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아냥 –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

1985년에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에는 저자인 David Bayles와 Ted Orland도 자신들이 쓴 책이 이렇게까지 엄청난 호응을 얻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것 같습니다. 심지어, 초판을 낸 Capra 출판사가 책을 내고나서 없어져서 이후의 에디션은 다른 출판사를 통해 출간되기까지 했습니다.

초판본의 표지 (1985)

책의 원제는 이렇습니다. [Art & Fear: Observations On the Perils (and Rewards) of Artmaking] 직역하면 이 정도가 될 것 같아요. [예술 & 공포: 예술만들기의 어려움에 (그리고 보상에) 대한 견해]. 저자 두 사람이 40~50년대 생이고, 책을 낼 즈음에는 40~50대였다는 점, 두 사람 모두 사진가였다는 (지금도 활동 중이라는) 점 또한 특기할만합니다. 원래 1985년에 출간되었던 책이 미국에서는 2001년에 다시 출간되었다는 점 역시 그렇습니다. 한국에서는 2006년에 번역판 1쇄가 출간되었고, 2012년에 개정 번역판이 출간되어 2020년까지 12쇄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정말 베스트셀러 – 그보다 스테디셀러라 할 만 한 책이죠.

사실, ‘이런 종류’의 책은 심심찮게 출간됩니다. 예술가의 길에 들어서는 이들, 예술가라는 (혹은 예술 종사라라는) ‘특이한 종류의 인간’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이런 책의 독자가 되는 듯 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책도 있지요.

코로나19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간 건지 실감이 나지 않는, 2020년 1월~4월 ‘시즌’의 마지막 책인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를 함께 읽은 모임은 이렇게 진행하려 합니다.

  • 근황과 그간의 예술 생활 공유, 모임 전 함께 본 전시에 대한 코멘트
  • 책에 대한 전반적 인상, 감상 나누기
  • 질문, 발제 노트 함께 살펴보기
  • 멤버들의 독서노트 발췌한 것들 돌아가며 읽고, 의견 나누기
  • 시즌 전반에 대한 코멘트, 다가올 시즌에 기대하는 것들이 있다면 공유
  • 마지막 모임 사진으로 기록하고, 가능한 사람들은 함께 식사(?)

송고은의 노트

과학자와 예술가의 공통점을 (굳이) 찾는 대화에서 과학자의 “항상적열망”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쉽게 말해 연구의 실제적인 결과나 목표와는 별개로 과학자 개인이 갖는 과학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을 뜻하는 것이다. 세상의 인정에는 무심한 듯 스스로에게 납득할 만한 결과를 얻기위해 노력하는 예술가의 모습과 닮아 있다는 이야기 였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 각자의 역할에서 그런 모습을 갖고 있는거 아닐까?

이 책의 이야기는 그런 우리의 모습을 다시 기억하게 해준다는 의미에서 꼭 예술가들에게만 유효한 책은 아니다.
특히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세계가 열리는 상황에서 예술적 사고는 더욱 주요해지는 듯 하다.

사이버네틱스 학자인 그레고리 베이트슨은 “예술, 종교, 꿈과 같은 현상의 도움을 받지 못한 오로지 목표지향적인 이성은 필연적으로 병적이고 생명을 파괴한다 는 것, 그리고 인간의 목적이 지향하는 것 처럼 의식이 회로의 일부만을 볼 수 밖에 없는 동안에 그 독성은 (…) 삶에서 분명 솟아나온다.” 라고 했다.

몇 몇의 뛰어난 예술지상주의자들이 말하는 “미래를 위한 정신적 총 연습” 혹은 정신적 진실이 드러나도록 하는 “이탈 증폭 체계”와 같은 어마무시한 단어로 예술의 중요함을 주장하진 않더라도 예술은 분명 삶의 ‘이상한 도구’로써 우리의 세계를 확장 시킨다.

박재용의 노트

타고난 재능이란, 유통기한이 있는 그런 종류의 것일 뿐인가봐요.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사람들을 보면 볼 수록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기회는 정말로 ‘우연’인 것처럼 보이는 계기를 통해서 주어지는 것 같습니다. 혹은, 기회라고 할 만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시간이 지난 뒤 과거의 어떤 분기점을 ‘기회’였다고 규정하는 것인지도요.

저는 오랫동안 한 달에 한 두 번 정도 조깅을 하다가, 올해 들어 일 주일에 한 번 정도씩 뛰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일 주일에 두 번, 일주일에 세 번으로 빈도를 늘리고, 지난 주부터는 가능하면 매일 조금이라도 숨이 찰 때까지 달려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매일 숨이 찰 때까지 뛰어보는 일을 몸에 익히기 시작하자 이 일이 그렇게 힘들지 만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모임이 있는 오늘 아침에는 작은 실험을 하나 해보았습니다. 경복궁 주위를 한 바퀴 돌며, 발 아래 보이는 보도블럭 O개 만큼만 힘을 내서 달려보는 것이었어요. 역시나, 놀랍게도, O개 만큼만 보폭을 벌려 달려보다가, O+1개 만큼 보폭을 벌려 달려보니 어느덧 생각지 못해던 만큼 더 먼 거리를 더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미술 이야기를 하지 않고 왜 달리기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모임을 준비하며 책을 다시 훑어보면서, 저는 줄곧 지난 한 달 사이 익힌 달리기 습관을, 지난 해 언젠가부터 시작한 또 다른 몇 가지 일들을 줄곧 생각했거든요. 혹은 이 책은 이번 ‘시즌’ 첫 모임을 위해 함께 읽은 [예술가의 공부]를 떠올리게 하기도 합니다.

천재적 예술가는, 손쉽게 생각할 수 있는 낭만주의적 천재라기 보다, ‘노력과 꾸준함을 발휘하는 재능을 지닌’ 작업자인지 모릅니다.


오늘의 생각 거리 – 질문

  • 내가 생각하는, 예술가 (혹은 큐레이터, 예술계 종사자)의 전형archetype, stereotype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 내 삶 혹은 생활에서 존재감을 가지고 존재하는 예술이 있나요? 그것은 어떤 형태를 띠고 있나요? (아주 간편한 예로는, “저는 집에 이런 작품을 두고 있어요.” 라고 대답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다양한 대답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 책의 181쪽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이 작품을, 전시를, 공간을 본 뒤에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경험을 안겨준 것이 있다면…? (미술에만 한정해서 생각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여러 분의 독서노트 발췌

제목은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 이지만 읽어보니 이거저거 다 두렵다. … 읽고난 소감은, 예술가란 병 걸리기 딱 좋은 직업이라는 것이다.

– HOO

다수의 길을 쫓지 않는 건 보장된 외로움의 길이다. … 하지만 타인으로부터 이해가 아닌 스스로에게 이해를 구하고 가는 길이니 마음만은 편하길 바라본다.

OBO

예술가들은 특별히 괴기한 과정을 지나며 작품을 만들 것 같지만 어떤 꾸준함과 실수를 성장으로 바꿔가는 과정이 다른 업과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았다 … 물론 그들은 나와 같은 일반인과는 다르다. 타고난 재능을 (아마도 대부분) 지니고 일이 완성되는 방식으로 생활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기꺼이 그들의 세계를 궁금해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데이비드 베일즈는 결국 스스로에게 납득할만한 작품을 만드는 것이 예술가가 나아가야 할 길이며 두려움을 거둘 방법이라는 말을 하고싶은 것 같다.

– HHO

원래 인간은 창작 행위를 통해 순수한 기쁨을 느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인류는 그렇게 진화한 것 같다. 그러나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인에게 창작 행위는 생존의 수단이 된다. 작품은 상품이 된다. … 결국에 그 문제, 많은 예술가가 중도하차하는 문제는 사회적 문제다. 예술가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대중의 인식과 문화, 그리고 사회 시스템의 몫이다. … 고도의 노동 자동화와 기본소득 등 안전한 사회 시스템이 만들어낼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 KOO

“두려움을 넘어야 기쁨을 얻는 예술가”
책에서 가장 공감되었던 부분은 아티스트의, 작업의 솔직성에 관한 부분이었다. … 무대 위의 배우들의 연기를 볼 때와 마찬가지로, 어떤 마음으로 자세로 작업했는지 관객들, 관람객들은 너무나도 잘 안다.

– ㅈOO

…다소 경건한 마음 자세로 읽게된 책. …”첫 문장을 시작하기가 그토록 힘든 것은 그 첫 문장에 대한 집착 때문이다” (p.39)

– OOO

‘조언’이라는 것은 왠지 자기계발서를 떠올리게 해 괜히 불안했다. 하지만 읽으며 느낀 점은 ‘매운 맛’이 추가되었구나라는 사실. 용기를 북돋아주는 듯하면서도 현실의 ‘매운 맛’을 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계속 상기시켜준달까?

– SOO

창작을 하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확신이 사라지게 되면 차츰 남의 말이 귀에 들려오기 시작하며, 작품이 이해되고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생기는 순간, 예술 창조에서의 의사결정권이 타인의 손에 넘어가고 만다는 예술가의 혼란은 삶에 확신이 들지 않고 선택의 순간에 자신의 행동이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마음이 아닌 타인의 생각에 흔들리는 우리 삶의 모습과 닮아있다. 어쩌면 태어나 열심히 매순간을 살아가는 우리는 시간의 예술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 KOㅇ

예술에 있어 평범함은 확실히 무의미한 것이니까. 하지만 자신의 예술이나 자기 자신에 대한 몰이해는 누구도 겪고 싶지 않은 문제가 아닐까.
…끝을 알지 못하는 문장을 시작하고, 마무리할 수 없을지 모르는 헛소리에 불과할 지라도 어쨌든 ‘계속해 나가는 것’이 얼마나 용감한 일인지.

– ㅂO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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