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템포러리아트저널 16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특집에 실은 글. 이 텍스트로, ‘트레바리‘ 북클럽 ‘미술아냥‘을 시작하는 첫날 발제문을 갈음합니다. 클럽에 참여하는 분들에게만 에버노트로 공유할까 하다가, 더 많은 사람과 나눠도 좋겠다 싶어 블로그 포스팅으로 공유.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명박 전 대통령 퇴임에 맞추어 개관을 추진하다 무리한 일정 등으로 큰 사고가 나기도 했고, 결국 그 다음 대통령인 박근혜 전 대통령 재임 기간에 문을 열었습니다. 등록문화제 375호이기도 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건물은 1913년 개원한 일본군 수도육군병원이자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의원으로 시작해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 국군수도통합병원으로 운영되었고, 1980년대무터는 국군 기무사가 자리한 곳이기도 했습니다. (‘사진은 권력이다’ 블로그에도 자세한 이야기가 있네요. ☞ 링크)


저는 기무사 건물이 미술관으로 탈바꿈하기 전인 2009년에 열렸던 ‘플랫폼 인 기무사‘를 통해 미술 일을 처음으로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보안 봉인이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은 옛 기무사 부지를 지칠때까지 쏘다녔지요. 부지가 꽤 크기 때문에, 새 미술관을 지으며 없어진 건물도 여럿입니다. 저는 전시팀의 인턴이었고, 왠지 무서운 일이 벌어졌을 것 같은 차가운 건물을 돌며 마지막으로 불을 끄고 문을 잠근 뒤 열쇠를 반납하는 것은 그래서 제 몫이었네요.


제가 아래 글을 기고한 (2014년 1월에 발간된) 컨템포러리아트저널 16호는 2013년 11월에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특집으로 주목했습니다. 새로 문을 여는 미술관에 관해, 여러 미술 필자가 짧은 글을 실었고요. 저는 도심 등산과 미술관 관람을 함께 생각하며 쓴 글을 기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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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화하는 동시대미술
박재용(큐레이터)


서울관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등산로처럼 기능하고 있다는 생각을 굳히게 된 것은 어느 주말 오후 미술관을 방문하면서부터였다. 오프닝이 열리던 날부터 시작해 개관 후 약 한 달 동안 거의 매주 한 번씩 요일을 바꿔가며 전시장을 찾았는데, 주말의 전시장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룬 관람객들이 각 전시관마다 줄을 이뤘고, 짧지 않은 시간을 기다려서야 전시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관람객들은 전시된 작품 하나하나 무척 꼼꼼하게 감상했고, 전시장 내에서도 벽을 따라 질서정연하게 이동했다.


일견 무척 고무적인 관람 모습을 바라보며, 혼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제대로 된 설명도, 전시의 맥락에 관한 정보도, 심지어 어느 작품의 경우는 한글로 된 자막도 찾아보기 힘든 탓에 그 어떤 전시보다 어렵게 느껴지는 개관 특별전을 어떻게 그렇게나 집중하며 관람할 수 있을까? 내 집중력이 미술관 공간을 가득 메운 많은 사람들의 것에 비해 특별히 더 떨어지는 것일까? 혹은, 내가 개관 특별전에서 찾고자 했던 어떤 것이 결국 대부분의 관람객이 바라본 어떤 것, 새로운 전시공간에서 발견한 것과는 달랐기 때문일까? 요컨대, 개관 이후 하루 평균 4,000명에 달하는 수를 기록한 많은 사람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방문하고, 소비한 방식은 무엇인가?


여기서 잠시 도심 등산의 매력에 관해 잠시 이야기해보려 한다. 인왕산, 남산, 도봉산, 청계산 등 유달리 산이 많은 도시 서울에서는 도심 등산을 즐길 수 있다. 때로는 좀 가벼운 옷차림으로 산에 오르며 멋진 경치도 감상하고, 또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식사를 하거나 반주를 곁들일 수도 있는 것이다. 잠시 마음을 비우고 경치를 감상할뿐 아니라 때로 식사로까지 이어지는 도심에서의 등산은 짧게는 반나절, 길게는 온종일을 보내며 몸과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그렇다면, 전시가 이루어진 맥락을 살펴보고, 작품의 배치와 내용, 상징성과 의미 따위를 고민하며 결정적 부분들이 텅 비어있음에 난감해하기보다 전시장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풍경 혹은 병풍이라고, 그 안을 배회하는 관람객은 각각 얕은 산등성이에 오른 도심 등산객이라 생각해보자. 개념의 유희, 틀에 박힌 사고의 전복, 동시대성에 관한 성찰과 같은 골치 아픈 수식어는 사라지고, 눈앞에 놓인 기념비적 공간과 거기에 걸맞는 큰 작업들은 어느 순간 인왕산에서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는 것에 버금가는 멋진 풍경이 된다. ‘군도형 미술관’을 표방하며 퍼져 있는 공간을 돌아다니는 시간은 경치를 유람하는 순례이며, 순례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는 도심의 등산로 초입에 있는 식당과는 비교할 수 없는 현대적 먹거리와 마실거리가 기다린다. 자가용을 가지고 온 사람이라면 넉넉한 주차 공간을 만끽할 수 있으며, 장년의 운동이 되어버린 등산과는 달리 가족과 아이들을 데려오기도 안성맞춤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서울관을 ‘대중과 소통하는 열린 미술관’으로 운영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각기 다른 개념과 미학을 담은 동시대미술 작품들이 거대한 공간에 포섭되어 맥락을 잃고 표류하며 다만 아름답거나 눈길을 사로잡는 풍경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미술관 관계자와 미술인 누구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미술관의 전시가 하나의 풍경이 되어버리고 말 때, 작품과 전시는 감상과 고민, 대화의 대상이 아닌 시각적 소비의 대상이 되어버리고 만다. 작품에 노력을 쏟은 작가로서는 안타까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작가와 작품을 섭외하고 개념적 구성과 실제 공간에서의 구성을 고민했을 큐레이터라면 답답함을 감출 수 없는 일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동시대미술을 보다 넓은 관객에게 소개하고, 더 많은 이가 미술을 접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는데 필요한 것은 눈길을 사로잡는 작업과 전시가 아닐 것이다. 서울관에 정말 필요한 것은 팔아도 손해 볼 것 같은 책이 가득한 서점, 인력과 예산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지만 당장 눈에띄는 성과가 나지 않는 전시와 미술 관련 교육, 시간과 돈에 비해 결과는 쉽게 눈에 띄지 않는 도록, 누가 다 읽을지 모르지만 할 수만 있다면 좋을 것 같은 섬세한 월텍스트 쓰기, 배치와 같은 것들이다. 이 모두가 더 많은 시간, 더 많은 인력, 더 많은 고민을 요청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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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공유하고 보니, ‘컨템포러리아트저널’은 잘 지내고 있는 걸까? 싶어 집을 뒤져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구매했던 이슈가 지난해 겨울에 나온 “한국 미술의 빅뱅: 단색화 열풍에서 이우환 위작까지” 호였거든요.


하지만 우선 집에는 없는 것으로 판명. 그럼 필시 작업실 어딘가에…

여기서 걱정: 2017년 하반기 이슈는 발행되는 것인지. ‘컨템포러리아트저널’ 페이스북 페이지는 2014년 말을 마지막으로 업데이트를 하지 않고 있고, 발행 부수가 그리 많지 않아서인지 책을 검색해보기도 쉽지가 않습니다. (제가 이 책을 산 곳 역시 온라인 서점이 아닌, 언제나 들르는 예술서점 ‘더북소사이어티‘였어요.) 이 잡지는 동덕여자대학교 큐레이터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신 심상용 님이 셀프-십시일반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저는 알고 있어요. 검색도 잘 되지 않고 페이스북 페이지도 냉동 상태이지만, 어쨌거나 계속 발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잡지의 소식을 아는 분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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