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첫째 날 저녁, 트레바리 안국 아지트에서 열린 트레바리 클럽장 모임(“클럽장 데이”)에 다녀왔습니다. 올해로 창업 4주년을 맞이하는 트레바리는 여전히 많은 변화와 함께 성장하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 자리였답니다. 그러니까, 함께 독서 모임을 하던 윤수영 대표가 책읽기 모임으로 창업을 한다는 놀라운 소식을 들었던 것도 벌써 오래 전 일이 되어간다는 말.
저는 불규칙한 미술계의 업무 탓에 모임을 이끌기를 고사하다, 2017년 봄부터 (저 스스로도 최소한의 규칙성을 부여하고자) “미술아냥“과 “취향있냥“이라는 두 클럽을 시작했습니다. 또한 이번 시즌에는 (한 시즌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책읽기 모임에 참여하는) 멤버의 입장에서도 트레바리를 경험해보고 있는데요, 이런 입장에서 참여하는 클럽장 모임은 지난 번과는 또 달랐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짧게 노트를 남겨봅니다. (올해 초 클럽장 모임은 노트 남기기를 건너 뛰었고, 지난 해 11월 모임의 노트는 다음 링크를 참조: “노트 – 2018년 하반기 트레바리 클럽장 모임”
트레바리의 변화
트레바리의 멤버 수가 2015년 9월 80명에서 시작해 2019년 7월 현재 5,000여 명에 달하는 것처럼, 클럽장 모임 역시 회차가 쌓일 수록 더 변화/진화하는 듯 보였습니다. 윤수영 대표가 말한 것처럼, 사적 네트워크를 통해 섭외하고 모셨던 클럽장들 – 즉 ‘아는 얼굴’이 많았던 – 예전과 달리 이번 모임엔 윤수영 대표가 처음 보는 얼굴, 서로 처음 보는 사람도 많았죠.
클럽장들이 궁금해 했던 트레바리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예컨대 7-10월 시즌이 추가된 것. 트레바리라는 회사에 대해 ‘독서모임’ 혹은 ‘커뮤니티’로 접근하는 기사가 많았는데, 트레바리의 지향점은 단순히 독서모임도 그저 커뮤니티 서비스도 아니라는 것. 7-10월 시즌은 지금까지 트레바리 운영에 ‘필터’를 하나 더 추가한 실험의 장이라는 설명이 덧붙여 졌습니다. 물론, 모든 실험은 성공과 실패의 가능성을 모두 열어둔 것이겠지요. (실제로 7-10월 시즌의 모든 시도가 성공을 거두지는 않았다고 해요.)
한편, 그간 트레바리와 유사한 여러 서비스가 출시되었고, 거기에 따라 일종의 ‘시장’이 형성되었으며, 따라서 ‘가격 저항’이라는 요소 역시 사업의 고려 사항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은 (지난 10여년 간 비영리-예술 일을 열심히 해 온 저로서는) 새로운 사실이었습니다.
커진 규모와 달라진 위상에 맞게, 클럽장들을 전담하는 ‘셀’도 신설되었습니다. 모임 며칠 전부터 알림 문자와 함께 당일 아침에는 몇 가지 전달사항을 알리는 짧은 전화 연락을 받았는데, (따지고 보면 엄청난 인력이 들어가는) 이 일을 바로 클럽장 담당 셀에서 진행해주었습니다.
트레바리에 궁금한 것
클럽장들 역시 트레바리에 궁금한 것이 참 많았는데요, 특히 올 2월의 50억 투자 유치 소식(링크) 이후 몇 개월의 시간이 지나면서 트레바리가 여러 면에서 확장을 거듭하고 있기에 궁금증이 더했습니다. 모임에서 오간 여러 질문과 답변 가운데 몇 가지만 옮겨보면:
Q. 다른 서비스를 론칭할 생각은 없는지? 국외 진출은…?
A.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기보다 남의 실수에서 배우는 것이 최선’이라는 워렌 버핏의 말을 인용하며) 사장이 역할은 시장의 결정을 따르는 것이며, 무리한 확장을 시도하는 실수를 저지른 다른 회사들을 반면교사 삼아 현재로선 하는 일에 집중하겠다. 트레바리는 유사한 다른 서비스와 굳이 경쟁할 마음이 없고, ‘자신과 다른 영역을 들여다 봄으로써 성장’하게 돕는 ‘신선한 자극’의 역할에 집중할 것. 서울 외의 도시와 국외 지점 개설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고는 있으나, 지금은 창업지인 서울에서 더 기반을 다지겠다. 만약 해외에서도 트레바리를 시도해본다면 꼭 X라는 도시였으면 좋겠다. (*꽤 명확한 이유가 있었어요.)
Q. 윤수영은 머리를 어디까지 기를 생각인가?
A. 현재 머리를 길게 길러본 남녀 공히 공감하는 ‘거지존’을 통과 중이며, 머리를 ‘단정하게’ 다듬을 생각은 없다. (중간 설명 생략) 이른바 ‘스타트업’ 대표가 지저분해 보일 수 있는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다는 게 별로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좋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Q. 트레바리의 미래는?
A. (’10년 후 변할 것이 아니라 10년 뒤에도 변하지 않을 것을 고민하라’는 베조스의 말과 장기계획을 세우지 않는다는 이나모리 가즈오를 언급하며) 평생 교육과 공유된 관심사의 공동체를 중심으로 다음 단계에 들어섰을 때 보이는 풍경이 트레바리라는 회사의 다음 단계를 결정해줄 것. 그때까진 “완력으로 뚫는다.”
Q. 클럽장과 파트너간의 관계 구축에 도움을 제공할 계획은?
A. 트레바리의 회사 to do list에 올려둔 상태.
Q. 윤수영의 리더십에 대해서 (윤수영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A. 모두를 어정쩡하게 만족/불만족시키기 보다, 잘 맞는 사람을 강하게 만족시켜주고 싶다. 그게 잘 맞지 않으면, 보내주는 것도 잘 하는 것으로 (2-3개월 전 생각을 정리했다고 함). 물론, 이것을 위해선 강심장이 필요하며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중요한 질문들.
Q. 클럽장/멤버의 성비 비대칭 문제에 대한 인지와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은…? (당장 클럽장 모임만 해도 남녀 성비의 비대칭이 확연했습니다.)
A. 같은 질문이 2년 전 클럽장 모임에서도 제기된 바 있음. 그러나, ‘팔고 싶은 물건’과 ‘팔리는 물건’에 괴리가 있는 상황도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젠더 이슈를 다루는 클럽이 오래 운영 중이기도 하지만, 성비 문제에 대한 전반적 개선은 천천히 이뤄질 것이라 봄.
Q. 클럽장 영입의 전략은? 직접 영입 혹은 추천인지? 추천 시스템을 도입할 생각은 없는지? 그간 트레바리의 ‘무게감’이 증가했는데, 트레바리 이벤트의 강사에 대한 레퍼런스 체크는 어떻게 할 것인지?
A. 트레바리의 규모가 커진 지금, 클럽장 ‘직접 영입’은 이제 어려운 상황. 한편, 트레바리의 늘어난 ‘무게감’과 ‘영향력’, 그에 따른 외부 강사 레퍼런스 체크의 필요성 등은 심각하게 고려해볼 사안이라 생각.
북쉐어링
1인당 제한 시간 60초로 진행된 자기 소개 세션에 이어, 무작위로 교환하기 위한 책 나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각자 가져온 책의 목록은 아래와 같아요.
홍진채 님 – <헨리 키신저의 세계 질서> (헨리 앨프리드 키신저)
김민지 님 – <지적자본론> (마스다 무네아키)
배은지 님 – <팩트풀니스> (한스 로슬링)
김상헌 님 – <어느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있을 거다> (황지우)
류재언 님 –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김하나, 황선우)
이아연 님 – <포틀랜드 메이커스> (야마자키 미츠히로)
진민규 님 – <리테일의 미래> (황지영)
천세희 님 – <작가의 사랑> (문정희)
장영학 님 – <나는 아마존에서 미래를 다녔다> (박정준)
모종린 님 – <STARBUCKS OFFICIAL BOOK> (출장 중에 갓 사온 책. 일본 스타벅스의 현지화 화보집(?))
이길상 – <OKR>
손현 님 – <매거진B – SEOUL> (매거진B)
윤성원 님 – <인생의 발견> (시어도어 젤딘)
황두진 님 – <가장 도시적인 삶> (황두진)
황승식 님 – <설탕을 고발한다> (게리 타우브스)
김류미 님 – <서울의 3년 이하 퇴사자의 가게들: 하고 싶은 일 해서 행복하냐 묻는다면?> (브로드컬리)
이길상 님 – <소명> (오스 기니스) 를 가져오고 싶었으나 절판인 관계로 (존 도어)
정인성 님 – <소설 마시는 시간> (정인성)
박창선 님 – <사랑하는 안드레아> (룽잉타이, 안드레아)
신기주 님 – <이노베이터> (월터 아이작슨)
안성은 님 – <파는 것이 인간이다> (다니엘 핑크)
김상우 님 – <에고라는 적> (라이언 홀리데이)
김창덕 님 –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코리아 Jul-Aug 2019>
이의현 님 – <배려> (한상복)
박재용 님 – <장인의 공부> (피터 콘)
나는 변화하였는가
몇 번째 클럽장 모임에 참석하며 스스로에게 해보는 질문은 ‘나는 변화하였는가’ 혹은 ‘트레바리는 나를 변화시켰는가’입니다. 질문에 대한 답은, ‘변화하였다’ 이고요.
모임에서 여러 클럽장 분이 말씀주신 것처럼, 트레바리 모임을 진행하면서 모임의 참여자엔 ‘멤버’들에게 배우는 것들이 결코 적지 않습니다. 제 경우엔, 미술 – 그 중에서도 (한국에서의) ‘현대’ 미술 관련한 일을 하는 입장에서 그간 스스로의 시야가 얼마나 좁았는지 매번 모임을 할 때마다 체감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이 축적되어 지금 진행 중인 프로젝트들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고, “미술아냥”과 더불어 진행 중인 “취향있냥”의 경험은 지난 해와 올해의 밀라노 디자인 위크 방문과 공유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클럽을 진행한 지 2년이 좀 넘어가는 지금은 그간 나누었던 이야기를 좀 더 축적되는 형태로 (책으로?) 남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윤수영 대표가 말한대로, 트레바리는 자기 영역을 벗어난 다른 영역을 살펴보게 만드는 – 이를 통해 자신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게 하는 – 묘한 매력이 있는 서비스인 것 같습니다.
나머지 생각
이건 좀 다른 이야기처럼 읽힐 수도 있지만, 트레바리를 스스로 진행하고 또 다른 클럽들의 이야기를 멤버들에게 들어보며 – 한국에서의 ‘전문가’의 위치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과연 전문가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과 위계를 내려놓고 소통할 자세를 갖추고 있을까요? 막상 트레바리만 하더라도, 토론과 대화보다는 강연 혹은 강의에 걸맞는 마음가짐으로 진행되는 경우들이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예외는 아닌 듯 하고요.
클럽장 모임에서 언급된 트레바리에 대한 여러 질문과 개선점에 대해, 윤수영 대표는 ‘다음 모임에서는 달라진 부분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에 찬 말투로 대답을 주었습니다. 클럽장으로, 멤버로 트레바리를 함께 하는 저 역시 한 걸음 더 나아간 모습으로 다음 번 모임을 맞이할 수 있도록 ‘잘’ 해보아야겠어요.
Comments
2 responses to “노트 – 2019년 상반기 트레바리 클럽장 모임”
배용님!!!! ㅎㅎ 이런 엄청난 후기를!!!!!!! ㅎㅎㅎㅎㅎ 많이 공감합니다~~~
앞으로의 시간을 더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