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첫째 날의 [미술아냥] 모임은 배우 스티브 마틴이 쓴 소설 [레이시 이야기](An Object of Beauty, 2010. 번역본 2013년 출간)를 읽고 대화를 나눕니다. 오늘의 진행 순서는 아래와 같습니다.
- 근황 업데이트 (“What’s Making Us Happy This Week / Month?” 라는 질문에 답한다는 느낌으로!)
- 발제문 함께 읽기
- 질문 함께 읽기
- 책 전반에 대한 의견 공유
- 독서노트 인용 각자 읽고, 생각 나누기. 듣는 사람들도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져주세요. 함께 읽은 질문들을 생각하며.
- 정리 발언들
- 번개 어떻게 할 지 빠르게 논의
- 모임 끝! (식사 함께 할 사람들은 조촐하게 저녁식사 함께하기)
예술을 향유하는 것에 관하여
예술을 향유하는 것은 마치 성공과 교양의 ‘최종 보스’ 처럼 여겨지는 듯 해요. 대중 매체에서는 종종 여타 다른 전문 직군을 그릴 때와 마찬가지로 미술 활동의 결과나 그 종사자에 수 많은 환영을 덧씌우죠. 어쩌면 ‘레이시 이야기’도 그런 이야기들 중 하나 일 것 같습니다. 스스로의 욕망에 솔직한 레이시의 이야기는 충분히 흥미롭지만 그녀가 작품을 감상하는 태도나 방식은 더 흥미로워요.
“ 그림 속 미술관 주변에는 인적이 없었다. 미술관 건물만 섬뜩한 색조와 또렷한 윤곽을 과시하며 서있고, 건물 뒤편에 불길이 일고 있었다. (…)내가 지금 보는 것이 비극적 이미지인가? 아니면 초현실적 이미지인가? 건물 안에서 벌어지고 있을 아비규환은 전혀 드러나 있지 않았다. 그 부분은 오로지 보는 이의 상상에 기대고 있었다. 건물 안에 사람이 있기는 한 걸까?(…) ”
이 그림이 그려진 해는 LACMA 미술관이 새 건물을 지어 이사를 간 해라고 합니다. 바로 그때 에드 루샤가 그린 이 작품에선 새로운 미술관에 대한 불확실함과 불안이 표현되고 있죠. (링크)
“레이시는 국립미술관 때와 마찬가지로 허시혼 미술관을 빠른 속도로 훑었다. 머리를 앞뒤로 돌려가며 명작들 앞을 달렸다. 그때 한 작품이 그녀의 발을 붙들었다, 에드 루샤의 1967년도 작품으로 대형 캔버스에 불타는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을 그린 그림이었다, 그림 속 미술관 주변에는 인적이 없었다. 미술관 건물만 섬뜩한 색조와 또렷한 윤곽을 과시하며 서 있고, 건물 뒤편에 불길이 일고 있었다. 이 그림은 레이시가 앞서 봤던, 불탄 들판마냥 형체 모를 추상화들과는 정반대였다. ”
아래는 최근 인스타그램 피드에 올라온 사진. BTS는 ‘예술의 후원자’가 되어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세계적으로 이미 널리 알려진 안토니오 곰리, 토마스 사라세노 등의 작가와 ‘함께’ 런던, 파리 등 세계 5개국에서 전시를 연다고 (그러면서 새 음반 발매 소식을 알린다고) 합니다. 전시가 열리는 미술 공간들은 런던의 서펜타인 갤러리(링크), 베를린의 마틴 그로피우스바우(링크) 등 꽤나 자신의 프로그램을 가지고 비평적인 지위를 획득하고 있는 곳입니다. (그런 면에서, 서울에서 이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전시 장소가 다름아닌 DDP라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서펜타인 갤러리 /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의 인스타 피드 임베드 삭제했음. 임베드 width 오류 – 2020년 2월 7일)
사실 이런 현상은 최근의 경향성은 아니에요. 대중음악과 패션, 현대미술은 언제나 ‘너- 나- 우리’ 로 연결되어왔지요. 미술품은 더 이상 왕과 귀족만의 컬렉션이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수천억을 들여 만든 미술관의 바보같은 동선을 비웃을 수 있고, 심지어 수백 억을 호가하는 그림 앞에서 딴청을 피울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예술을 욕망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여기까지 송고은의 글에 박재용이 정보를 살짝 더해 숫가락을 얹은 내용. 아래는 박재용이 쓴 것.)
이렇게 말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해요. 이런 현상은 최근의 경향성만은 아닙니다. ‘눈으로 보는’ 혹은 ‘경험하는’ 뭔가 ‘멋진 것’이라는 점에서, 대중음악과 패션, 현대미술은 때로 구분하기 힘드니까요. 하지만 여전히 미술에 대한 접근은 제한적인 것도 같습니다. 예술은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할 수 없기에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것 아닐까요?
지난 여름 짧게 베이징에 들렀을 때 만난, 민간 예술 재단에서 일하던 동료의 말이 생각납니다. (기억나는 대로 써볼게요.) “베이징에는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이 많거든요. 그래서 이런저런 일을 하는데 도움을 주고 자기 일도 원활하게 하려고, 재단을 세우는 경우도 많아요. 그런데 목적이 구체적인 재단을 세우면 가끔 일이 복잡해지기도 해요. 사람들이 말도 한 마디씩 얹으려 하고, 일을 추진할 때도 태클이 걸리거든요. 그런데 ‘현대미술 후원합니다’라고 하면 되게 편해요. 왜냐면 다들 그게 뭔지 잘 모르니까, 어디 갔을 때 상당히 깔끔해지더군요.”
잠시 쉬어가기: 부동산에 ‘전세’가 있다면,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작품 가격의 기분이 되는 ‘호당 가격’
호당 10만원이라고 하면, ‘5호’에 해당하는 그림은 50만원.
여기서 ‘호’란 캔버스 크기의 단위로, 유럽 인상주의 화가들이 사용하던 것이 현재까지 전해져 온 것임. 캔버스 호수는 보통 0호에서 500호, 때로는 1000호 이상까지도 가는데, 호수 안에서도 F(Figure)/P(Paysage)/M(Marine) 세 가지로 세분화되는데다 용도별로 다르기도 하고, 1호의 10배가 정확히 10호인 것은 또 아니라서 상당히 복잡하다.
생각하고 토론할 것들
- 오늘 책의 주인공, 레이시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 작품의 가격은 누가, 어떻게 정하는 걸까요?
- 작품 감상은 어떻게 하죠? 어떻게 하시나요?
독서노트 인용
우리는 작품을 돈으로 살 수 있을까?
– BOO
내가 지금 느끼는 것들이 (지난 번 바나나 먹는 퍼포먼스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들) 어쩌면 나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겠다는 생각을 했다.
– OOK
<레이시 이야기>를 통해 미술품 거래의 알고리즘을 본 것 같다. … 국리 어느 시립미술관에 걸린 작품의 작가들에게 지급된 사례비가 하루 250원이라는 소식을 지난해 페이스북에서 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보다는 우리나라 미술 비즈니스 세계가 궁금해졌다. 레이시는 기죽지 않고 재기에 성공할 것 같은데 우리 작가 분들은 안녕하신지.
– ㅇOO
이 책을 읽으면서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답기만 할 수는 없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중략) 누군가에게는 체면과 성공의 수단이 되고, 누군가는 깊은 슬픔과 좌절을 느낄 수도 있다.
– ㄱXO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미술계 버전”
“미술모르냥”
– OJO
이 책을 읽으면서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답기만 할 수는 없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중략) 누군가에게는 체면과 성공의 수단이 되고, 누군가는 깊은 슬픔과 좌절을 느낄 수도 있다.
– KXO
무엇보다 예술적 아름다움과 별개로 미술품들이 불러일으키는 페티쉬적 소유욕을 잘 그려낸 것 같다. (중략) 리뷰에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미술계 버전이라고 했는데, 나는 그보단 ‘미드나잇 인 파리’와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적당히 섞인 느낌이었다.
– ㅅOX
친구의 대답은 바로 대중들이 바라보는 미술계의 시선을 지적하는 듯 하다. 나 또한 미술계는 잘 교육받고, 재력이 있고, 레이시처럼 외모까지 갖춘 자에게만 문을 활짝 열어주는 배타적인 세계일 듯한 환상이 있다. (중략) 내가 생각하는 성공의 또 다른 키워드는 바로 도덕심이다. (중략) 어쩌면 미술은 메디치 가문의 르네상스 시대부터 지금까지 자본 위에서 생성되고, 또 자본을 생성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지 모르겠다.
– KOO
주변에 그림이나 미술품들을 사는 사람이 있다. 왜 앉지도 못하는 의자를 사지? 이 그림을 왜? 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 OXX
레이시가 그림을 사서 걸어두고 집에서 마냥 바라보는 장면이 있다. 그런 기분이 어떤 기분일 지 궁금해졌다. 지금 집을 둘러보니 굉장히 어지러운데, 그림 하나로 우리 집도 달라질 수 있을지 궁금하다. 나도 그런 그림을 찾고 싶다.
– ㅈOO
야망에 찬 패기 넘치는 젊은 여성의 성공 일대기 흐름으로 시작하여 인생 지침서와 같은 깨달음을 전하는 결말 부분까지 (후략)
– OXㅈ
2008년이 너무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활용된 기분도 들지만 실제로도 그 전과 이후의 세계는 다르니 납득하기로 하고 그렇다면 지금의 미술 시장은 어떠한지 비슷한지 아니면 완전히 달라졌는지가 궁금해졌다.
– OSO
문득 좋아하는 것과 소유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중략) 소유하는 것과 기억하는 것. 어떤 걸 더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건지 궁금해진다.
– KOO
그래서 결론은 ‘역시 어디나 비슷하구나!’라는 감상으로 돌아와 버렸다.
– OㅎO
다만 자본이 미술이라는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지금의 현실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 OㅈO
하지만 한편으로 무언가를 사고 파는 행위는 과거부터 인간 사회를 동작시켜온 동력이었다. (중략) 미술은 … 그것이 미술이라고 그 시대의 사람들끼리 합의한 약속이라는 것 말이다.
– KOH
개인적으로 가끔 기사에 나오는 미술 작품의 거래가를 보게되면 가치를 상승시키는 요인, 어떤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지 궁금했다.
– ㅇOO
적어도 나는 잭슨 폴락의 그림은 이해할 수 없어도 그의 고뇌와 노력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 ㄱOO
미술에 숫자를 매기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지, 팔리는 미술과 지하창고에 처박히는 미술은 누가, 무슨 권리로, 어떻게 결정하는지 아직도 궁금합니다.
– PX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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