠지만, 그건 – 내 안에서의 어떤… 자기 진화랄까. 그러니까 ‘혹성탈출’은 불가능하다는 거.
“영화 ‘혹성탈출’에서도 결국 혹성을 벗어나지 못하잖아요.”
…아기 낳고 1년이 딱 지나고 나니까, 아기 돌이 지나고 나니까, 미술계에서 다시 일하자고 연락이 많이 오는 거에요. 근데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들 정말 아기를 안 길러본 사람들인 거에요. 돌이 지나고 나서 1년 동안만 다섯 군데서 연락이 왔어. 그런데 미술계 나오고 나서 2년 정도 지나니까 아무 곳에서도 연락이 안 오는 거에요. 그러니까 아기 낳고 한 2년에서 3년까지 – 내가 일 제안을 다 거절하며 생각한 게, 아이 기를 때 세 살 세 살 하는게 이유가 있어요. 만 3년까지는 정말로 엄마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더라고요. 그런데 3~4년 지나고 보니 모든 게 정말 너무 아득하고, 미술계의 생활 패턴이 정말 매칭이 안 되는 거에요. 나의 개인적 삶이랑 미술계의 어떤 루틴을 어떻게 맞출 접점을 도저히 못 찾겠더라고요. 집에 오래 있다 보니 기동성도 떨어지는 걸 수도 있고. 그러다보니 그냥 생각을 접게 되고. … 하고서는 내년이면 벌써 아기가 학교엘 가요.
내가 미술계에서 일한 게 거의 10년인데, 그만큼 일을 쉬었어. 이제는 미술계가 – 내가 가야 할 생각이 전혀 안 들어요. 미련이 없다 이런 거라기 보다, 희미해지는 거죠. 미술이 아닌 또 다른 파도를 타고 다른 데로 멀리 온 것 같아요. 시간이 그렇게 무서워.
“이야기 들어보면 참 어쨌든, 미술도 세상의 일부에요.”
(미술계도) 다른 업계, 직장이나 마찬가지고. 결국 하나의 작은 사회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