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post shared by 호상근 Ho Sangun (@horangsun) on

인스타그램 @horangsun 님이 올려주신 이미지에서 시작된 이야기.

사실 제가 “Kachi-Kapsida”를 처음 접했던 건 2000년대 중반 쯤이에요. 당시 미군 부대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미군 장교의 연설을 마무리하는 멋진 한마디로 등장을 했던 거죠.

“위 고 투게뤄. 카취 괍쉬다!”

한껏 꼬부라진 발음으로 이 말을 처음 들었던 그 순간, 그만 피식 웃고 말았어요. 하지만 군 생활을 마칠 때 까지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 구호를 들을 일이 여러 번 있었고, 이후에도 미국의 주요 인사들을 통해 “같이 갑시다!”를 들을 기회가 몇 번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2015년 3월, 리퍼트 주한미국대사의 연설에서:
“비 온 뒤에 땅이 굳습니다. 같이 갑시다.

혹은 그에 앞선 2014년 4년, 오바마 대통령의 한미 연합사 방문 연설에서 한 마디:
같이 갑시다. We go together.”

“같이 갑시다”가 대체 얼마나 중요한 말이길래 이렇게들 꾸준히 쓰는 걸까?

온라인 경매 사이트인 ebay에서 “We Go Together”와 “USFK”(United States Forces Korea, 주한미군), “EUSA”(Eighth US Army, 미8군)을 함께 검색해보면, 이런 물건들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CJ3 UNC CFC USFK EUSA challenge coin medal military collectible war vet token”(ebay).

위의 것과 같은 메달은 각급 부대에서 행사를 하거나 기념할 일이 있을 때 만들곤 하는 것인데, ‘collectible’이라고 하는 걸 보니 “Kachi-Kapsida”의 역사가 왠지 짧지만은 않으리라는 예감. 뒤이어 좀 더 검색을 해보면, 이 문구가 한국 전쟁 시절부터 있어 왔다는 다소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됩니다. 연관 검색어는 “백선엽.”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429호실. ‘6·25전쟁의 영웅’ 백선엽(93) 장군은 벽에 붙은 포스터를 보며 상념에 잠겨 있었다. 6·25전쟁 당시 군인들을 독려하기 위해 만든 이 포스터 아래에는 ‘레디 투 파이트, 투나잇?(Ready to fight, tonight?)’이란 영어 문구와 함께 ‘Kachi kapsida(같이 갑시다)’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 “代를 건너뛴 만남… “밥부터 먹자”고 한 사연,” 조선일보 2013년 11월 1일 (링크)

“하지만 이 말의 원조는 백 장군이다. ‘같이 갑시다’는 1950년 한국전쟁에서 한국군과 미군이 전쟁터에서 함께 싸운다는 의미로 사용한 게 시초다. 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꼽히는 다부동전투에서 백 장군과 더글러스 맥아더 사령관이 나눈 말이 원조라는 설도 있다.”
– “한·미 동맹 상징 “같이 갑시다” 원조는 백선엽,” 중앙일보 2015년 3월 7일 (링크)

“‘같이 갑시다’라는 동맹 구호가를 만들고, 당시에 상당히 어렵게 동맹관계가 됐습니다.”
지금은 주한미군 소식지 이름으로 ‘같이 갑시다’가 쓰이고, 같은 이름으로 행사 때에 불리는 노래도 있습니다.”
– “”같이 갑시다” 한국전쟁 때부터 이어진 한미동맹의 상징,” MBC, 2015년 3월7일 (링크)

한국 전쟁 시기에 처음 쓰인 말을 지금까지 반 세기 넘게 ‘보존’하며 써온 미국의 노력은 대체 뭘까. 종종 꼬부랑 발음으로 듣게되는 “같이 갑시다”는 사실 좀 웃기기도 하고, 영어, 한글, 영어식 음차로 쓴 “We Go Together, 같이 갑시다, Kachi-Kapsida”는 이상한 시간과 언어 감각을 주기도 합니다만, 한편으론 말 한 마디를 가지고 반 세기가 넘게 일관된 내러티브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너네 참 대단해’를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

2017년 3월 28일

#작은것들의역사 #톤앤매너 #글쓰기연습