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초, 최빛나 큐레이터와 함께 런던에 있는 Iniva(Institute of International Visual Arts)에서 박찬경 작가 개인전을 진행하며 품게 된 궁금증 가운데 하나를 , 뜻하지 않게도 미술/문화지 frieze 4월호에 기고를 하며 풀게 되었다.

그 궁금증이란 게 무엇인고 하니, (유럽에선) ‘좋은 매체에 리뷰가 실리게 하고 싶으면, 보도자료는 언제 보내는 것이 좋아?’ 라는 질문에 이런 답변을 받았던 것. ‘좋은 매체의 리뷰를 원하면, 적어도 2개월 전까지는 자료를 보내야지. 가능하면 영상 작품 뷰잉카피도 함께 보내고.'(*뷰잉 카피: 작품의 내용을 알 수 있는 저용량, 저화질 버전의 파일. 혹은 워터마크를 삽입한 영상)


당연한 척, 당황하지 않은 척 하던 내 모습은 아마 이랬을 것 같다. via GIPHY

고장난 폭주 기관차처럼 앞만 보고 달리는 서울의 리듬에 익숙한 내게, 이상적으로는 늦어도 두 달 전에 자료를 완성해 보내는 것이 좋다는 말은 좀 농담처럼 들리기도 했고, 심지어 정말인지 아닌지 조금 헷갈리기도 했다는 것을, 이제서야 조심스래 고백해본다.

그런데 올해 1월 첫 주, 지난 해 여름 내게 글을 의뢰했던 frieze 의 편집자 A가 이메일을 한 통 보내주었다. 메일의 내용은 대략 이랬다. ‘잘 지내? 늦게 연락해서 미안한데, 혹시 4월호에 리뷰를 하나 써보지 않을래? 한국은 분위기가 어때? 지금 중요한 건 뭐야?’

반갑게 답장을하며, 4월호에 실을 글인데 이렇게나 이른 1월 첫 주에 연락을 하며, 왜 ‘늦게 연락을 해 미안하다’는 걸까 갸우뚱 + 초안 마감과 글 편집 일정을 함께 물었다. 여기에 대한 회신은 4월호 원고의 마감이 늦어도 2월 중순에는 되어야 하고, 그러니 편집 또한 늦어도 2월 말이나 3월 초에는 끝나리라는 내용이었다.

“4월호 마감이 2월이라구요?” via GIPHY

이럴 수가. 사실 지난 해 frieze에 실었던 첫 번째 글은 웹사이트에만 실을 글이라 그나마 좀 속도감있게 기고문 작성과 편집이 진행되었는데 (물론 그때도 그리 길지 않은 글의 첫 번째 편집 본에 달린 60여 개의 코멘트를 보며 기겁+놀라움+감동을 좀 하긴 했었다), 인쇄판에 싣는 글이 이런 리듬으로 진행되는 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던 나는 약간의 문화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일전에 Art in America 일부 코너는 두 계절 쯤 전에 글을 의뢰한다는 이야길 들었던 적은 있지만 (가을에 열린 어느 비엔날레의 애프터 파티에서 만난 친구에게서, ‘Art in America 내년 봄 호에 실을 글을 이제 써야해.’라는 말을 듣고 조금 놀랐던 기억. 하지만 그땐 당사자의 입장이 아닌 터라 그저 ‘그렇구나’ 하고 말았지), 원고 의뢰-작성-제출-(최소한의 교열 이상이 되기 어려운) 편집이 거의 한 번에 이뤄지는 서울에서의 미술지 기고에 어느덧 익숙해져버린 나로선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도리도 없는 노릇.

그러고 보니, 이제야 조금 이해가 가는 것이다. 고개를 살짝 갸우뚱하며 들었던,  ‘좋은 매체의 리뷰를 원하면, 적어도 2개월 전까지는 보내야지’라는 말이.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세 달 쯤 전에 필자에게 연락을 할 때 이미 ‘늦게 연락해서 미안’이라는 말을 한다 = 대체 얼마 전에 연락을 해야 안 미안한 것? 을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없는 것. 

유럽과 서울, 어찌 이리도 시간감각이 다른 걸까. 그리 길지도 않은 리뷰 글을 위해 오갔던 이메일을 새어보니, 편집이 이뤄지는 몇 주 사이 서른 통 가까운 메일이 오갔다. 이렇게 의견을 주고받는 사이에도 글의 큰 방향이나 얼개는 그대로였지만, 훌륭한 편집자 덕에 글의 세부적 내용이 많이 좋아졌다. 이를테면 필자의 입장에서,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당연하게 여겨 자세히 설명하지 않은 것들을 좀 더 명확히 밝힌다거나, 서울을 넘어선 국제적 관점에서 궁금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보충과 같은 것들. 훌륭한 편집자와 많은 대화를 나누며 글을 고치는 가운데, 마치 오래된 집에 이사를 가서는 벽과 기둥만 남겨두고 ‘올 수리’를 한 것처럼 내용이 더 좋아졌다.

더 많은 사람이, 한국에서도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서울의 미술지들은 적은 인원으로 매달 잡지를 무사히 발간해주는 것만으로도 응원을 보내지 않을 수 없는 상황. ‘어쩌면 좋을까’ 하고 생각해보지만 … 정말, 어쩌면 좋을까? 혹시, 좋은 생각이 있나요?

참, frieze 4월호에 실은 글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X: 1990년대 한국미술‘(2016.12.13-2017.2.19)의 리뷰였고, 다음 링크에서 읽어볼 수 있어요. https://frieze.com/article/x-korean-art-nine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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